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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재택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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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Jun 14. 2024

땀나면 덥더라(재택 백수 16)

그렇지 않니?

휴일이다.



첫째는 학교 행사에 자원봉사를 가고 둘째는 남편과 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보니 집에는 혼자 있게 되었다. 밀어놓지도 않았지만 식구들이 집에 없으니 당겨서 낮잠을 잔다. 누가 눈치를 준다고는! 살림하는 사람이 식구들 있는데 게으름 피우고 잠이나 자면 혼자 좀 그렇다. 원래 그런 엄마요 마누란걸 다 알고 있는데도 괜히 또 인정받고 확인받기 싫은 마음이라 아무도 없으면 꼭꼭 챙겨서 자게 된다.


아 잘 잤다. 몇 시간을 잔 것 같은데 집이 조용하다. 아직도 집에는 혼자다. 안 잔 척할 시간이 있다. 눈감았다 뜬다고 사라지지도 않는 살림을 어쩔 수 없이 후닥닥한다. 바닥 먼지를 당겨 청소기 먹이고 건조기가 토한 수건을 잘 개어 화장실에 총알처럼 장전해 놓는다. 마지막, 전문 주부 업자의 숙명. 밥. 점심을 먹고 오려나 어쩌려나 자전거 타러 간 부녀의 현재 상황이 궁금하다. 혼자라면 라면을 끓여 먹든 미역국 말아 부엌에 서서 후루룩 먹어버리고 말 텐데 밥을 해야 하나 내적 갈등이 올라온다. 냉동실에 짜장용 면이 있는데 냉면 재료도 있고... 일단 배가 고프니 미역국에 밥을 만다. "혼자 뭐 맛있는 거 먹노"하는 소리가 텔레비전 광고처럼 벽에서 터져 나와 뜨끔해진다. 진짜로도 그 소리를 안 들으려면 증거를 인멸해야지. 2분 만에 밀어 넣고 입을 닦는다. 먹고 나면 왜 더 배가 고픈 거 같을까? 뭘 더 먹을까 뇌 속을 둘러보지만 먹을 게 없다. 일주일 장을 보지 않았다.

시침을 떼고 있는 그때 자전거 2인방이 들어온다. 들어오면서 쫑알쫑알 말이 많은 둘째가 강아지 챙겨주듯 엄마인 나를 안아준다. 으음~ 어깨에 기대 포근함을 느낀다. 낮잠과 혼자 먹은 점심과... 나의 죄가 사하여진 것 같다. 아.. 좋다.


"엄마 영화 보러 가자"

"시은이가 가필드 보러 가자네"

"난 가필드는 별론데.. 이프라면 몰라도.."

"그럼 가필드 내일 보고 오늘은 엄마 보고 싶은 거 보자. 이프"


이럴 때 보면 누가 엄마고 누가 딸인지 모르겠다. 고집을 부리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배려해 주는 둘째가 참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이 나이에도 잘 안되는 게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행동으로, 말을 하면서 표현되는 게 천성 같다. 둘이 점심은 먹었다니 다행인데 벌써 저녁시간이 되어간다.


"아귀찜 먹고 싶은데..."

"주말마다 외식하고 외식할 때마다 아귀찜 같은 거 먹으면 외식비만 30만 원이 넘어. 그럼 안돼~!"

"힝~"

"외식비가 30만 원이면 많은 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노니까 그렇.. 마라탕 먹을까?"

'내 생각에는 그동안 소비가 좀 컸어. 지금도 크게 아끼는 것 같지는 않지만 사실... 외식도 거의 없애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게 맞는 거 같아. 전지구적 행동으로도 말이지'

"아귀찜~"

"우리 동네 아귀찜 지난번 맛이 좀 이상했어."

"그래? 난 거의 안 먹어서 몰랐는데 그랬구나. 마라탕 먹으러 가자!"


때마침 식당에 들어온 첫째와 먹기 시작한다. 근데 왜 오늘따라 2단계가 혓바닥을 마비시키는 통증 맛이람. 둘째랑 0.5단계를 먹다가 남편과 첫째의 2단계 매운맛을 보니 식욕이 떨어질 정도다.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고 첫째도 코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있다.


"아빠 땀 나! 더워?"

"아니 안 더워. 추워. 근데 땀이 나네"

"안 더운데 땀이 난다고? 나는 땀나면 덥던데."

"......................"

".ㅋㅋ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ㅎㅎ"

사라지는 나의 뇌세포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언어능력은 자꾸 떨어지는 데 글을 쓰겠다는 내가 신기한 남편이 한마디 한다.

"작가라메? 근데 말은 왜 맨날 그러냐? 생각을 좀 하고 말을 해~!"

"내가! 언어의 연금술사 작간데! 그러니까 그 뭐냐! 거 응?"


넘의 집 화단을 보며 "아이고 화단 같네.."같은 소리나 하는 나는 과연 'ㅈㄱ'인지 그냥 작자인지 모르겠다.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화단처럼 꾸민 것 같지 않은데 꽃들이 제법 예쁘게 피어있어?"라고 해석해 주는 아이들이 꼭 독자님들 같습니다. 제가 이래서 작... 뭐를 하나 봅니다.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적어 놓으면 품을 들여 친절히 해석하며 읽어주시는 글벗님들 계시니까 말이에요^^)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가자~!!!"


별일 없는 백수의 하루 끝

(또 지난번 써 놓은 글 뒤늦게 올려봅니다. 새글은 언제 쓸 거냐?)



오늘의 토박이말


온여름달 열나흘 닷날(06월14일 금요일)


*여울*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

남해 대교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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