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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재택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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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May 09. 2024

김 여사님 출발하십니다 (재택 백수 15)

길 비우세요

우리 집 차는 비싼 차다.



태어났을 때는.


아이들 큰 고모부가 새 차를 뽑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 설마 우리에게 올까 반신반의하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왔다. 좀 놀라웠다. 돈이 걸린 문제를 약속하나로 넘기다니. 아주버님이 대단해 보였다. 암만 차에 침 발라놓았다지만 농담으로, 지나가는 말로 차 바꿀 때 달라고 한 말대로 (군말 없이) 주다니. 진짜 그냥 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구차해지지 않을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의 위력이랄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들어맞는 경우랄까. 조건도 생색도 없이 어느 날 우리 집으로 온 거다. 돈을 드려야 하나 혼자 고민했지만 평소 하던 대로 그냥 꿀꺽 잘 받기만 했었다.

중고로 팔아도 돈이 될 놈을 받은 지 십 년 정도 되어가는 거 같다. 내가 끌고 다니며 긁어먹긴 했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 새 차다.


새로 산 내 첫 중고차가 늙어 도살장 아니 폐차시켰다. 코로나 시국에 보냈으니 코로나 영향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시동을 걸면 주차장이 떠나가라 기침을 해대었으니까. 호흡기 문제가 심각해 운전이 안 될 지경이었으니까. 몸을 벌벌 떨며 그르렁거리는 게 병원에서 치료가 될 정도가 아니었던 거다. 그렇게 없어졌다. 내 첫 새 중고차가.

내 첫 새 (중고) 차를 없애고 보니 집에 차가 한 대가 되었다. 남편이 직장에 다닐 때는 회사 차를 운전해야 해서 한대로도 불편할 일은 없었다. 낮에는 내가 전용으로 몰 수 있으니까. 퇴사하면서 차를 반납하고 보니 약간 아쉽긴 하다. 백수는 둘인데 버스도 잘 안 다니는 면에서 어딜 가려면 약간 눈치 게임이 시작되는 거다.


나 버스 다니는 곳 갈 건데. 어디 갈 곳 있으면 차 써

그럴까? 음! 아냐 전화로 해결될 거야. 그냥 써

알았어~ 갔다 올게!


휴~ 차를 선점했다. 오늘은 진주성 안에 있는 박물관(대학)에서 1주일에 한 번 수업 듣는 날. 사회학이랄까? 역사사회학 정도 될 거 같은데. 진주에서 일어난 사회 변화를 알려준다. 무척이나 재미있다. 대학 과제가 산더미지만 빠지기 싫다. 출발.


아는 곳에 가는 길이라 당황할 일도 없다. 한쪽 눈 감고도 운전할 수 있는 바운더리, 내 구역이다. 시원하게 차를 뺀다. 오른쪽 왼쪽 고개를 돌려가며 안전 확인 후 엑셀. 신호가 어느 정도에서 끝나는지 어느 시간까지 녹색신호인지 어디에 카메라가 있는지 손바닥 안이다. 막히는 길도 아니고 회전할 일도 거의 없다. 시원하게 직진하다 차선을 옮길 타이밍. 오른쪽 차선으로 옮겨야겠다. 측면거울을 본다. 안 보인다. 왼쪽을 본다. 뒤가 보인다. 오른쪽을 다시 본다. 아~ 진짜. 왜 그러냐, 민망하게. 아 왜 맨날 사이드미러가 한쪽은 접혀있냐고. 운전 잘하는 척 시원하게 나왔는데 사이드 접고 있. 나 김 여사님이었던 거야?


사이드미러 접혀있데이.

흥, 후방거울 하나만 있어도 운전이 다 되는데 왜?

그럼 사이드 다 접고 타시지?

안돼~ 가끔 필요해.


며칠 전 남편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그때도 출발하고 한참이나 지나 거울을 폈는데. 차가 이제 늙은 거 표 내느라고 사이드미러가 오른쪽은 자동으로 펴지질 않는다. 근데 가만 보니 우리 차가 늙었으면 아주버님 차도 늙은 거 아닌가? 차 바꿀 때 되어간다는 소문이... 남편이 이번에도 차 바꿀 때 달라며 농을 던지던데.. 에잇 이번에는 안 되겠지? 기대도 없지만 이번에도 받는다면 그것도 진짜 웃기긴 하겠다. 천만 원 단위 물건을 또 받으며 입을 닦을 수도 없으니... 백수 이번 기회는 패스다. 십 년 전에 받은 새 (중고)차 사이드미러 (접힌 김에) 접어 놓고 아껴 타기나 해야겠다.

진주성 내 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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