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픈 일이 생기면 슬프다 너무 슬프다 이렇게 슬픈 게 인생인가 보다 하며 인생이란 슬픈 것이라는 공식을 만들고 그것을 깨지 않기 위해, 슬프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남편의 경우 슬프다 왜 슬프지? 아 친구한테 속아서 슬프구나! 그렇다면 속지 않아야겠다 슬픔 소멸 이렇게 정리를 하는 타입. 그런 성향이 아이들에게 유전되었는데 첫째는 내 성격. 둘째는 남편 성격을 물려받았다.
우리 집에는 먹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과 놔두면 뭐(?)로 변할지 모르니 일단 재지 않고 먹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4식구 중 단 한 명일 뿐이지만 영향력이 적지 않다 보니 다람쥐띠 저장 소녀 둘째를 바짝 긴장시키는데….
과자니 세제니 어제 본 게 또 보이면 썩겠다는 표현을 쓰며 먹든 써 버리는 남편, 어제 안 보이던 과자가 있으면 입으로 직행한다. 나름 학원 선생님께 친구에게 애정 표현으로 칭찬으로 받은 상을 간직하고 싶은 둘째는 그런 아버지에게 상처 아닌 상처다.
인생 길게 살지는 않았지만 기억에 남은것만 손에 꼽아도 제법 되다 보니 이런저런 방법을 찾는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다. 그동안 시행착오 하며 눈물도 흘렸다. 눈물 속에 궁리하며 길어 올린 결과는 이렇다. 울지 않겠다는 결심을 실행할 방법.
책상에 올려둔다. 기억하기도 좋고 찾기도 좋고 자린고비가 굴비 몇 번 보고 한 그릇 밥을 뚝딱 비우듯 과자 흘깃에 입속 행복도 느낄 수 있고 그날(?)이 되면 바로 먹을 수도 있는, 효율과 가성비가 좋은 최고의 '수'다! 전과자가 방에까지 와서 은닉 재산을 탐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책상이니 방에 먹을 것을 용납하지 않는 엄마에게 보이면 혼이 난다는 데 있다.
두 번째, 어딘지 모르지만, 꽁꽁 싸서 숨긴다. 그럴 경우 본인도 잊어먹고 날짜가 지나 버리는 참사가 발생하는데 그러면 속상함에다가 그래도 먹을까 하며 고민하는 자신에게 실망까지 느껴 기분도 나빠지는 법.
전과자의 괴 버릇을 사전 차단하고 저장도 할 수 있는 참신한 방법이 없을까? 그러다 우리 집 먹거리 저장공간에 넣기를 선택하면서 강력한 경고문을 부착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는데…. 중요한 건 대충 적어놓으면 목적 지향적인 사고인이 종이 나부랭이는 보지 않고 또 먹어버릴 수도 있다는 데 있다. 그러니 주의해야 할 식품 옆에 크고 구분할 수 있으며 화난 문체로 써 붙이는 것. 둘째의 문제 해결 능력은 꽤 효용이 높다.
"밥 먹자!"
저녁을 먹자며 가족을 향해 외친다. 밥 먹으라고 했으면 재깍 식탁으로 달려와 의자에 착!석!을 하면 좋겠다는 내 생각과 달리 꾸물꾸물 기어 오는 첫째와 대답은 전광석화처럼 해 놓고 (금방 갈게~)뭘 하는지 바쁜 둘째와 전화기를 내려놓기가 힘든 남편은 밥 먹으러 와 놓고 입이 심심하다며 식탁 옆 식품 저장공간을 어슬렁거린다. 마누라에게 혼나지 않게 식탁 앞으로! 왔으니 잠시 미래의 먹거리를 선점하려는 것. 하이에나처럼 배회를 시작한다.
"아하하하! 절때 먹지 마세요?! 아하하하"
"왜?"
"글을 잘못 쓴 거 아냐?"
"일부러 그런 거 같은데"
둘째를 제외한 가족 간 의견이 분분하다. 처음 보는 사탕에 붙은 육성지원 메모에 남편은 그만 웃음보가 터지고 만다. 시끌시끌한 식탁이 궁금한지, 금방 오겠다며 하던 일을 끝낸 건지 어느새 꼬맹이도 옆에 와 있다.
"글자 잘 못 썼는데 알아?"
"응, 아빠가 또 먹을까 봐 그렇게 한 거야!"
"아~ 강조한 거네? 하하하"
"맨날 아빠가 내 허락도 없이 먹어버리잖아" 울먹울먹
"당신은 애한테 허락도 안 받고 왜 그랬냐, 잘못했네!"
뭐 몇 번 공격당해 피해는 보았지만 그걸 끊어내기 위한 둘째의 노력. 슬픔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나보다 몇 번 울긴 했지만 슬픔은 필요 없는 둘째의 생활이 앞으로도 더 행복할 것 같다. 자기 사탕 하나도 못 지키는 사람이 신념을 어떻게 지키고 꿈을 어떻게 지키겠어.
'이제 내 인생도 슬픈 것 버리고 갖고 싶은 것 생각하면서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해 본다. 내일은 나를 위한 먹고 싶었던 거 하나 사 먹을까? 근데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는데? 그러면 이건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아휴…. 이것도 뭐가 좀 어렵네. 그때그때 무언가를 해결하는 것도 말이다. 슬픔은 슬퍼서 슬프다고 생각하며 산 내 방식은 내 게으른 성격에 어울리는 게 아닐지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한다. 모르겠다. 살던 대로 사는데 너무 슬프면 조금씩 바꾸자. 그리고 이젠 예전처럼 슬픔이 슬퍼서 슬프다는 생각 별로 안 한다. 둘째를 닮아가는 내가 조금은 다행스럽다. 아! 그러고 보니 써브웨이 가서 샌드위치에 커피 한잔 하고 싶네. 오케이 내일 점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