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May 25. 2024

너의 하루

네게도 시간이 생긴다면....

어제도 바빴을 거야 넌.



새벽부터 일어나 건강을 위해 스트레칭이라도 간단히 하고 싶지만 조금만 더 자고 싶은 마음과 다투다 그래도 건강을 챙겨야 컨디션 조절이 될 텐데 하며 망설이다 허겁지겁 눈을 뜨겠지. 일어나 식구들 밥 챙기면서 아이 약이랑 물통을 가방에 넣고 너도 챙기기 시작해야지. 남편 차에 아이는 등교를 맡기고 너는 7시 반이나 집을 나갈 거야. 복잡한 출근 지하철에 몸은 이미 퇴근하고 싶겠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럴 열정이랄까 에너지도 없어서 그냥 또 출근할 수 있다. 그렇게 출근하면 새로 들어온 2000년대생 직원의 '그걸 왜 제가 해야 하죠?'하는 눈빛에 당황하며 그냥 네가 하고 말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부장 승진할 김 차장님은 괜히 하던 업무분장을 바꿔 일거리만 늘려 놓았다. 출근 땡 커피로 정신 잠깐 차리자마자 불려 다니기 바빴던 너, 정작 해야 할 일은 시작도 못 했는데 점심시간이고 식후 땡으로 커피를 수혈해도 일은 진척이 없을 거야. 부장님은 일 좀 하려 하면 불러서 다른 일까지 1+1 서비스를 주니 커피가 아니라 위스키라도 한 잔 털어 넣고만 싶다. 퇴근은 2시간이나 남았는데 오늘까지 마감인 일은 아무래도 요단강을 진작 건넌 것 같으니 마지막 뇌 용량을 쏟아부을 준비물 (막차이길 바라는) 커피를 탄다. 내일 마저 하자며 부장님이 먼저 자리를 비울 때 너도 겨우 퇴근할 수 있었겠다. 집에 오자마자 애기 씻기고 오면서 싸 온 반찬을 풀어 오늘 저녁도 한 끼 클리어했다며 한숨 쉬려고 하다 앞길이 구만리 첩첩산중이라 큰 숨마저 미뤄놓을 거다. 저녁 먹은 그릇은 식기세척기에 넣고 남편이 종량제 버리러 간 사이 너는 아이 가방 정리며 내일 선생님께 전달할 안내장도 적고 아이와 잠시 놀아도 주고 양치를 시키겠다. 그러고 나면 학교든 학원 숙제를 봐준 후 아이의 하루를 마쳐줄 거야. 아이가 잠든 걸 확인하고 나면 너도 너만의 시간이 절실하지만, 책은커녕 유튜브 릴스 볼 시간도 없이 스르륵 잠이 들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너의 주말은 주중에 못 한 아이와의 시간, 아이의 체험 시간, 아이와의 사랑 시간이 필요할 거야. 이번 주는 도서관에 빌렸던 책도 반납하고 아이 책을 빌리겠지. 아이가 책을 빌리는 동안 너는 네 책도 빌리고 싶지. 시간을 언제 뺄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지만 빌려놓지도 않으면 책 읽을 시간은 영원히 안 올지 몰라 속상한 마음만 커질 테니 욕심껏 빌리기라도 한다.


넌 그렇게 도서관에 온 길이었어. 1층에 있는 유아도서실에서 책은 다 빌렸고 네가 책을 빌리러 2층으로 가는 길에 아이는 동행하고 싶어 했을 테다. 아이가 물었어.


"엄마, 여기 그림들 많다. 엄마는 이런 거 안 해?"

"이건 여기 동아린가 뭔가에서 그린 거래. 이거 오전에 그린 걸 텐데? 낮에 집에 있는 사람들 말이야. 엄마는 이럴 시간이 없잖아."

"#%$%^*&*"


내 몸속 맹장이 있는 곳 같은데 오른쪽 배가 아픈 것 같아. 거기 평소에 주머니가 있거든. 편하게 얘기해서 풍선 같은 건데 그게 부풀어 오르면 핏줄이든 장기가 눌리면서 수분이 밀려나게 돼. 그러면 눈까지 닿아서 물이 나오기도 하거든. 약간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거 같아.


그러고보니 갑자기 네게 할 말이 생각났어. 별 감정은 없어, 그냥 하는 말이니 가볍게 들어주면 좋겠어.


"넌 아무 잘못 없어. 그건 어디까지나 사실이었으니까. 너의 바쁜 하루들에 오전 시간은커녕 퇴근 후에마저 시간은 금이 아니라 운석 같은 거라서 보기도 어렵지만 갖기는 더 불가능에 가까운 거니까. 네 말은 어디까지나 진실한 것이었어. 나? 신경 쓰지 마. 그냥 내 안에 있는 원래 고장 나 있던, 원래부터 헐거웠던 스위치가 건드려진 것뿐이니까. 내 자격지심이라는, 없애지 못한 부위에 없애지 못한 기능으로 붙어있는 스위치가 말이야. 넌 실수한 게 없어. 그냥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게 내 실수인 거지. 당분간 스위치 찾으려 집에 좀 있을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할 게 네 잘못은 아니다. 나는 너를 응원하고 싶으니까. 그냥 내 쓸모없이 열려있는 귀가 들을 필요 없는 남의 말을 엿들었으니 잠시 귀를 쉬게 하든 벌을 주든 분리 조치하려는 거야. 나는 사실 너의 바쁨이 언젠가 옅어져 나와 같이 그림이나, 혹은 느긋하게 빈백 소파에 누워 책 읽을 시간이 생기길 바랄 뿐이야. 그동안 조금만 더 힘을 내길 가깝고도 먼 곳에서 기도할게!"




기분 나쁠 말이 아닌데 난 왜 자격지심이 생기는지 모르겠기에 주절거려보았습ㅎㅎㅎ 기분 나빠서 취직자리 알아보아야겠습니다. ㅋㅋㅋ 자리만 알아본다고 했지, 취직할 거라는 말은 아닙니다. 취직이 되지도 않고요. ㅋㅋㅋㅋ

그런 기분이 잠깐 스치듯 지나가길래 아싸~ 퍼뜩 글이나 써야지~~하면서 써 놓아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할아버지 닮으셨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