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티움> 은 원래 '여가, 휴식>을 뜻하는 라틴어지만, 작가는 '인생에 활력을 제공하는 나만의 휴식과 몰입'이라는 의미에서 오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휴식의 말들- 공백 지음
제게 글쓰기는 휴식이기도 해요.
그런데 한동안 쉬는 듯 연습인 듯이 하는 작업, 글쓰기를 못 했어요. 아니, 안 했지요. (시험 핑계^^) 할 일 끝났으니 다시 쓰는 사람으로 가볼까 했더니 갑자기 낯섭니다. '네가 언제부터 쓰는 인간이었다고 맡아둔 자리 돌아온 척이냐?' 싶은 거예요. 아니, 내가 쓰는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휴식, 휴가 차원이지~~싶다가 또 갑자기 기 좀 그만 죽여라~~!!볼멘소리가 나는 거예요. 조금 시끌시끌했습니다.
마른 글감에 물주는 과정으로 또 기문제(기우제처럼요)를 지냅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앓는 소리할 거다~~~이 말씀이지요^^ 자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합니다 어어~~ 작가님 가시면 안 됩니다. 기문제 듣고 가세요~~에! 예 감사합니다. 꾸벅
아!아!~~~
딸깍
모두가 잠든 새벽 1시 50분 스탠드 불을 켠다. 이 시간은 오롯이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 아이들은 잠들었고, 소음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살림에 눈마저 감을 수 있다.
일찍 잠이 들었지만 깨어있더라도 취미가 다른 남편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경우는 적다. 남편이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글을 쓰는 식이다.
나는 티브이를 보지 않는다. 오붓하게 같이 앉아 볼 일이 없는 거다. 그렇지만 가끔은 무슨 일이든 명분부터 찾는 삼국지 주인공처럼 '좋아하는 영화를 놓치고 있는 거 아니'냐며 굳이 이유를 달아 켜기도 한다. 예상할 수 있게도 채널만 돌리다 허무하게 전원 버튼을 누르지만 말이다.
거의 매일 쓰는 척을 하지만 일만 있으면 글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물론 삶에 우선순위는 필요하고 때론 집중도 필요하니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러고 나면 한창 재밌는 부분 읽다 만 책처럼 흐름이 끊어져 있다. 잠깐일망정 공간으로, 사건으로 세트장을 새로 지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겨버린다. 물 마른 강바닥처럼 물길이 달리 보인다. 글이 흘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글말들이 바싹 말라 있다. 연약한 송사리가 뛰어보지만, 떨어진 곳은 흙바닥. 물 만난 고기처럼 물방울을 묻힌 채 튀어 오를 리 만무하다.
흩어지는 먼지처럼 글이 구성되지 못한다.
버릇처럼 놀이처럼 즐겨하던 작업을 손에서 놓자마자 내가 지금까지 무얼 하고 있었지? 난 누구였더라? 하는 '현실인지' 타임이다. 내가 뭐라고 매일 글을 쓰며 베셀 작가 흉내 내듯 했지? 민망하다.
지금, 또 그렇다.
일부러 분위기를 잡아본다. 새벽의 감성까지 빌려본다. (술 먹은 거 같은 새벽 감성은 가능하면 지양합니다만) 취기가 아니라 새벽 기운까지 빌려 글마중을 나온 참이다. 이성과 현실을 잡고 있던 끈을 살짝 놓고 나를 바라보고 내가 보는 것들을 같이 느껴보는 시간이 또 필요하다.
글은 작가가 되고 싶은 자의 어설픈 흉내가 아니니까. '내 마음 읽어주기' 독서 시간인 거니까. 민망도 하지 말고 의문도 갖지 말고 나라는 책을 읽어야지. 그것만이 글쓰기의 목적인 것처럼.
자~오늘의 독서는 여기까지. 새벽 3시를 향해가는 시간. 자는 동안 독후감이 써지길 기대하며 딸깍 불을 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