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아까 진짜 한대치고 싶었어요.
예? 아이고! 때리지 마이소~~
이건 도대체 무슨 뜻이야? 고상한 사모님처럼 도도해 보이던 포졸(역할)이 잠깐 쉬는 틈에 한 고백이다.
내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꼴 보기 싫다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다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나였는데, 글을 쓰고부터 사건(?)을 원인과 결과로 따져보려는 버릇이 생겼다. 저런 말을 한 이유가 있을 텐데... 앗! 그런 뜻이? 그 순간은 웃고 넘겼지만 기분이 사르르 나빠졌다. 며칠 전 월요일 얘기다.
지난주 월요일 나는 배우다 수업 때로 돌아가 본다. 원인 제공, 결과 도출을 위해 시간을 돌리는 중이다. 다른 표현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오해이거나 함의가 있을 수 있으니, 곡해는 말아야지 싶으니 말이다. 교실에 들어가기 전 아는 얼굴이라 내가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예"
읭? 예? 아... 안녕하냐고 물었더니 안녕하다는 대답이라니. 아우~ 심박한데? 나는 왜 저런 말을 못 하지? 누가 인사를 하면 꼭 모든 인사말을 다 해야 하는데. 하와유~라고 물으면 아임 파인 땡큐, 앤듀? 까지 하는 나 말이다. 그런데 저렇게 산뜻하다고? 깔끔하다고? 근데 왠지 모르지만 기분 나빴다. 그것도 아 ~ 하하 녜. 도 아니고 네! 쌩~이었단 말이다. 소심 대마왕 말하는 입술의 솜털까지 다 해석하는 버릇 나왔다. 이건, 반갑지 않으니 나 좀 '립미얼론'해달라는 표현이... 다.
그런 그녀의 뜬금포 고백이었다. "한 대 치고 싶었어요"라고 말을 한 그녀의 정체 말이다. 그날도 내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인사는 받아줬어. 그런데 오늘 대사에 깐죽대며 "와요?"라고 대답한 순간. 포졸 역인데 진짜로도 때리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굳이 알은 채도 반갑게 안 하던 사이에 친절히 해준다?
선전포고지? 좋아 받아주지. 까짓 것. 앞으로 웃나 봐라! 아는 척하나 봐라! 소심하게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이번주 월요일. 교실 앞 휴게실에서 또 친구를 만났다. 같이 수업 듣는 연상의 동료. 같은 수업 들으니까 친구긴 한데 연배가 높은 친구. 그분은 인사를 받자마자 대답이 길었다.
연기를 너무 잘하세요! 이 프로그램 끝나면 연기하세요. 연기하겠다고 말하면 써주지 않겠어요?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 바라는 바입니다. 아르바이트든 뭐든 진짜 하고 싶네요. 써주진 않겠지만요. 하하하하
아니에요. 진짜 하세요~^^
오예~~ 칭찬 먹었다~~ 룰루랄라~~ 어? 그럼 한 대 치고 싶었다는 말도 칭찬이었을까?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감정 잡기 좋았다 그래서 그 감정이 고스란히 몸으로도 전이가 되었다. 너 참 잘하더라. 네 대사를 받아서 내가 대꾸를 해야 하는데 편하게 연기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티키타카 하자라는 의사 표현이었을까?
그래 그렇겠지. 설마하니 평소에 네가 맘에 안 들었는데 때리는 장면도 있는 김에 한 대 치고 싶었다... 겠냐. 생각의 흐름이라니. 만망하네 그려.
잘했다는 칭찬이었던 거야. (재수 없는 대사에) 재수 없을 만큼 좋았다는 거지…. 칭찬으로 받을 수만 있다면 솜털까지 그러모아 나쁜 쪽으로 확신한 오해의 끈, 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치워야지. 그 생각 때문에 기분 나쁠 거까지는 없지만 굳이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세상 모든 일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해석으로 변환시키지 않아도 괜찮겠지? 모든 안 좋은 것, 부정적인 것, 회의적인 감정에만 최선을 다해 반응하고 해석에 열을 올리고 산 것도 같으니까. 칭찬, 미소, 배려, 사랑은 먹기 싫은 생양파 골라내듯 제거해 놓고 뭔가 맛이 빠진 것 같다며 감정 요리를 탓한 건 아닌지. 나를 향해 주었던 다양한 시선, 그중에서 먹어왔던 건 호의나 인정 같은 것만 빼버린 몸에 나쁜 편식쟁이 식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차려도 먹을 건 몸에 해로운 것들뿐인 차림은 아름답지도 먹음직스럽지도 않았다. 불평불만으로 가득했었다.
원래대로라면 오색빛깔 산해진미가 차려질 식탁. 내가 뭘 좋아한다는 확신이나 선입견은 잠시 접어둬야지. 내게 밀려오는 회전초밥 식 식당, 내게만 무료로 제공되는 음식들을 골라 먹지 말고 한 입씩 먹어봐야지. 먹어보니 내가 간절히 원하던 것일지도. 먹어보고 싶었던 맛일지 어떻게 알겠어? 실은 내가 받고 싶은 대로 세상이 주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르잖아? 부정적인 피드백을 원하니 그것만 골라 들었고 그러다 보니 그런 말만 잘해주는 사람이 곁에 많아졌고 그런 일이 더 많아지는 환경이 체계를 잡았는지도 말이다. 배가 부른 지 고픈지는 알 수 없지만 더 아우성치는 아기 새의 입에 벌레가 자주 들어가듯 내가 더 갈급하게 굴었던 감정만 보였고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을 풍성하게 해줄 착한 어미 새가 여름날 잠자리처럼 널렸을지 모르니 다양한 소리에 귀를 열어야지. 그렇게 살아야지 싶다. 오늘도 하나 배우는 배우 수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