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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Jul 26. 2024

9. 한껏 고조되는 흥

5번째 연기 수업 (이러다 사귀겠네~~~ 어화둥둥)

자꾸 실룩인다. 입이 자율신경이 된다. 흔들리는 눈빛과 달리 입은 헤실헤실 웃고 있다. 생각 같은 건 필요도 없는지 혼자서 신났다. 궁금하다. 둘이 어디까지 진도 뺄까? 저러다 손잡나? 근데 자꾸 어딜 가자는 거지? 설마…. 설마…. 거기에 가겠다고? 어머 어머 어쩜 좋아.


가입시다.

가입시다

아이고 신분제도 없어졌다 캐도요

아무리 그래도요

그라모 우리 나란히 걸읍시다

예? 어, 아이고, 와이러십니꺼(부끄러워 까르르 웃으며)

우리 어깨동무할까요?

예? 아이고, 사람들 봅니더(휘휘 주위를 둘러보며 들킬까 안절부절못한다)

아까 오 마이 갓이라 했습니까?


와하하하 아니, 두 분이 대낮에 어디 가시는데요? 모텔 가시면 안 되고요. 백촌과 흰고무래가 곤란했던 상황을 겪고 나서 나란히 결연히 걸어가려는 의지를 다지는 대목인데. 자꾸 부끄러워하고 사양하고 알콩달콩하면 안 되는데...


아이고 흥미진진하고 땀에 손을 쥐고 아니 손에 땀이 났지만 재미있다.

근데 왜? 연기 어렵다. 그건 그거고 오늘 연기 히트다 히트. 백촌 강상호 선생 연기는 청일점 육아휴직 중인 남성, 주인공이자 상대역인 백정 흰고무래는 목소리가 꾀꼬리 같은 여성이다. 두 분이 연기를 하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졸아든다. 이 두 사람이 사귈지 말지 모텔을 갈지 말지 자꾸 궁금하다. 두근두근 두 손을 꼭 쥐고 있다. 꼭 첫날 보내는 막 결혼한 두 남녀가 들어있는 방. 그 방 창호지에 침 발라 불 꺼진 방 안을 레이저 눈으로 쏘아보는 그런 기분이다. 아~~ 이러면 앙대!!! 두 사람 인생이야!! 떨리는 여성의 목소리와 다정한 남성의 중저음 목소리에 이 연극의 심각성과 의미는 어디로 자취를 감추고 손바닥 로맨스 소설이 되어있다. 방정맞지만 역시나, 재밌다. 크크크 아니 그래서 두 분이 사귀는 거예요, 아닌 거예요?


 내 맘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니, 모두의 맘을 어떻게 알았는지 선생님이 모텔 연기 그만하란다.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빵 터져버리고 말았는데. 나만 그렇게 들린 거 아닌 거 맞지?


나름대로 이렇게 하는 게 맞을 거다 생각하며 했던 연기도 해 놓고 나면 30도는 엉뚱하기 일쑤다. 모텔을 갈지 말지 궁금한 장면도,  <기방>이라는 대사는 자꾸 가방에 들어가신다로 대본 수정 완료고, 백정인데 <백성>이라질 않나..... 대사를 치면 칠수록 총체적 난국. 산이 바다로 변하고 바다에서 노 젓고 있었는데 갑자기 안방에 들어와 있는 형국이다.

그게 가장 심한 건 아마도 눌질덕이 배역, 나일듯하다. 나름 주변에서도 잘한다 칭찬이고 선생님도 (기 살려주느라고 하는 말씀이겠지만 어쨌든) 추켜세워주는데 어째 대사를 치고 나면 묘하게 이상하다.


곧 목이 잘릴 순간이라 격해져야 할 것 같다. 망나니(가 아니라 백정인데 짐승 죽이는 게 같다며 끌려온)인 친구가 내 목을 치려는 순간 못 하겠다며 멈칫하는 동료에게 어서 하라며 독촉한다. "컷! 이 장면은 말이지요" 화난 듯한 연기가 상황과 맞지 않단다. 친구를 배려하듯 둘만의 감정이 서로에게 가 닿아야 한단다. 울분을 표하는 대상은 친구가 아니라 백정이라는 사실일 뿐. 그렇다면 이 부분은 다시 연습하는 걸로.

우여곡절 끝에 목숨을 건진 나(눌질덕이)는 아들을 어른으로 키웠다. 장성한 아들은 혈기방장한 나이. 겁도 없이 사람 많은 곳에 가서 무슨 사고라도 칠까 노인이 된 나는 노심초사다. 향교에 고기 갖다주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면서도 잔소리가 4절까지 이어진다. "컷!" 이 부분은 잔소리이기 때문에 버릇처럼 말이 나오는 거예요. 상대를 앉혀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사가 아니라 "백정이 알아야 할 100가지"를 하나부터 쭈욱 읊어주는 겁니다. 그런 느낌으로 <하나 하면 할머니가> 어쩌고 <두울하면 두부 장수>하면서 점점 제 뿔에 감정이 쌓여가는 느낌으로 다시! 나 잘하는 거 맞아요? 묻고만 싶다. 아~~~ 잘하고 싶어라. 그래서 이 부분은 어떤 느낌이라고요?? 내 생각과 다르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느낌을 요구하기도 한다.

여기 이 부분은 요렇게 해서 얘기가 이어지고 있고 그렇다면 감정이 점진적으로 상승하면서 마지막, 투포환을 던지듯 소리가 멀리 닿게 힘껏 던져야 해요! 그렇게 "그라고!!!!!!!!"를 치면 음악이 나오는 겁니다, 아시겠죠 사임씨? '예? 뭐라고!!!!!!!! 요?' 그럼에도 뒤통수가 따갑거나 민망해 죽고 싶거나 쥐구멍 조회는 안 해도 된다. 그렇게까지 완벽하리라 생각한 것도 아니고 완벽해야 한다 다그치지도 않을 테니 괜찮다. 이대로 조금씩 더 다듬고 조이면 꽤 쓸만한 부품일 수 있겠다. 좋은 작품 속 꽤 쓸모 있었던 한 역할로.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한 연기가 엉뚱하다니 집에 가서 연습 조금 더 해야겠다 싶다. 자 그렇다면,


"그라고!!!!!!"


다음 편에 계속.


대문 사진은 형평사가 만들어진 사실을 크게 보도한 그 당시 <조선일보> 1923년 4월 30일자.

지금의 이름만 같은 신문사와는 사뭇 다른 행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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