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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Jul 29. 2024

10. 쉽지 않은..

6회 차. 넌 흰고무래고 난 눌질덕이야(내가 네 애비다)

책상 배열이 바뀌어있다.



오늘은 서서 하나? 책상은 한쪽만 앉을 준비가 된 의자와 세트고 한쪽은 벽을 향해 바짝 붙어 있다. 몇 개의 의자는 갈 곳이라도 잃었는지 무대 중앙으로 줄지어 나와 세트 된 책상과 마주한 상태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교실을 구성한 책상에 흥미가 돋는다. 그런 한편으로 약간은 느낌이 싸하다. 왜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나... 상황은 안 오겠지? 아직 다 모이지도 않았는데 사람이 줄어든 것 같다는 느낌이 어수선한 교실, 물음표와 함께 떠있다. 나와있는 의자도 준비한 책상도 적어 보인다.

오늘은 동생인 친구가 나보다 일찍 왔다. 누구보다 분위기를 따뜻하고 밝게 만드는 친구가 일찍 와 있으니 벌써 화기애애한걸? 그럼 난 무슨 역이냐고? 분위기 메이커. (같은 말 아님? 에헴)


도서관 1층에서 연기에 대한 책을 읽고 예습하려 했다. 고른 책을 읽으며 만반의 준비를 한다. 연기를 알 것만 같다. 혼신의 연기를 한다. 선생님이 칭찬한다. 다음 주부터 단원으로 들어오세요. 아직 그럴 실력이..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당장 현장에 투입해도 될 정돈 데요. 당신이 필요합니다. 아셨죠, 사임 씨? 또 엉뚱한 상상이다. 시간이 많으면 안 된다. 헛되이 시간을 보내기 일쑤니까.

이르게는 왔지만 고르는데 5분 휘리릭 넘겨보는 데 5분 필요할까 싶은 부분 읽는데 5분을 쓰고 나니 십오 분 만에 연기 실력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리진 못한다. 소품을 이용하라든지 일찍 와서 분위기 파악을 하라든지 연출자가 주는 팁은 귀담아들으라든지 하는 -연기 병아리 교육용 도서에서는- 건진 게 좀 있다. (난 달걀이니까) 당장은 쓸 곳이 없는 거 같지만 맞는 말 같다. 뭐든 배워 지난주보다 나아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 니 생각이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잘하면 더 잘하고 싶고 더 잘하면 꽤 즐거워지고 즐거우면 더 잘하게 되는 것처럼(?) 욕심도 내고 낸 욕심만큼 뭔가 더 표현으로 나오면 좋겠다. 알다시피 인생은 역시나 공짜 아니다. 도서관 평소보다 30분 일찍 온 거로 옜다~ 재능, 팁, 인사이트~뭐 이런 건 획득 실패지만 몸과 마음이 차분하긴 하다. 일찍 오나 늦게 오나 올라오느라 힘 다 빼는 등산은 진작에 끝냈으니 말이다. 읽으려고 책만 찾아놨는데 시간이 10시 몇 분 전이다. 연기 수업 교실로 내려간다. 연기할 완벽한 준비를 끝내고 교실에 들어가는 망상을 하던 중이라 뭔가 조급증이 난 상태였기도 했는데, 책상 배열을 보니 행복 스위치 탈칵. 새로운 시도 재미있겠다 생각한 참이다.


친구를 불러 선생님 가까운 자리로 옮긴다. 멀어서 목소리에 힘도 들지만 선생님 가까이에서 코치도 더 받고 싶으니까. 우등생들은 앞자리 앉는다면서요? 저는 키가 커서 맨날 뒷자리만 차지해 봐서 공부를 못했거든요. 앞자리 앉으면 그~냥 공부 잘하는 거 아입니꽈~ 왠지 내 자리가 아닌 거 같아 좀 어색하긴 하지만 내 의지는 충만하다.


오늘은 동료 1번 2번 3번이 못 오신다고 했거든요. 다른 분 백 씨 가 씨께서 대신해 주시고요. 해설 역도 안 오셔서 (같이 연극을 하는 선생님인) 박 선생님이 해주실 겁니다. 연극에 출연은 않고 참관하겠다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분들은 의자를 빼놨습니다. 수업에 꾸준히 올 수가 없다고 그러시니 아쉽습니다. 그래도 아예 관객으로 계시는 거보다 그때그때 비는 역할 해주시고. 동료역, 시장 상인역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자리를 모아놨거든요. 자 그럼 정리 끝난 거 같고. 다 오셨지요? 출석함~ 시작해 볼까요?

 

다 온기제?

출석함 불러봐라!

.....


주인공 흰고무래: 아부지요! 지 갑니데이!

눌질덕이로 분한 노씨: 산밑 향교에 고기만 갖다 주고 로 와야한데이

흰고무래: 예 걱정 마이소

눌질덕이: 사람들 많이 있는 데는 절대로 가지 말고, 만약에라도 마주치모 눈을 요래 내리깔고, 아무리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한 귀로 흘리뿌라

흰고무래: 예

눌질덕이: 옆에서 사람이 죽게 생겼어도 절대로 나서지 말아야 한데이

흰고무래: 그건 아니지요. 사람이 죽게 생겨쓰모 도와주는기 도리 아입미꺼?

눌질덕이: 백정이 도와주모 더 싫어한다. 세상인심이 그렇게 돼 있다꼬!

흰고무래: 됐심미더, 갑니데요~~!

눌질덕이: 그라고!


사임 씨 친구가 한 교실에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얘가 실내화를 놔두고 가방을 싸. 그래서 야~동철아 실내화 챙기래이 해요. 그런데 얘가 들었는지 마는지 복도를 걸어가. 그러더니 운동장까지 갔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실내화를 던져요!

사임 씨 학창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겠네. 하하. 옆에 있을 때는 작은 소리로 하면 되는데 복도를 지나 운동장까지 갔으면 고함을 쳐야겠지요? 그런 식으로, 점진적으로 소리에 변화를 줘야 해요. 아들한테 잔소리 거리가 잔뜩 있는데 얘가 듣지도 않고 계속 가니까. 그리고 마지막 "그라고~"할 때는 투포환 던지듯이 정말 멀리까지 가 닿을 수 있게! 아들이 이미 저 짝(쪽)까지 가고 있으니까요. 알겠죠? 자 다시 한번 더.


이건 지난주에도 지적을 받았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소리만 컸나 보다. 목소리만 큰 게 아니라 단전에서 무거운 걸 던지듯 소리를 올려서 던져야 한다고…. 다음 장면을 연결하기 위한 브리지 역할로 <그라고>를 쳐야 한단다. 어찌 된 게 할 때마다 더 어렵냐. 선생님은 잘하니까 자꾸 더 욕심이 난다는데. 꽤 맞는 말이기도 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갸우뚱하게 된다.


지적은 틀렸다는 것과 동의어로 듣고 산 내 입장에서는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무척 새로운 시도다. 여기에서는, 그러니까 이 부분을 조금만 더 요렇게! 이런 식으로~~ 하고 계속 계속 친절한 설명이다. 여기서 점진적으로 커져서 코치가 더 많이 들어오면 아마도 나는 캘리포니아 건포도가 될 준비가 될지 모른다. 긴장과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노사임당이 노사임이 되었다 노사가 되더니 기어이 노를 저어 먼 곳으로 가버릴지도.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은 잘 쭈그러드는 사람이었고 사람이다. 누가 입맛 뻥긋해도 주눅이 들던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 마흔의 노사임당. 그런데 요즘 같으면 나라는 사람은 진작에 군더더기 없는 <노>로 백만 년 살아낸 것 같긴 하다. 나라는 사람의 역할이나 성격이 변한 채다. 꽤 오래전부터 자신 있는 자세로 부잣집 막내딸로 목에 힘주고 산, 자신감이 완결 상태로 치맛단에 붙어있는 자제분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내 인생이 전반전 끝나고 쉬는 시간 정도 될 테고 그렇다면 포지션을 바꾸는 것도, 선수 배치를 달리하는 것도 그래서 삶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달라져야만 할지라도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긍정적 변화일 거다. 흔한 말로 아줌마 파워가 올라온 상태로 좀 오래 살았더니 파워가 조금은 습득된 건가? 허리 상태는 안 좋은데 근육운동을 열심히 해놔서 어쨌든 정상적으로, 평범하게는 살아지는 것처럼? 없는 힘도 끌어모으는 아줌마 에너지 K-아줌마 초능력도 실은 꽤 쓸모 있다. 의자에 짐부터 던지던 우리 엄마 세대 K-아줌마 초능력은 조금 부끄럽지만 말이다.


이래도 저래도 괜찮다. 진짜로 노를 들고 이 항해를 더 잘할 준비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소심한 노사임당으로 예민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상처받고 글쓰면 된다.ㅋㅋ

나는 지금 배우고 있다. 그리고 크고 있다. 많이 변했음을, 자랐다는 걸 느끼는 배우 수업이긴 하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는가 보다.


나는 배운다. <나는 배우다> 수업 사 랑 해 요~ (사랑해요 밀키스~따거 윤발이 오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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