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처음으로 도서관이 아니다.
연극무대 그곳에서 하기로 한다. 극단 현장으로 출동이다. 가르쳐 준 곳이라 '생각한 곳'으로 간다. 주차한다. 버스를 탈지 생각도 했지만, 큰딸이 같이 가보겠다고 하는 바람에 -버스비보다 차비가 쌀 것 같아- 운전대를 잡았다.
가까워 보이는 곳에 주차한다. 여기서 이렇게 가면 도착이겠지? 뚜벅이 모드 내비게이션을 튼다. 도착이라고 뜰만한 곳에 다다라가지만 아니다. 정확도가 떨어져서 그런가? 걸어가느라고? 아니, 뭔가 내 예상과 다르다. 이렇게 가서 저렇게 도착해야 하는데 쭉 가서 건너서 다시 건너고 뒤를 돌아서 코너를 틀고 가야 한단다, 해석이 맞다면. 전화기를 이쪽으로, 저쪽으로 돌려가며 방향을 잡아본다. 흡사 개그라도 하는 자의, 웃기려 애쓰는 자의 몸짓이다. 여름의 한가운데, 여름의 태양이 가장 깨끗한 얼굴로 뜨거움을 쏘는 그 시간 우리는 맞선다. 왜 무슨 연유로인지도 모르고.
100미터 거리를 25분간 헤매다 들어간 극단 현장. 그것도 2층인가? 하며 올라가려다 1층에 있던 찻집에서 알려준다. "지하예요". 얼굴이 낯익다. 유튜브로 봤던 수무바다 흰고무래 실내 연습 화면에 있던 단원이다. 지모산이 역할. 오후, 신기하다. 연예인 봤다.
지하로 내려간다. 어? 지모산이 연습하던 그 공간이네? 동영상으로 봤던 곳에 내가 들어와 있다니 감회가 새롭다. 10시 정각 도착. 일찍 나오길 잘했다. 처음 오는 길을, 100미터를 25분 이내에 주파하다니. 자랑스럽다는 게 아니라 그것도 대단한 거다 싶다. 왜냐하면, 반은 아직 도착 전이다. 아마 대부분 초행길이라 헤매나보다. 다들 거의 나만큼 길치인가 본다. 나는 나를 아니 일찍이라도 나왔고 정시 도착이라도 했지. 아니었다면 저들의(?) 지각은 내 얘기다.
이렇게 가면 저렇게 되고 결론적으로 이러한... 이라 생각한 많은 일은 계획과 다르게 끝을 맺는다. 뻔한 길 하나도 예상과 빗나가는게 더 많을 정도다. 그런 실망과 낭패 난감함을 피하고자 더 철저히 무언갈 계획하기보다 피하는 것으로 궤도를 잡곤 했다. 당황할 일도 만들지 않는 나만의 확실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렇게 치밀하도록 예상할 수 있는 삶을 살던 일상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도 내가 원하고 찾아서 말이다.
친구들이 깜짝깜짝 놀란다. "샘, 그런 사람 아니잖아"(학교에서 일하며 만난 동갑인 동우 엄마). "엄마가 뭐 배우러 간다고?"(태생 시부터 함께 산 딸) "너거 엄마 요즘 바쁘다!"(딸을 낳기 위해 함께 살기 시작한 남자. 농담.)등등.
같이 그림을 그리는 언니는 길이 막히는 걸 싫어한다. 신호가 잡히려는 순간 길을 꺾는다.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조금 더 걸리고 조금 더 돌겠지만 결국 언니가 원하는 대로 막히지 않은 길을 달려 목표 지점에 도착한다. 정해놓은 곳에서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기 싫어 시도조차 하지 않던 나는 병적일 만큼 길치이며 호전될 가망마저 없는 상태다. 모든 길은 통한다는 느긋함으로 무장한 언니는 웬만한 길은 안다. 어디를 가도 가본 길이다. 익숙하게 운전하는 그녀가 질투 날 만큼 부럽기도 하다.
그게 타고난 것일 수도 있지만 살다 보니 터득한, 혹은 연습의 효과로도 보인다. 매일 하며 그림이 미세하게나마 느는 나를 보면 100% 신뢰 가능하다. 목표 지점 설정이 되었다면 돌아가고 부딪히고 헤매더라도 갈 수 있겠지? 길 찾는데 두려움부터 드는 나긴 하지만 잃어버린들 길일 테다. 거기서 얻는 것도 없진 않을 테고. 어떻게든 목표 지점에 가는 게 목표라면 가게 되리라. 시간이 목표가 아니라면. 10시까지 도착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나는 무슨 목표를 잡았기에 연극을 배우고 있을까? 글을 쓰고 있나?
몰라도 좋다. 가는 길이 흔들릴 수 있듯 목표마저 흔들려도 되는 거겠지? 목표 없이 온 자의 변명이지만 지금부터 목표도 길도 찾아도 되는 거. 삶이라는 목적을, 살아간다는 목표를 잡고 무엇이든 해 보리라 겁 없는 생각을 해 본다. 내게 찾아온 사춘기를 즐겨보리라 다짐하며 연극 그 속으로!
남해바다. 제가 말씀 드리는 남해바다는 항시 남해군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