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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 낭독극

9번째 수업 시간

by 노사임당 Aug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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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의상을 입어 볼게요"



주말 첫 연습이 끝나고 선생님이 한 말씀이다. 내일이 벌써 마지막 연습이라니. 월요일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

.. 를라나? 감회가 새로울 것 같긴 하다. 후회되기도 아쉽기도 그것도 아니면 후련하려나?


외워서 하는 연극은 아니다. 낭독극이다. 입체낭독극. 목소리만으로 끝나는 낭독보다는 조금 더 극적 요소가 가미된 입체낭독극. 의상과 분장까지는 한단다. 그것도 전문 분장사가 직접 해 줄 예정이라나. 와우~ 외형으로만 보자면 필시 연극배우의 그것이리라. 하지만 실제 무대에서 보이는 것, 움직이는 건 목소리뿐일 테다. 그럼에도 일반인 출신 우리는 진짜 무대에 오르는 기분이 들지도. 의상에 분장까지 하고 무대를 향해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걸어가, 착석. 열렬한 환호 속에 연기 시작. 가족 같은 무대에서 (학연, 지연, 혈연으로 엮인 관객만이 있을 예정) 네 연기를 맘껏 펼쳐~~


외워서 하는 극이 아니라고는 해도 어떤 대사가 나오는지 언제 나오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둘째가 대사를 다 외운 상태라 샤워시키며 상대역이 되어준다. 느낌은 알겠는데 대사가 바로바로 나오지 않는다. 여러모로 야무진 딸과 그렇지 못한 엄마다. 한 번 더 연습해야지. 역도 대사도 아직 어색하다.


작은 선생님께 지난주 들은 말이다.

"그 역할에 들어가지 말고 그 상황에 들어가세요. 각각의 역할에 몰입하는 것보다 전체 상황에요. 커다란 물결에 휩쓸려 물길을 가듯 흐름에 맡기세요. 각기 다른 역할에 집중하면 상황을 놓치게 돼요. 너무 잘하고 계시니까 자꾸 욕심이 나서..." 연습실에 따라가겠다는 첫째와 밖으로 나와 "무슨 말이야? 역할이 되지 말고 상황에 들어가라는 게?" 회의와 협의를 기억이 난다. 벌써 번째 들은 말이라 막연하게 것도 같으면서 여전히 알지는 못했던 그 말. 둘째와 연습하면서도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무슨 말일까? 연기란 그 역할이 되어 내가 아닌 그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었나? 눌질덕이가 죽는 장면에서는 흐느끼듯 슬픔과 분노를 표하고 아들에게 걱정을 토할 때는 자식 사랑하는 아비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란 말인가?


"상태와 마음만 있으면 될 거다."

오늘 최 선생님이 들려준 말이다. 지도해주시던 연출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던 말씀이었단다. 오늘 선생님이 하신 말씀에 지난주 작은 선생님이 안타까운 듯 해준 얘기가 겹친다. 어? 무슨 뜻인지 이해되기 시작한다. 아! 이 말이구나. 역 속에 파묻혀 감정만 꺼내려 노력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말이다. 한배를 탄 운명 공동체인 거다. 나 혼자 농부 역에도 파일럿 역할에도 심각해선 안 되는 거다. 배를 타고 있다고 치자. 멀미하고 있는 군중들 속에서 작은 에피소드 혹은 사건들을 장면 장면 올리는 거다. 모두가 힘들고 속이 불편한 상황이지만 누구는 최대한 참고 침착을 유지하려 하고 누구는 나보란 듯이 바다를 향해 인사를 하고 있고..하는 뱃멀미를 동반한 승선기인 거지.

장면에는 어울리지만 극 전체로 보면 너무 동떨어진 상태가 되어선 안 된다. 이건 마당극이다. 기본적으로 유쾌하고 활기차며 생명력이 느껴지는 무대, 그러면서 흐름상 슬픈 장면 아픈 장면도 끼어있는 거다. 그렇게 이해를 하자 내가 어떤 마음으로 역에 들어가야 하는지 알 것만 같다.

프로듀서 101. 같은 무대에 섰는데 혼자 튀겠다고 혹은 잘하겠다고 할 경우 생기는 불상사가 있었던 거 같달까. 밝은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는데 발랄하게 춤추다가 눈물이라는 가사가 있다고 혼자 눈물 흘렸달까. 전체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티'. 그런 걸 열심히 -잘하려고 고민해 가며-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나 튀고 싶어 한 나. 나는 저들과 다르다 생각한 오만. 튀고 싶어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모두를 못마땅해하던 내가 아닌, 무리 속으로 들어가야 할 나가 보인다. 원하지 않더라도 흐름이 있다면 몸을 맞추는 유연함. 내게 참으로 부족하고 평상시 어려워하는 부분에 대한 지적이었음을 깨닫는다.

한 번밖에 남지 않은 연습이지만 이해가 늦어 죄송한 마음과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나 내일 좀 날듯한 착각이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다.


저 잡지 마세요. 내일 좀 활공할게요~~~!!!


그리고! 월요일 공연 보러 모두 오세요!!! 선착순 50명!!! 극단 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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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바로 앞 갑을슈퍼까지 찍어봅니다. 슈퍼투어를 좀 해야 하는데 이곳이 좋은 자료 재료 뭐든 되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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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모작해 봅니다. 모작이 더 어렵다 느껴지는 걸 보니 제가 하는 방식이랄까 스타일이 생겨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조금 들었습니다. 그냥 기술 부족일지 모르지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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