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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Sep 05. 2023

국수를 좋아합니다.

남편도요.

(그림# 노사임당(이미지 핀테레스트)

여자 셋. 모녀만이다. 그 참에 좋아하는 국숫집으로 아이들을 데려가 저녁을 해결했다.




남편이 출장을 갔다. 일주일. 홍콩인지 필리핀인지 갔다는 거 같다. 이렇게 얘기하면 얼마나 바쁘면 남편이 어디로 출장을 갔는지도 기억이 왔다 갔다 하냐 안타깝겠지만. 원래 이렇다. 남편일에 관심이 없다. 남편일 뿐이면 다행인데 귀여워 죽겠고 아까워죽는 딸들 일에도 이러니 말 다했다.


남편은 섭섭해하더니 이젠 포기했다. '이 여자는 그냥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거까지도 아니고 나를 싫어하는구나.' 하고 잠정 결론 내버렸다.


결혼의 고비라는 '10년주기설'의 이혼위기 해인 10년. 그 기간이 1번 반을 넘겼으니 남편이 사랑스러워 미치겠는 범주는 아니리라 짐작되나 인상까지 싸늘한걸 보면 어지간히 '싫은가 보군' 남의 일인 듯 쉽게 그런갑다해진다.


그런데 사실 억울한 면도 있다. 없다면 좀 억울하다.


결혼 같은 거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살다가 이렇게 좋은 사람 '진짜 사람 같은 사람' 다시는 정말 다시는 못 만날 거 같아서 모르는 척하고 순리대로 결혼을 해 버렸다. 싫은 면+싫은 것+싫은 점 다 더해도 '인간다운 인간인 남편은 못 이기겠더라.' 는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이기적인 놈. 사기 치는 놈. (돈?) 밝히는 놈. 별 인간을 만났지만(직장에서! 오해마시라.) 인간은 인간다워야 인간인 거라. 이 인간답다는 거에는 둘째 갈 수 없는 남자를 내 칠 수가 없었다.


우리 남편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부부 동반 모임이든 결혼식에서든 점잖게 빼입고 나온 나를 처음 보면 화들짝 놀란다.

"아니, 형님 형수님이랑 너무 안 어울리는 거 아임니꽈?"

"야, 제수씨랑 너무 언발란스다 인마!"

이것도 내 앞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차마 내 앞에서는 얘기도 못한다. 상스러운가 보다.


동네 고깃집 사장도 술 좋아하는 남편과 친구가 되었다기에 팔아준다고 갔더니 다른 날 술집에서 만난 고깃집 사장이 대뜸 "둘이 너무 안 어울리던데?" 하며 얘기를 했다는 소리를 전해준 남편이었다.

사실 외모만 보자면 남편은 나 혼자 산다 속 (2019.5월 15일 출연자) 김도연 씨의 언발란스함을 닮았다. 몸은 타고난 근육질 역도라도 한 듯한 식스팩 장착 몸매(라고 하고 깍두기닮았다고 처음 본 사람들은 무서워합니다)에 자칭 부끄럼쟁이다.

그와 반대로 몸만 보자면 상극이다 싶게 언발란스는 맞다. 직장 때부터 사무실 옷을 단체로 맞출 때도 대표로 입고 사장님께 컨펌을 받을 만큼 몸매만 약간 도우미급인 나다. 그렇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겉만 보자면 내가 참 밑지는 듯도 보이는 장사 같다. 수줍어할 것 같은 과거 잠시 모델같(았) 던 외모인데 남 앞에 글 쓰며 그림 그리며 나대는 게 남편과 반대다.


하지만 오래 볼 것도 없다. 잠시만 말을 해보면 안다. 나라는 쨍그런 차가운 쇳조각 같은 인간미라고는 없는 사람에 대해. 금방 호통이라도 칠 아니, 호통치는 목소리 끝에 딸려 나오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호의를.


남편은 나와 결혼할 당시 믿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빌었다고 했다. 그것도 얼마 전에 알았다. 남편이 생각할 때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면서 나온 말에서.


"우리 마누라가 자신의 마음을 목소리에 담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 건강을 바쳐도 바꿀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밥 먹었냐"며 일상적으로 묻는 (나만을 위한 배려의) 말에도 눈물이 터져 몇 시간을 울기만 하던 여자에 대한 답답함에서 한 소원일 수도 있다. 제발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여자로 살게 해 주시고 그래서 일상도 편하게 속상한 일도 편하게 대화하듯 밥상에서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은 기도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소원은 10년이 넘어가니 기적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젠 내 마음도 표현하지만 재단까지 해서 남까지 표현한다. '미워죽겠네 남편이 하며' 눈으로 째려봐가며 인상 써가며 말이다.


그 누가 봐도 건강은 자신 있을듯 해 보이는 남편은 복강경 수술이 쓸개도 가져가버려 '쓸개 빠진 사람'이 되었고. 몇 달 전에는 배가 아파 약이나 좀 받을까 간 병원에서 급성췌장염으로 입원을 하는 일이 생겼다. 연휴를 앞두고 병원 문 열려있을 때 약이나 타놓자 싶어 간 병원이었다. 몸이 둔해 '배가 약간 아픈데..' 하며 찾은 병원에서 갑자기 입원을 시키고 피가 몸에서 뽑아지지 않을 만큼 걸쭉해  당장 죽는 사람 대하듯 해서 더 연유를 몰라했다는 얘기를 병원 입원실에서 들었다.


말 밖으로 드러난, 걸쭉한 그의 피만큼 탁한 목소리 이면의 그는 한 없이 사랑이 넘치고 배려가 넘친다.(넘의 남편이 설거지 한다고 주말 아침 아이들을 밥 먹이고 마누라 늦잠을 응원해 준다는 얘기에 열받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몸의 거리만큼 멀게 느껴지긴 하지만. 내 남편의 진심은 먼 것 같지만 누구보다 사랑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안다. 혼자 큰 것 같지만 남편이 이만큼 키워줘서 요만큼 목소리가 나온 것도. 출장처럼 멀어졌다 돌아오는 남편처럼 내 마음도 멀리 돌아가 있지만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내 남편에게 다시 돌아 가리란 걸 안다.

이 사랑이 몸 구석구석 숨어있는 남자를 버릴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만큼이나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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