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에 부정형 동사가 와야 할 것 같지만 아니, 어울리는 문장이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문장이 어울리라고 거짓을 말할 순 없으니까요.
자랑이라서 이렇게 굳이 드러내어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이런 제가 싫어요.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척척 이해도 되고 머릿속에 남아서 아는 척도 좀 하고 싶고 아는 걸로 사회 환원도 하고 싶고. 나름 유식을 자랑할 용도로 타인을 돕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이니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지도..) 그럼에도 저는 무식하고 그것은 기정사실입니다.
뭐 어느 유명한 철학자가 말했다고 배운 "너 자신을 알라"로 보자면 저는 저를 잘 알고 있는 거니 그건 인정할 만한 거 같습니다. 이제 새로운 진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면 되니까요. 무식하긴 해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정도랄까요?
사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모르는 게 너무도 많구나! 깨닫게 되니 혹여나 제가 많이 배운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닐까 착각하실 저를 모르는 -많이 배워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분들께 고하자면 그 수준은 아닙니다. 박사학위를 땄더니 연구한 부분 외에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도 아니고, 대학원을 나왔더니 그동안 내가 좀 안다고 생각했던 오만에 부끄러워진 것도, 대학물 먹었는데 사회 나와보니 잘난 사람 천지더라 하는 수준도 아닙니다. 저는 구구단도 잘 모릅니다. 이건 실은 성의 문제이긴 합니다만 단적으로 저의 무식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노력하지 않는다. 알려 하지 않는다' 정도랄까요?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있을 겁니다.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잘났고 아는 것 많고 지혜로운 분들이 많은 세상에 굳이 자신의 무식을 자랑하기 위해 지면과 타인의 시간을 낭비시키는 만무방은 아니니까요(희망 사항인가요?)
저는 아는 것이 적지만 행복해지고 있습니다. 아는 것이 많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텐데 인과가 너무 엉뚱하긴 하지요.
근데 잠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행복해지는 용도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공부를 하고 학위를 따고 더 많이 알고자 하지요? 많이 알게 되는 것과 행복이 별개라면 알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은 본능이기 때문인가요? 행복만이 인생의 조건, 목적은 아니기 때문인가요?
이처럼 저는 무식합니다. 이런 간단한 물음에도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걸 봐도 말이지요. 제 무식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저의 글을 한 편이라도 읽으셨다면 눈치채셨을 테니 강조와 밑줄 쫙은 그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연관도 없이 뻔뻔하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하지요.
너무도 불행하고 너무도 끔찍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누구 한 명 날 사랑하지 않는 세상에 태어나버렸다고 생각한 채 살았습니다. 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느끼며 살았습니다. 허나 지나고 보니 그땐 왜 세상이 그렇게 보였을까? 저 자신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불행을 만나보지 못해 상상해 낸 불행 속에 산 건 아닐까? 싶기까지 합니다. 누군가의 커다란 불행도 제 손가락에 비친 피보다 진하지 않았고 세상의 부조리함도 제 환경의 불합리함보다 크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예, 저는 무식하다기보다 이기적이었군요. 아니, 근데 그때는 정말 그랬으니까요. 제가 느낀 세상이요. 그건 지금의 제가 바로잡을 수 없는 그 당시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글의 흐름을 위해 무식을 읊었던 대로 이기적인 제 모습을 다시 열거해야 하나요? 그건 저도 바라지 않는 바이니 넘어가겠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 자신밖에 알지 못했지요. (또 하나 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걸 보니 이것도 하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세상을 살던 제가 요즘은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인 저 자신보다 타인에게 눈을 돌리고 관심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시간과 비례해 늘어납니다. 50년 동안 저만 보며 저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인생 후반기는 시야가 트일는지도 모르겠네요.
50년 만에 깨지는 알 속에서 나가는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알은 50년이나 쪼아야 깨어질 만큼 두껍기도 했지만, 안에서 두드리던 저와 밖에서 저를 향해 수도 없이, 지치지도 않고 외치고 두드리던 남편이라는 사람의 노력 덕분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15년 동안 외쳤어도 들리지 않았던 남편 목소리가 이젠 들립니다. (실제로 들으니,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네요) 알 밖으로까지 나온 건지 깨는 중인지는 더 지나 봐야 알겠지만 이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약한 빛 속에서만 바라보던 제 손과 발, 저의 체취에서 벗어나 이젠 타인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자신에게 둘러싸여 있던 세상에서 저 자신이 되어 살아갈 세상이 있습니다. 냄새를 맡을 수도 누군가를 상상이 아닌 실제로 볼 수도 있습니다.
혼자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몸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깨어져 버릴까 두렵기만 했던 알. 그 속에서 나와보니 세상은 그렇게 무섭기만 한 곳은 아닙니다. 상상만큼 파괴적인 곳도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나로 향하던 수많은 비관적인 생각, 회의적인 기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단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더 생깁니다. 이기적인 마음을 조금씩 벗는 요즘. 무식함도 조금씩 벗을 듯도 합니다. 세상을 향한 순수한 호기심, 그 호기심에서 시작한 알고자 하는 마음이 지식과 지혜를 줄지도 모르니까요. 아이작 아시모프가 말했지요. '지식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무지가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요. 무식을 자랑하지 말고 세상을 향해 관심을 두고 알고자 하겠습니다.
그래요. 저는 행복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제부터 매일 그런 생각으로 그런 하루를 상상하며 깰 것 같습니다. 눈뜨기 싫던 아침은 이젠 없습니다. 호기심과 이타심을 장착한 사람으로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뎌보겠습니다. 저는 이제 겨우 물레에 올려진, 갈무리된 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행복만 찾을 순 없습니다. 언젠간 그동안 고생한 남편에게, 사,사,사,사....뭐하는 남편에게 졸혼을 선물.. 에헴. 지금처럼 함께라서, 혹은 따로라서 행복하게 계속 살겠습니다.
이상은 토요글방 숙제 <행복>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주말에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 견학 가려면 돈적 시간적 비용이 많이 필요해서 일단 간 김에 부산대 구경 좀 했습니다. 첫째가 고등학교를 가려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구경도 필요할 테니까요. 박물관이 하나 생겼더군요. 이뻐요. 건물이..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려보았습니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뭐...그냥 그런 숙소를 잡아 해가 지기 전 찍어봅니다. 조식도 준댔는데 늦잠 자서 못 먹고...TT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