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받았다. 이걸 편지라고 해야 하는지 우편물이라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둘의 차이가 뭔지 사전적 의미 한 번 보자.
편지 //안부, 소식, 용무 따위를 적어 보내는 글.
우편물 //우편으로 전달되는 서신이나 물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
그렇다면 우편물이다. 아니 용무가 적힌 편진가? 뭐 어쨌든 우편함에 든 그것을 드디어(?) 발견한 거다. 그것도 운 좋게, 내가. 보통은 아이들이 퇴근(?)하며 가져오는 우편물을 내 손으로 집어 올 수 있었다.
하루하루 연락이 늦을수록 여러 감정이 오락가락했다. 설마, 혹시? 아 진짜로….일주일이 넘은 것 같다. 연락을 기다린 지가.
진주시로 발신인이 찍힌 그것은 기다리면서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진주시에서 봤던 면접 결과는 이미 받았다. 연락을 안 받는 것으로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 오늘 이 건은 보통 2주 안에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영영 소멸하는 일이 될 거라 했다. 그렇게 없던 일이 되는 좋은 소식이라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의 표면적 의미, 단어적 의미로써 말이다. 그럼에도 기다리는 마음은 나쁜 소식이라도 좋으니 어서 마침표를 찍게 해 주길 바랐다. 그런 마음이 들자마자 조금만 기다리면 좋은 소식으로 보답할 텐데 그걸 못 기다려 보채냐는 채근으로 다가왔다. 내 마음은 확실했다. 우편물이 영영 오지 않기를 바랐다. 뭐가 되었든 빨리 받고 싶었다. 순간순간 확실한 감정으로 이루어진 생각이 교차했다.
교통 범칙금 연락을 받았다. 드디어, 혹시나, 하며 기대했던 무소식. 희소식에 대한 희망은 사라졌다. 정직하게 나는 과속을 했고 나는 범칙금 딱지를 받았다. 아~ 내 쌩돈. 40,000원. 또 늦어 원금을 다 내는 과오를 금하기 위해 선납했다. 32,000원. 우편물을 받자마자. 이체 띠로리.
특별한 길, 모르던 길을 가던 건 아니었다. 알던 길. 매일 가던 길. 눈 감으면 선은 비뚤어질지언정 모를 일은 없는 길이었다. 드로잉을 배우러 가며, 연기를 배우러 가며, 뮤지컬을 배우러 가면서 어쩌다 보니 그렇지만 일주일에 5번을 가던 길이었다. 그 길을 매일 가면서 익숙하다고 생각한 그곳. 신호가 어디에서 걸리는지 얼마만큼 밟아야 초록 불에 건너갈 수 있는지 훤히 알고 있던 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침 9시 27분. 시동을 걸고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많은 직장인이 이미 출근 한 길을 혹은 출근하자마자 어딘가로 바삐 외근을, 배달을 가는 차량이 조금 후 11시보다는 많은 그런 시간. 그럼에도 내가 살고 있는 면에서 강을 하나 건너는데 신호 한 번이면 족할 만큼의 시간, 막힘 정도로. 차선이 어디로 연결되어 어느 선이 더 막히는지까지. 이 길은 아는 길, 곧 익숙한 길이다.
그런 길에서 처음 들어온 사람처럼 아니, 원숭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식으로 실수를 한 거다. 카메라가 달린 곳이 짧은 구간에 두 개나 붙어 있어 제법 긴장하며 달려야 하는 길임에도. 하나를 마쳤다고 안심하자마자 다른 길에서 달려버린 거다. 어릴 적 하던 너구리 게임에서처럼 한 구멍 잘 피했다고 잠시 방심하다 발에 바퀴 달린 적군에게 잡혀 영혼 가출 되어 버린 거다.
익숙함이란 뭘까. 안다고 생각하는 것. 굳이 알기 때문에 다시 복습할 생각하지 않는 것. 그래서 쉽게 보는 것, 관찰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익숙해진 숟가락질에 내가 어느 손가락으로 숟가락을 잡는지 어느 높이에서 잡을 때 밥을 퍼기 더 편리한지는 굳이 따지지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더 이상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상태. 모를 내용이 없는 상태. 우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정말로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를 거다. 흔하디흔한 솔방울마저도 "그거야 당연히 이렇게 생겼지!" 하며 그리려 들면 멈칫해지듯. 매일 보는 아이의 얼굴도 눈 하나 그리는데 몇십 번을 봐야 하고 코 그럴 때는 몇 번 입은 또…. 익숙함이 앎과는 다름을 인정해야겠다.
눈에 익은 것들도 변할 수 있을 테다. 익숙하다고 편하다고 생각한 것. 세월이 변했으니 게다가 나도 변했으니 이젠 달리 보일 수도 있다. 나마저 어제의 내가 아니듯 익숙했던 모든 것들도 예전의 그것들은 아니다. 먼지가 쌓여 겉으로만 달라 보일 수도, 벌레가 갉아 먹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익숙함이 주는 지루함을 한 번은 털어버리는 것도 삶을 재발견하는 맛이 될지 모르겠다. 언제나 그대로인 건 없듯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도 가끔은 필요할 거다. 익숙해서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범칙금이나 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상함이 보이지 않았다. 숫가락 암가락. 숯가락 숟가락 숱가락 무얼 붙여도 익숙한 이 느낌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