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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Sep 13. 2024

밥 먹자

니가 살 거제?

외식하자.



내가 좋아하는 단어를 담은 문장이다.

입금되었습니다. 에누리 판매 중입니다. 미인이십니다…. (미안합니다.)

누가 사준다면 더 좋다. 밥 사줄게. 커피 사줄게. 옷 사줄게. 남편이 학을 떼며 놀라는 고약한 버릇이지만 (네가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살아~!) 누구한테 입은 은혜인지 몰라도 각골난망된 상태라 어림없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은혜인지도 모르겠지만, 누구한테 이런 유산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문신으로든 각골했든 이미 과거완료형이다.


나는 업이 있다.

전문 분야는 밥 짓기. 부업으로는 빨래와 청소 애 키우기 등을 하고 있다.

내 직업은 주부다.

부캐로는 남편 키우기도 있다. 에헴

주 업무답게 밥하기는 무척이나 까다롭고 지치게 하며 그만둘 수 없고 쳇바퀴 같은 일이다. 한 번 정해진 상사는 변하는 법도 없다. (어린것들과 어르신과 동기 모두 어쩐다고 상사가 되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안 먹고 살 수 없다. 생각만 해도 주춤하게 되는 그곳이 그만큼 무섭듯 내 주 업무도 무시무시하다. 집구석이 포도청이다라고 바꿀 수 있겠다.

그런 무섭고도 준엄한 일, 내 주 업무다.

나의 직장과 내 직업은 전 세계 많은 동지가 인정하고 오늘도 체험했듯 책임감이 많이 따르는 일이다.


갑자기 사장님이 출장을 갔는데 상사가 말한다.

야! 사임아 사장도 없는데 오늘 일찍 퇴근하자!


저녁을 누가 사준다는 말과 같다. 밥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내일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내 일이고 없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오겠지만 지금, 이 순간 오늘 저녁밥이 프리. 안 해도 된다면?

휴가, 휴가다. 반차든 뭐든. 돌아올 때 어질러져 있을 집은 지금 단 한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다. 그 말을 듣는 찰나 동안 뇌 속에 담겨있지 않다. 잠깐의 정전과도 같은 단절. 내 뇌는 휴가를 받은 상태다.


투고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매달려 퇴고에 퇴고를 했다. 첫 원고는 쓰레기라고 고 헤밍웨이 할아버님이 말씀하셨던가? 그 말에 따르자면 내 원고는 너무도 정확하게 글자 그대로다. 쓰레기. 이 글은 내가 썼다. 그 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고치고 있다. 그런 연유로 획기적으로 나아질 수도 몰라보게 좋아질 리도 만무하다. 내가 쓴 글을 내가 고치는데 다른 글이 될 가능성? 흐흐 내가 남자 옷 입는다고 남자가 될 수 없듯 나는 그대로일 테고 내 글도 겉에서 보이는 먼지나 좀 털뿐. 본질은 변함없을 테다. 윤종신의 노래 가사처럼 '겉에서 보여지는 옅은 초췌함'이 사라지는 정도. 딱 그 정도일 거다.


그럼에도 고쳤다. 쓸데없이 늘어놓은 부사를 지웠고. 수다 떨듯 또 쓴 문장을 지웠다. 숨 쉬듯이 틀리는 맞춤법을 다시 고치며 손을 보지만 아무리 읽어도 그냥 내 글이다. 코를 막고 쓰레기를 치운대도 냄새나 겨우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뿐. 쓰레기는 쓰레기 그대로다.


쓰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운명을 느껴서는 아니다. 쓰기를 강요하는, 나도 모른 내 글 재주 덕에 주변에서 원고를 자꾸 찾아대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찾지도, 원하지도 않지만 먹고 살기 위해 잡지며 신문에 투고하는 글쟁이도 뭐가 당연한진 몰라도 당연히 아니다. 순전히 순수하게 글쓰기는 즐거움이다. 살아있음으로, 순간순간 내가 살아냈음을 자축하는 기록이다. 헨젤이 흘린 빵 부스러기를 먹어 치우는 밤 짐승 같은 기억력이 내 뒤를 모조리 먹어 치우기 전에 내가 누구였는지 남기고 있다. 이뻤던 시간도 못났던 시간마저도. 사진찍기와도 같은 취미다. 혼자서 즐거워하는 독백이다.


갑자기 휴가를 받은 상태다. 글을 마무리하고 나니 갑자기. 기쁘다. 기쁘면서도 어리둥절하다. 이 상태가 지나고 나면 아쉬워할지는 모르지만. 지금 어리둥절하여 상황 판단이 서지않는 채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고 있다. 시간이 가고 있다. 아~ 내 반차~~


글을 잘 쓰고 싶다. 취미라고 해서, 직업이 아니라고 해서 그냥 재미만 있길 바라지 않듯. 잘하고 싶다. 내 글을 읽는 첫 독자가 나이니 내 독자에게 반짝이는 문장으로, 진폭으로 생긴 흔들림에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르길 바란다. 첫 퇴고는 첫 독자를 위한 선물이자 다짐이다.


자! 휴가는 끝났다. 이제 글쓰기를 시작해 보자.


글 쓰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면서 바람 잔뜩 피웠습니다. 뮤지컬에, 드로잉에 연기까지!! 드로잉 4주 수업 끝내고 기념사진ㅋㅋㅋ 

연기 수업 끝나고 기념사진.ㅋㅋㅋㅋ(흰 셔츠 저에요)


쓰는 인간 하고 싶다면서 그리는 인간 중.          뮤지컬 수료 후 기념 촬영.(아랫줄 맨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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