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일어나는 일련의 사고(?)들은 워낙에 광범위하고 엉뚱해서 새롭지도 않은 새로움이지만 어쨌든 예상 못 한 일임엔 틀림없다. (올해 저지른 일은...뮤지컬, 연기, 연극출연, 패드 드로잉, 보컬, 어반 전시….) 그렇게 예상 안 되는 일들이 꾸준히 일어나다 보니 이젠 당위성마저 부여된다. 나는 원래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배우고 자신을 뛰어넘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었을지 모르니 '나를 찾는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는.
뭐 여차저차 구차한 변명을 하자면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는 진주에 있는 서점 진주문고이면서 홈페이지니, 블로그에 접속해 본 적이 없다. 도서관과 함께 지역 거점 문화 교류 장소인 서점답게 많은 인문 수업도 초청 강좌도 유익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음에도 둘러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거다. 그렇게 서로 바쁘게 살던 어느 날 만나게 되었다. 언제나 거기 있는 진주문고에 내가 다가간 거겠지만 뭐 어쨌든 그렇게 말이다. (취미 바람을 많이 피우면서 만난 기관과의, 사람과의 교류는 시야를 넓혀주었다) 몰랐던 세상은 화려했고, 놓친 많은 프로그램 그리고 작가들 기타 등등은 아까웠다. 지나가 버렸고,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 마음은 조급증을 내었다. 지금부터라도 야무지게 챙겨보리라. 물론 야무지게 챙겨질 가능성은 낮더라도 관심을 가져보리라 생각하던 그때 모집 중인 프로그램이 보였다. 진주쓰깅. 오, 글쓰기 모임인가 본데? 사람 만나는 것에 육체적 반응이 느린 나지만 쓰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 자신을 둘러보길 즐기는 사람들(흔히 내향적이라 편하게 불리는 사람). 누군가에게 유난 떤다는 소리를 들을지 몰라 약간은 위축될 수도 있는, '예민하다는 성향'을 가진 분들이 -내가 본 바로는- 글 쓰는 사람들의 특징이라, 쓰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라면? 대인기피증도 사회생활부적응도 약간은 희석도 될 테고 튀지도 않을지 몰라. 그렇게 언제나처럼 혼자 결론짓고, 신청했다. 달리기, 쓰기. 진주 쓰깅이다. 물론, 이건 다 '그냥 한 번 참여해 보고 싶었다'는 말의 다름 아니다.
나는 재택 근무자이자 집순이이자 히키코모리다. 집순이람서 명성에 먹칠을 하고 모든 집순이의 규정에 혼란을 주는 행위를 하려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오해 마시라. 내 정체성은 집순이(좋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아님에도 '나'를 낮잡아 이르는 말임으로 넘어갑니다.)가 맞다. 누가 만나자고 하면 반갑지만 그 약속이 깨어지면 더 반갑고, 내일은 반드시 집 밖을 한 걸음이라도 걸어볼 테야 결심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전날과 같이 집 안에서 재택근무만 하고 있는 날 발견하고, 집 밖에 어쩌다 나가게 되면 철저한 동선으로 이루어진 36가지의 일을 처리하는 게 바로 나니까 말이다. (면사무소, 은행, 다이소, 도서관…. 커피숍까지)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나가본 밖은 너무도 신기하고 아름답고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집에 들어가기 싫을 만큼 좋다. 나이아가라 폭소가 이만큼 광대할 거며, 윈저성이 이처럼 그림 같을 거며, 화이트 해변이 이만큼 눈을 시리게 할까? 매일 내일은 분위기 있는 집, 우리 집 말고 전문 커피숍에 가서 바리스타가 맛있게 말아준 라테 한잔해야지 미솔 지으며 계획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컵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음 커피는 믹스지"를 외치고 있는 '나'가 있는 거다. 사실, 나도 머릿속으로는 집 나가는 구상을 한다. 게다기 요즘은 어쩌자고 달릴 생각까지도 말이다. 머릿속으로만 뛰었는데 피로해지는 건 왜 그런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달리고도 싶다.
집순이 생활 반백 년이다. 어릴 때부터 집 나가길 두려워했다. 보통의 날, 집에 가족 누구도 나가지 않으면 나 혼자라도 나갈 수 있음에도 그런 실행력은 머릿속을 뚫고 나오지 못했다. 그런 내게 달리기라는 특명이 내려졌다. 물론 내가 원해서 나간 모임이고 무얼 하는지 알고(반 만) 갔음에도 자연스러운 연결은 어려웠다. 달리기 모임이니까 '오늘부터 당장 달리자'와 같은 등식 말이다. 모임은 네 번이면 끝이다. 달리고 글을 쓰자는 프로그램의 취지로 보자면 3번만 뛰고 글을 남기면 될 거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종목도 성질도 아니다. 그럼에도 부담을 가져도 좋을 필요가 있다면 일단은 달려볼 것. 그리고 써 보는 것이겠다. 사실 글을 쓰기 위한 모임이라면 -건방지게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글 모임을 목적으로만 보다니 쯧쯧쯧 딱한 사람...). 글이란 건 내게 일기와 같아서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동안 할 말이 생각나는 거였으니까. 그럼에도 글이 막힌다면 운동화 끈을 묶는 행동만으로도 쓸 것들은 널렸었으니까. 물론 글의 수준과 주제와 심오함과는 1도 관계없음이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고민이 아니었다. (나는 일어났다. 나는 배가 고프다. 오늘은 김치볶음밥을 볶았는데 밥이 좀 탔다…. 식으로 쓰는 글은 반지의 제왕 두께만큼 쓸 수 있다)
삐걱거리는 무릎 상태와는 달리 달리고 싶었던 욕망을 실현해 볼 기회다. 러닝화를 기웃거렸고 무릎 지지대(?)를 장바구니에 넣어놓았었다. 지지난주에는 남편과 러닝머신에서 한 시간 빨리 걷기를 해봤다. (족저근막) 염증이 심해질지 걱정도 했지만 무리하지 않고 며칠 쉬었더니 괜찮아졌었다. 군대 갔던 내 친구 영미는 달리기하고부터 복근이 생겼다는 얘기를 편지에 써서 보내었었다. 아니, 그냥 한번 달려보고 싶다. 복근 욕심도 러닝화 욕심도 아니다. 춤추고 싶어 뮤지컬을 배웠더니 몸치라는 사실을 난생처음 알게 되었던 것처럼, 어떤가. 달리고 보니 달리기가 체질에도 성격에도 맞지 않다는 걸 발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아니 나를 알아가는 수단으로 좋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데 (아직) 달릴 수가 없지만 나는 달릴 수 있다. 몸은 내가 조절하며 관리해 가며 알아서 하면 된다. 달리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 정도의 상태니까 말이다. 1분 달리기든 30초 달리기든 달려보지 뭐. 그러고는 그 속도로(얼마나 느리게 쓰려고….) 글도 달려보는 거다. 그래, 거창한 건 아는데 고백하겠다. 갑자기 달리고 싶은 지금 나는 무척이나 나이키하며 아디다스적이고 ON러닝답고, 호카같으며, 아식스러운 상태다. (무슨 말이고?) 러닝화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