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Oct 14. 2024

달리지 않을 이유

그래서 달밤에 체조, 아니 달리기를 한 이유

부담을 느끼고 있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자격증 시험도 승급심사도 아닌데, 글쓰기니 달리기를 못할 게 뭐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일기 같은 글쓰기든 '한강'작가식 글쓰기든 글쓰기는 같은 글쓰기 아닌가. 뭐 물론 심한 거리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 바다는 바다지만 울릉도 앞바다와 마다가스카르 해류가 다르고 동해에 있던 해수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오려면 천년은 걸린다는 해수의 대순환 이론에 따르면 여기 내 눈앞의 (남해) 바다는 텔레비전 홈쇼핑에 보이는 적도의 바닷물과 다른 시대 물일 테다. 알바 없다. 관심 없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화두급 모호함. 바다는 바다요 글은 글일 뿐.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전제도 미리 내어준 주제도 없었다. 목적 있는 글쓰기 모임. 그곳에서 활동하기 위해 할 일은 하나, 어려운 것이 없었다. 일단 쓰면 되었고 일단 달리면 되었다. 아니, 일단 달리고 그냥 쓰면 되었다. 그 조건 단 하나였다.


쓰려면 뭐든 쓸 수 있었다. 손가락이 있고 -아니 손가락이 없어도 가능하다- 뇌가 있으니 생각나는 대로 적으면 되리라. 누구나 알만한 기본을 깔고 그 위에 간단한 선택, 선택이 아닌 필수인 옵션이긴 해도 그저 하나의 간택이 있었을 뿐이다. 달리기. 고기를 먹지 않으면, 고기를 구워 먹지 않은 자에게는 된장과 밥이 2천 원에 제공되지 않는 단 하나의 대전제. 글을 쓰고 싶은 자 일단 달려라. 그러면 글 쓸 자유를 주리라. 나는 지글지글 육즙 흐르는 고기를 흡입하듯 먹었으나 마무리는 하얀 쌀밥을 호호 불러 꼴깍꼴깍 삼키기로 작정하였으니 서둘러 탄수화물로 행복한 음식 여행을 마무리 지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때 필요한 건 반려자 동반자 파트너, 침 대신 연하 작용을 도와줄 된장 국물. 그 짭짤한 걸 순백색 쌀을 넣어놓은 입속에 부어주면 농염한 맛이 (발바닥 모양) '톡톡이'처럼 터지겠다. 그 맛은 축복이요 축제의 화룡점정이며 불꽃놀이 같은 마무으리, 미련도 없이 집에 갈 수 있는 후불 교통 카드 되겠다. 분명 고기를 먹으러 갔으나 된장찌개와 밥을 기어코 먹기 위해 서둘러 쌈을 밀어 넣은 것 같은 질펀한 식육식당의 맛, 진한 단짠 맛. 고기가 먹고 싶은 건지 쌀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고기를 구워 먹었는지 모르겠다.


달리기하고 허파가, 심장이 폭죽처럼 터지는 상태로 글만 쓰면 될 텐데. 이러다 긴급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글감이 가쁜 숨처럼 나온다며 기뻐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문장을 휘갈기고 싶어질 그 상황으로 몰아가야 한 텐데. 지금의 의료 대란은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님에도 그에 못지않게 내 내장의 파열음은 그 모든 현실을 부차 한 것으로 만들고도 남을 텐데. 나는 미루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한 달리기를.

일요일, 오늘 아침은 달리고 오리라 생각했는데. 토요일, 어제는 작업실 정리를 끝내고 가려 했는데. 금요일, 아이의 우울한 마음을 풀어주고 가보려 했는데. 목요일, 카톡방 글을 읽을까 달릴까, 고민도 했는데. 뭐 하나 그럴듯한 변명도 없이 달리기를 미루는 중이다. 내일부터 목요일은 10시까지 근무가 있는데 새벽 달리기를 한 후 버틸 자신이 없다. 그럴듯한 변명이 없다, 여전히. 내 무릎에 종양이 족저근막염이, 발목터널증후군이 도지면 어쩌나, 역시나 지각한 학생의 변명으로 쓸 수가 없는 것들이다.


글쓰기가 하고 싶으면 그저 글을 쓰면 될 텐데 왜 느닷없이 모임에 나갔는지. 평소답지 않은 모임에까지 나가 몇십 년 동안 하지도 않았던 달리기를 하겠다는지. 달린 후 글을 쓰라는 단톡방 속 제시 문장은 그냥 쓰고 막 쓰고 싶은 자를 자극해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지. 

달리기는 과연 무슨 맛일까? 죄책감만 없앤 십 미터 달리기 후 글을 써도 되련만 왠지 고집을 부리고 싶다. 달린 후 어떤 글감이 떠오를지 사실 궁금하다. 일상적으로 쓰는 말 '똥인지 된장인지'로 보자면 내 행동은 우매하다. '달리지 않았다고 그걸 몰라?'. 살면서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똥 또는 된장'만큼 많다. 그중에 가장 극단적일 만큼 몰랐던 걸 꼽으라면 육아? (맙소사~) 하여튼 달린다는 건 내게 어떤 것일지 알고 싶다면 일단은 달려야 한다. 나는 달리기 위해 글을 쓰고 싶은 걸까? 글을 쓰기 위해 달리고 싶을까?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달리기 위한 글쓰기라면 기록이 먼저일 테고 후자라면 영감, 느낌이 중요할 테니까. 영감을 줄지 기록을 남겨줄지는 모른다. 그러니 허파로 바로 들어간 '와다닥(입에서 터지는 작은 구슬 모양 과자)' 터지는 맛을 보고 싶다면, 일단은 나가야겠다. 말말고 글말고 히위고. 험험.


매거진의 이전글 달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