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우울하곤 했다. 기쁜 감정이나 슬픈 감정처럼 흔했고, 증상을 겪을 사람의 사정은 사정없이 무시하며 우울증은 한가하게 곁을 지켰다. 그만 가줘도 좋겠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어~ 괜찮아, 나 안 바빠" 소리를 눈치도 없이 떠들며 한 자리 차지하는 질펀한 감정이었다. 그만 씻고 자고 싶은 주인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집들이 손님. 돌아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자꾸 몸을 낮추는 상태(눕지 말고 가라고!). 나가라는 소리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엔 근력이 모자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음식을 나르는 주인. 웃으려 하지만, 도저히 웃는 얼굴로 보이지 않지만 누구도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을- 보지 않아 의도치 않게 포커페이스가 된 주체자의 상황이다. 우울한 건 난데 죽고 싶다는 소리를 하며 술을 퍼마시는(먹고 죽자~!) 사람들만 남겨두고 자리를 뜰 수가 없다.
혹은, 좁은 포장마차 옆자리에 가만 붙어 앉아 듣고만 있어야 하는, 취한 사람들 속 멀쩡해서 비정상인 나. 제풀에 쓰러져 오늘 밤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만 벗어날 엄두를 내는 수다쟁이 알코올의존증 동료의 주사처럼 놓여날 수 없었다. 밧줄에 묶인 것도 서슬 퍼런 눈으로 감시하는 자도 없지만 꼼짝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울 곁의 존재. 이 술자리에 같이 온 사람으로서 갈 때도 같이 가야 한다는 의리 아닌 의리 같은, 그 자리에서 생긴 (암묵적) 규칙에 괜히 얼게 된다.
자동차 전조등에 넋을 빼앗긴 사슴 같다고 느낀다. 왜 소리치지 못할까? 왜 도망가지 못할까? 왜 도와달라고 하지 못하는 걸까?
한없이 게을러지는 기분. 타인에게 친절해지고 싶지 않은 기분. 나 자신의 상태만으로도 생각거리 느낄 거리 후회할 거리도 넘치지만 그 이유 때문도 아니게 무엇도 생각하기 싫어지는, 혹은 너무 많아지는 상태. 밤 수영을 하듯 우울함이 어두운 물처럼 들러붙어 귓속까지 채우면 현실은 사라진다. 찰랑찰랑 물이 살결을 가벼이 때리면 "아 참 내가 지금 물 속이었지"불현듯 깨닫곤 한다. 물 속임을 잊은, 각성을 잊은 상태. 눈을 떠도 감아도 보이는 것은 같아 똑바로 바라보며 방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칠흑빛 밤 물속을 유영하고 있던 몸이 오르내릴 때마다 삼켜지는 내 몸의 존재. 익숙해서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지금 '내 기분이 가라앉았구나' 하고 느껴지는 순간, 그런 찰나가 우울을 자각하는 때다. 아침을 먹은 지 몇 시간 지난 시점 잠깐 잊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려 일어서면 나도 모르게 시장기가 돌듯, 우울은 잊고 있었을 때도 때론 보고 있으면서도 '우울하다'는 자각보다 시장기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럼에도 우울증이거나 우울인 줄 모르거나 우울하지 않다 애써 무시하며 살았다. 맛있으면 영 칼로리 같은 시중의 말처럼 맛있는 건 노력 없이도 삼켜지지만 우울은 무엇이라 규정하고, 넘겨보고, 모른척하고, 똑바로 바라보아도 한결같았다. 우울 그 이름 그대로 목구멍에 걸려있었다.
구멍가게를 하던 가게는, 15평이었다. 집이 15평이면 뭐 괜찮았겠는데, 가게가 15평이면 제법 컸을 텐데 그 모든 걸 포함한 가게이자 집은 15평 안에 참 비좁게 들어있었다. 물건을 쌓아놓은 사람인 아버지가 없으면 찾는 제품을 찾을 수 없어 (아버지가 시장에 물건 가지러 가실 경우) 손님을 돌려보내기 일쑤였고 집은 누군가 유학을 가거나 가출하거나 결혼해야만 남은 가족이 같이 잘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당에 임시 벽을 쳐 만든 방은 난방이 안 되지만 춥, 덥하며 공부방으로는 쓸 수 있었고 연탄보일러가 들어오는 방이지만 담배방이자 물건들의 휴게실인 작은 방은 잠을 자기엔 너무 아늑했다. 아늑함이 지나쳐 한 명도 제대로 눕기 힘들었던 곳. 어린 시절 자주 아팠던 내가 연탄을 넉넉히 태워 데워진 곳에 누워 앓던 방으로만 쓸 만큼 작았다. 가족이 모두 제대로 잠을 자고 싶었던 어머니는 네 가족이 살던 집을 사서 벽지도 미장도 새로 해서 별채를 마련했는데 2평 반이었던 그 집은 언니가 시집을 가기 전까지 나와 둘이 잠만 자는 용도로 사용된 집이었다. 그곳이 생긴 후 술을 먹고 늦어도 집에 들어오기 편했고 숙취에 시달려도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고 술기운을 뺄 좋은 별장이 되어주었다.
집을 거치지 않고 별채로 들어가던 어느 날 문득 우울을 느꼈다. 그날은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까지 보낸 날이었다. 입을 열고나면 꼭 후회하면서도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헛'이든 '쉰'이든 뭔 소리를 쉴 수 없는 성격으로 그날도 누군가를 웃기고 들어온 길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즐거웠고 모두 웃었으면서도 문고리를 잡는 순간 우울을 만진듯했다. 아! 우울 속에 들어와 있구나. 잠깐 즐거운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헤쳐 나오지 못할 '늪울' 일 텐데.라는 생각에 조금 전의 웃음이 가치 없게 느껴졌다. 당연히 즐길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그건 그저 온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소나기 같은 감정. 지금 같으면 병원이든 무료 상담을 해 주는 국민 정신건강 무슨... 센터에라도 전화를 할 텐데. 무슨 말이라도 뱉으며 눈물과 감정과 우울을 조금은 흘릴 텐데. 침을 튀기듯 우울을 튀겨 소진하려 노력할 텐데. 우울은 떨칠 수도 마르지도 않는 바다였다.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언제나 일정량 주변을 떠돌아 오늘 다 못 누린 우울은 내일 더 진한 덤으로 -인심 좋게- 푸짐해지곤 했다.
떡메로 눌러 쫀득하게 만든 우울은 먹을수록 밀도만 짙어졌었다. 그건 옆에서 떡을 포개주는 이의 도움도 일부 있었다. 포개주고 모아주는 도우미가 없었다면 혼자서 하느라 완벽한 우울을 만드는 것에 시간이 더 걸렸을 텐데 우울을 만들고 있는 내게 많은 도움을 줬던 가까운 사람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행동으로 내 우울을 돕곤 했다. 가장 사랑해 주어야 할 어머니의 질타로 비난으로 무관심으로 채근으로. 모아주고 챙겨주며 감정이 단단히 굳는 데 도움을 주던 이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니, 이젠 도우미가 없다. 그러고 나니 이젠 나도 떡메를 치지 않는다. 떡을 먹고 싶으면 사 먹는다. 누군가의 우울을 구경하며 기분을 내곤 한다. 우는 모습을 보며 같이 우는 영화로, 귀를 파고드는 과거 여행 도구이자 그때 그 기분 속으로 음속 이동 가능하게 만드는 음악으로, 감정을 차근차근 짚어줘 내 우울한 감정을, 한 장면과도 같은 순간의 기분을 낱낱이 까발려주는 책으로... 환경이 변하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려는 짓은 그리 쉽지 않았고 편하지 않았다. 고작 버튼 하나 누르는 것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면 슬그머니 횟수를 줄이게 되는 강력하고도 효율적으로 생겨먹은 인간이라서 조금의 귀찮음은 찬장에 처박히는 '설거지 귀찮은 믹서기'처럼 사용 횟수가 줄어갔다. 그냥 과일 그대로 먹고 말고 채소 그대로 먹게 되는 싱싱함으로 있게 된다.
하지만, 우울은 내가 가진 머리카락 수와 같다. 내가 가진 손가락 길이가 (거의) 변하지 않듯 우울을 생산하는 기관이 사라지지 않는 한. 기능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생산력이 감퇴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현업 중이다. 무가치한 인간인 듯 느껴지는 순간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육체의 변화, 오늘처럼 22시간을 내리 자는 행동으로 표현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