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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Sep 17. 2023

바다다다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빠파인가요? 엄마파인가요?

이런 거 물으면 안 되는 나이가 있을 거예요. 인지능력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아이를 상대로 할 경우 선택을 강요하게 만드니까요. 요즘 '대'유행하는 <흑백논리>를 강요하는 것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질문이거나요.  두 분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도 없다고는 할 수 없죠? 그러니 질문이 올바르지 않다 볼 수도 있는, 한마디로 아주 까다로운 문제 같아요.



하지만 무척이나 다행인건요. 브런치 하는 분들은 인지능력이 완성된 나이라 질문 가능하니 한 번 해볼게요. (저의 인지능력이 완전하냐고 하신다면 사실 귓속말로 대답을 해드릴 건데요. 웬만하면 묻지 마시고요.)

엄마를 좋아하세요? 아빠를 좋아하세요?

저는 '아빠파'입니다. 잉태되는 순간부터 엄마가 저를 부정하는 기운을 온몸으로 느낀 '아추' 예민한 아이의 촉으로 저를 싫어하는 사람 좋아하지 않게 되는 논리랄까요? 무슨 그런 소리하느냐 질책성 목소리가 층간소음처럼 들리는 듯한데요. 지금에 와서 그런 비호감의 추억을 논하자는 게 아니라. 엄마는 제가 태어나서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나는 너를 낳으려고 하지 않았어. 지우려고 했는데 아빠가 반대했단다. 하하하" 하는 소리를 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요. 즐거워하시면서 했으니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그 저변이 깔린 나쁜 어감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뭐 이 정도면 다른 예시는 필요 없으시죠? 게임 오버 맞죠? 에헤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지만 어쨌든 이겼습니다!


(아니요? 저 안 우는데요?!)


그러니 표현이 전혀 없으신 분이긴 해도 아버지는 마리아나 해구 심해 속 살아있는 심해생물처럼 사랑이 있겠거니. 내 능력으로 보기는 힘들겠지만 존재를 믿으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끝.


그럼 아빠파 엄마파 얘기는 여기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니 지금 내하고 뭐 하자는 거고?"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지만 오늘 제가 하려는 얘기는 엄빠얘기가 아닙니다. 잠시 저와 저쪽으로 가시죠.


그러니까 말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바다가 좋아? 산이 좋아?입니다.

너무 엄빠얘기에 힘을 주었나 이게 연결이 되려나 저도 미심쩍습니다. 그래도 한 번 최선을 다하여 모자란 인지능력을 한 달 치 끌어 써 보겠습니다.


슬슬 지겨워 지실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저는 그러니까. 산!

산이 좋았습니다.

바다가 지척인, 바다냄새는 외삼촌 집에 가도 나고 소풍을 가도 나는 부산에 살다 보니 그게 참 싫데요. 해양생물을(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해양생물은 제외하고요) 혐오하는 제 식성이 크게 작용도 했고요. 도대체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모래를 붙여가며 뭐가 좋다고 바다 그 비릿한 냄새 맡으러 갈까? 사람 참 희한하다.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묻지 않는데 혼자서 묻고 혼자 답하곤 했어요.

'어디가 좋아? 당연히 산이지. 날 품어주는 초록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몸에 좋고 공기도 좋은 산. 얼마나 좋게~'하면서요.

그렇게 '혼답'하면서 지내던 시간이 흘러 부산을 떠난 지 15년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반전하나 던져놓아야 이야기 전개가 될 듯합니다. 지금은 바다입니다.

어찌하여 변심이냐? 하신다면 저의 간사함을 고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전에 제 몸이 산을 거부하기 시작했다고 궁색한 변명부터 하나 해놓고 바다가 좋아진 연유를 풀겠습니다.


몸에 염증 수치가 나빠지면서 자주 아프던 즈음에 알레르기 검사를 했어요. 그런데요. 웬만한 꽃가루, 편백나무 무슨 피톤치드까지 거부반응이 크게 나온 거예요. 아뿔싸. 산에 갔다 오면 흑먼지 뒤집어쓰고 운동장 구른 거처럼 피부가 답답해지고 숨쉬기 조금 힘들던 게 알레르기 때문이었던 거죠. 몸에 좋고 피부에도 좋을 산이 저에겐 극기의 공간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러든가 말든가 산은 참 좋긴 합니다. 그 다양한 색감. 손잡고 노래라도 부르는 듯 가지들 스치는 소리가요. 나뭇잎들이 손뼉 치는 소리도요.


그렇게 산을 멀리해야 되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는데 그리 아쉽지도 않고 이상하게 그즈음부터는 산에 간 것도 아닌데 답답증이 자주 생기더라고요. 그럴 때 생각나는 건 바다였고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바다 그 비릿한 냄새와, 계절과 관계없이 시원하게 머리를 쓸어주는 바람, 내 인생이면 좋겠다 싶게 앞이 확 트인 수평선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덤으로 파도소리는 자장가처럼 노곤해진 마음을 위로해 주는 힐링송도 되어주고요. 육아의 시작과 함께 멀어진 바다가 꼭 '젊은 날의 상징'같아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키다리첫째 귀요미둘째

그렇게 바다 멀어지니 '바다가 그리워'져 나라는 인간의 간사함이 참으로 부각이 되더라고요. 가까이 있을 때는 귀한 줄 모르고 흠잡기 바쁘더니 버스 몇 정거장만 가면 있던 바다가 1~2시간 거리로 멀어지고 나니 보고 싶고 그리워졌으니까요. 그래요. 저는 간사한 인간입니다. 그렇게 인정하고 오늘도 바다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간사하니까요. 나를 멀리하는 바다가 보고 싶데요. 맨발로 몽돌도 밟아보고 싶고 파도소리 들으며 캠핑의자에 몸을 기대앉아 카프카의 책도 보고 싶고요.


예, 소원은 대충 풀었습니다. 바다는 봤지요. 몽돌도 못 밟았고 카프카 책도 못 읽고 애들 사진이나 찍어주고 왔지만요. 그래도 바다 봤습니다. 그러니 소원 풀었다 생각하면서 행복하게 하루 마무리할게요.



바다가 멀어지니 바다가 가슴으로 들어온 것처럼 저를 싫어한다고 생각한 어머니도 '제 곁에 없다'상상하면 가슴이 아픈걸보면 만고불변의 진리는 [가까이 있는 거 귀한줄 모른다] 인가봅니다.


간사한 마음 잘 다스려 가까운 남편 귀하게 여기는 오늘이라도 만들어야겠습니다.


(사진은 '스즈메의 문단속' 실사판을 찍고있는 큰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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