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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Sep 26. 2023

천만 원짜리 영어 캠프 그리고 0원 학교

바뀐 거 아니에요?

부산이 고향인 저는 어릴 때 경성대에서 자주 놀았습니다. 집이 남구라 서면 쪽도 경대 쪽 남포동 해운대 어디든 가기에 좋았지만 경대는 그곳만의 맛이 있으니까요. 또 가깝기도 하고요. 제가 놀 때는 수산대(지금의 부경대)는 그리 노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희한한 이름답게 그리 접근성이 좋은 마음가짐은 안 가져지더라고요.


주말 교육설명회에 가려고 참 오랜만에 부경대에 갔습니다. 지금은 역 이름도 <경성대 부경대역>이라 퉁쳐서 경성대 (근처 상권에) 간다고 하긴 광범위하더군요. 부경대도 더 넓고 환해진 느낌에 맞은편도 꽤 아랫길까지 다닐만한 길이 되어있더라고요. 부경대가 커지고 넓어지니 주변 상권도 더 퍼지고 밝아진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나비효과 같았지요.


저의 첫째는 참 착해요. 소띠라 그런지 은근히 고집이 세서 욱하는 저를 광분하게 하긴 하지만. 천성이 순하고 느긋합니다. 그런 아이도 사춘기가 오더군요. 아마도 저보다 잘 맞는, 수용적인 엄마였다면 아이는 사춘기를 즐기면서까지 보낼 수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부모와 아이가 피로 살로 유전자로 연결되어 있다 해도 성격이 어울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듯 보여요. 그러고 보면 50명이나 되는 한 교실에서 학교를 다녔어도 마음 맞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춘기에 층간소음에 많이 피폐했습니다. 아이가 아니라 제가요. 엄밀히 따지면 갱년기도 초입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사춘기 나부랭이가 소중했겠어요? 그렇게 아이와 휴전 중이기라도 한 듯 살벌한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남편은 지인을 만나면 아이의 사춘기를 얘기하기도 했나 보더라고요. 그러다 공부가 중요한지 아이와 저를 따로 잠시 별거시킬 묘책이라서인지는 모르지만 영어 캠프를 들고 왔습니다. 제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자 남편이 어쨌든 아이일에  <처음부터 끝> 진행까지 이끌더군요. 그래서 오게 되었습니다. 외국으로 어학공부를 가는 캠프 설명회를요.


아이가 가서 안전하게 지낼지, 공부하는 방법이나 남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하는지 정도는 구경이라도 할 기회가 생기려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설명회가 진행될수록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돈을 뭐 이렇게 많이 내야 되나. 공부를 뭐 이렇게 가둬놓고까지 시키나 뭐 이런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돈은 수요공급에 따라 정해졌겠고. 공부는 본인 의지에 도움이 된다면 절에 가든 기숙형 학원을 가든 선택의 문제니까요.

아침 7시부터 밤 11시 30분 취침시간 전까지 시간표가 짜여 있고 주말도 일요일만 쉽니다. 쉬는 날은 잠이라도 자면서 쉬면 좋겠는데 보여지는것도 중요하니 필리핀에서 보아야 하는 것, 혹은 야외활동을 끼워 넣었답니다. 내실이 중요하지만 보여지는것도 무시할 수는 없어서라면서요.


아이들은 차에서 존답니다. 공부를 너무 시켜서요. 매일 아침밥 먹기 전에 영어단어 시험을 치고 그날 해야 할 공부를 마치지 못할 경우 잠이 늦어지니 매일이 '잠 모자람'의 반복인 거겠죠. 매일밤 전화기 보면서 잠을 미루고 싶던 수많은 아이들은 잠 좀 재워줘를 외치게 되는. 부모님이 기다리던 말이 술술 나오는 딴짓 금지 공부모드 시스템. 그렇게 14교시까지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해도 '숙제 불합격자'는 보충까지 한다고 해요. 이렇게 스파르타식 운영으로 아이들은 힘들겠지만 견뎌낸다면 어디 가서도 "이 정도도 못하겠어? 독한 캠프에서도 살아남은 난데?" 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는 후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원장님이 교육 설명을 하면서 "잘 거 다 자고 놀 거 다 놀면서 공부를 잘하고 싶다? 그러면 등이라도 때리면서 공부를 시켜야죠.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주면서 수업시간에 잔다? 부모님께 얘기 안 합니다. 바로 혼냅니다. 공부시킵니다." 하며 농담처럼 진담을 얘기하는데 학부모들이 좋아합디다. 상대방에게 호의를 표하기 위한 웃음까지 소리 내어 보낼 만큼 진심이더군요. 한 번 보낸 부모들의 재 입소 방문이 무척 많은 거 같았습니다. 효과를 봤기때문이겠지요.


내 아이를 잠도 안 재우고 공부시킨다는데. 수업 자세가 좋지 못하면 혼낸다는데. 이 정도도 못 따라올 거면 처음부터 오지 말라고 하는데 기를 쓰고 선생님께 아이를 맡기겠다는 분위기입니다. 여기가 학교인지 학원 설명회인지 혼란이 오더군요. 공교육에서 선생님이 강력한 교권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겠다. 아이를 혼도 내어 가면서 인도하겠다 하면 과연 이렇게 기뻐하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을까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어요. 학교에서 저런 말을 듣는다면 선생님의 월권과 인권 침해 그리고 아동 폭력으로 고소 고발이 난무할 것이 뻔해 보였습니다. 학교에서 보기 힘들던 선생님에 대한 무한 신뢰와 존경을 이 곳에서는 찾을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학원에서 공부하면 되니 자는 아이 깨우지 말라고 전화하는 학부모가 있는 사회였던 거 같은데. 학원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이 정도였구나 싶었어요. "내가 알아보고 따져보고 꼼꼼하게 비교해 봤기에 매달려서라도 끝까지 같이하겠다는 신뢰를 보낼 수 있는 거다."라고 한다면 무료 교육과 돈 들인 학원. 돈 들인 만큼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아니 효과를 봤으니 재방문도 하는 거니 결과를 본 거겠네요.


아이들의 인권이나 자유권보다 대학입시 성공 혹은 공부를 빡시게 할 수 있다는 경험을 사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면? 학교 선생님은 처음부터 그런 것과 관련 없는 존재라서 기대도 없다? 아이를 지도하고 공부를 시키고 혼도 내면서 아이를 대하면 "네가 뭔데 내 왕자에게 한 소리야!" 할 것 같은 어긋난 부모님의 자식 사랑. 내 아이의 성공과 목적 설정을 위해 또 다른 선생님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는 부모의 모습을 본 오늘이 무척 혼란스러운 기억으로 남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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