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의 기억법'을 읽고

집 앞 산책부터

by 노사임당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 서울은 평범함이었다.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이었고, 가끔은 벗어나고 싶은 지루함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처음 서울을 찍기 시작할 무렵 서울을 찍는 이유는 정말 단순히 내가 여기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얼마 후 호주에서 일 년 정도 머물게 됐고 난생처음 보는 이국적 풍경에 홀린 듯 매일같이 사진을 찍었다. 허주에서 머무는 동안 매일 몇백 장 정도의 사진을 찍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했고 새로웠다. p.200 사진가의 기억법



사진가에게 새로운 자극이란 순간을 영원의 공간 속에 넣어두고 싶게 만드는 것일 테다. 그러한 이유로 사진으로 찍고, 저장을 하겠지. 하지만, 사진가 뿐이랴. 나 또한 그렇다. 매일 집이라는 공간에 자발적으로 갇힌 채 사는 나는 가끔 문밖으로 나가는 순간 모든 것들이 새롭고 낯설고 신기하다.


꺼리는 원인이야 많지만 어쨌든 게으르다면 게으른 이유로 집에만 있던 나에게 세상은 그 자체로 자극제가 되어 준다. 나는 해외여행이라는 단어에 가슴 설레거나 흥분되지 않는다.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친 자극으로 피로해질 것을 우려한다. 집 밖에만 나가도 나에게는 모든 것들이 낯설다. 주변이 처음 보다시피 하는 풍경으로 다가오기에 그것만으로도 여행으로써는 충분하다는 기분이 들 정도다.


유난히 아무것도 아닌 풍경에 눈이 홀리고 사진기를 들이대며 그곳에서 무슨 의미라도 찾듯 재차 들여다보는 이유는 세상을 처음 접하는 어린아이 같은 눈이 남아 있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자랑도 아니고 자폭도 아니지만 그동안 무슨 까닭이 되었든 나가지 않던 생활이 준 고립, 그 고립이 만들어 준 공감각의 여백, 짧았던 가시거리 대신 넓어진 시야에 담긴 떨림들을 느낀다.


요즘 나는 집을 자주 나간다. 한 번의 외출로 마흔다섯 가지의 일을 처리하고 들어와야 직성이 풀리던 나의 생활 방식으로 보자면 별일 없이도 나가는 특이한 때마저 있다. 신나게 세상을 활보하던 사람들이 더 넓은 세상에서 찾으려는 다름이라는 까칠한 흥분을, 꽤 까다로운 자극제를 나는 이리도 쉽게 얻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나는 내 집, 내 마을, 내 도시, 내 나라부터 샅샅이 느끼는 것부터 여행의 시작이라는 강박적인 집착이 있었다. 낯선 환경에 버려질 두려움으로 외국에 가고 싶지 않다고 느꼈던 속사정도 있긴 하다만. 비교적 불안이 높은 사람의 특징으로 나는 해외라는 변수 가득하고 익숙지 않은 공간에 자진해서 간 적은 없다.


짝지가 생긴 기념으로 신혼여행을, 아이가 생긴 기념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뿐이다. (최근에 가깝기가 서울보다 더한 대마도도 가족이 다녀왔다)낯선 상황으로 제 발로 들어가는 상상하기 싫은 일은 만들지 않고 살아왔다. 이렇게 조금씩 한 발씩 내딛다 보니 이젠 아이만 데리고 경상남'도'를 넘을 생각도 해본다. 그러다 혼자서 '국'도 넘어설지도 모르겠다.


이런 변화가 서서히 일어났기에 내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단박에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젠 여행기랄까, 답사기를 쓰려 혼자 다니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인생이라는 여행을, 신발부터 신는 여행을 이제 시작하는 기분이다. (사진가의 기억법을 읽고 떠오른 단상)


매거진의 이전글사진가의 기억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