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산문

by 노사임당

14

부제를 붙인다면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을 것들' 혹은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겠지만 모르는지도 몰랐을 것들'이라고 하고 싶다.


21

"(잠깐의 침묵)그래. 그건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

이런 대화가 오갔다는 사실을 나는 곧 잊었다. 어른의 '나중에'란 원래 그런 것이다.


26

그때까지만 해도 바둑이란 '옛날에 동네마다 흔하던 개'를 부르는일종의 상징적 명칭인 줄만 알았다. 진짜 바둑돌의 흑백 색깔에서 따온 이름임을 여태 모르고 살았다. 내가 모르고 살아온 것은 또 얼마나 많을 텐가.


30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62

"그런데요, 훈련사님, 제가, 정말, 키울 수 있을까요?"

훈련사는 이런 답을 했다.

"보호자님, 인류는 2만 년 전부터 개와 어울려 살아왔습니다."

그 말이 전부였다. 압도적인 대답이었다. 나는 인류를 대표하고 바둑이는 개를 대표한다. 우리의 조상이 대대로 그래왔듯 당연히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머릿속에 잔뜩 엉켰던 실타래가 정돈되는 기분이었다. 그 덤덤한 목소리가 얼마나 큰 의지가 되었는지 모른다.


72

그동안 자연스레 '나의 것'이라고 믿었던 이 집에 더 이상 마음 놓고 숨을 데가 없었다. 최근 데이비드 빈센트의 저시 <사생활의 역사>의 카피 문구를 보았다.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눈이 시큰해졌다. "방해받지 않는 삶은 언제나 간절했다" 그때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았던 혼자만의 밤을 그리워하면서 자주 균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곤 했다. 생래적 비관주의자답게 어린 개 한 마리에 의해 깨진 균형을 다시는 복구할 수없으리라는 예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78

그 무렵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철수네 바둑이가 왜 하필 바둑이인지 아느냐고 묻고는 했다. 하나같이 놀랍다는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그걸 몰랐단 말이에요, 정말로?" 나는 말문이 막혔다. 제대로 모르면서 대충 지나쳐버리거나 무성의하게 넘겨짚어온 일들, 그런 일들이 그동안 내 삶에 얼마나 많았을까.


99

임신과 육아 과정에서 많은 여성이 '시기를 놓치면'이라는 조건 명제에 붙들려 예민하고 불안해진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큰일 납니다!" 이 마법의 언어는 엄청나게 강력한 이빨을 가져서 '수많은 엄마'의 목덜미를 콱 물고 놔주지 않는다.


106

어떤 소설가가 되고 싶으냐는질문을 간혹 받는다. 소싯적부터 나는 뭔가가 '되고 싶다'보다 '되고 싶지 않다'에 가까웠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놓은 대답은 하나 있었다. 꼭 어떤 소설가가 되어야 한다면 나는 산책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산책자로서의 소설가다.


107

현실에서 나는 산책과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걷기 싫어서가 아니다. 말하기 부끄러워서 어디에 발설한 적은 없지만 전적으로 귀.....귀........찮아서였다. 이제 와 고백하는 이유는 명백히 과거형이기 때문이다.


113

많은 사고가 그저, 그냥 일어난다.


115

우리 사회에는 루틴을 대하는 세 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는지도 모른다. 루틴을 긍정적인 단어로 인식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자기 계발의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 또는 루틴 따위 나 알 바 아니라 간주하며 불규칠적인 삶의 파도에 몸을 맡기는 사람. 그리고 루틴을 힘겨워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여기고 바동바동 매일의 일상을 굴리며 살아가는 사람. 물어 볼 것도 없이 나는 마지막 유형의 인간이었다.


125

학창 시절 뭔들 잘했겠느냐만 과학을 특히 못했다.


128

'시고르자브종'이라는 단어가 생긴 이유, 그 뉘앙스에 담긴 씁쓸한 유머, 웃어넘길 수많은 없는 복잡한 사회적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요즈음엔 익숙해져서 '그냥 믹스'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곤 하는데 왜 나도 모르게 자꾸 '그냥'이라는 부사를 붙이게 되는지 자아 성찰 중이다. 혹시 나는 "얘는 그냥 개예요"라는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131

김지혜의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따르면 나는 전통적 차별주의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148

"너무 속상해하지 마. 그러면 루돌이가 슬퍼하잖아."

그 말은 아이들뿐 아니라 지치고 힘든 날에 내가 나를 토닥이는 작고 반짝이는 주문 같은 것이 되었다.


187

루돌이의 법적 보호자는 나다. 동물 등록증상의 견주가 내 이름으로 되어 있다. 의도한 바는 아니다. 루돌이가 견생 최초로 동물병원에 갔을 때 내가 데스크에 가장 근접한 위치에 서 있어 우물쭈물 그렇게 되어버렸다. 세상의 많은 중요한 일이 그런 식으로 결정된다.


216

물론 평소에 내가 자주 훌쩍 떠나곤 하는 사람이었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지 하는 가붓한 마음가짐으로 일상을 사는 것과, 잠깐만, 개는 어떻게 하고 간단 말인가라며 애초에 떠날 마음조차 먹지 못하고 무겁게 사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228

습관적인 회의감과 자기 모멸감이 들 때마다 내가 매일 성실하게 개를 돌보고 의무적으로 산책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려 애쓴다. 그러면 나쁜 기분이 좀 가라앉고, 스스로 아주 형편없는 사람은 아닐지 모른다는, 자부심이나 효능감이라기엔 약소하지만 그래도 안온한 어떤 공기가 마음에 스민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