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가한 일요일 오후였다. 약속이 없어 그저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그렇게 하릴없이 잠에 들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떴을 때 두 시간이 지나 있었고 거실은 온통 짙은 파랑으로 물들어 있었다. 창 밖에는 밤바다처럼 어두운 남색 하늘이 넘실거렸다. 잠결에 천지개벽이라도 했나 화들짝 놀라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명치가 욱신거렸다. 가까스로 고개만 살짝 들어 정면을 바라보니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덩어리가 한 손으로 내 목을 조르고, 다른 손으로 명치를 연신 날카로운 무언가로 난도질 해댔다. 자세히 보니 그 윤곽이 내 그림자를 닮았다. 깡 마른 체구에 튀어나온 입 바가지 머리까지.
내 그림자가 연신 나를 찔러댔다. 속이 쓰리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익숙한 일이다. 온 몸의 힘을 오른손에 집중했다. 야구공을 쥘 것처럼 필사적으로 오른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손가락들이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나를 연신 찔러대던 덩어리가 사라지고 내 몸이 약간 동력을 얻었다.
비스듬하게 일어난다. 소파가 온통 땀으로 젖어있다. 온 몸이 미끈거린다. 여전히 과호흡이 멈추지 않는다. 어지럽고 가슴이 물파스를 바른 것처럼 시렵고 손 끝 발끈이 저릿저릿했다.
염병할 공황발작이다. 가까스로 땅에 발을 디디지만 손과 발이 사시나무 떨듯 떨린다. 쾅쾅 뛰는 심장이 곧 멈출 것 같은 불안을 느꼈고, 그 불안이 내 호흡을 가쁘게 하고, 자제가 되지 않는 가쁜 호흡 때문에 공포가 느껴진다. 공황장애 N년차로 예사 일은 아니지만, 새삼스럽게 고통스럽고 새삼스럽게 무섭다. 하릴없이 그저 이 순간이 지나가기 기다리며 식은땀이 흐르는 얼굴을 양 손에 파묻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대전광역시 동구 용전동에 위치한 어느 빌라에 한 사내가 뒤를 돌아 난간에 기대어 선 채로 고개를 젖혀 밤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반짝이는 별들이 수 놓은 밤하늘은 청명하다. 정겨운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린다. 어린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꺄르르 웃는 소리, 귀가하는 연인들의 다정한 말소리, 좁은 골목길에서 차주들이 경적을 울리며 기싸움을 하는 소리 등.
사내는 난간에 올라가 밤하늘을 잠시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다 조금의 고민도 없이 뒤로 넘어간다. 쾅 소리와 함께 그대로 아스팔트 바닥에 쳐박힌다. 머리 뒤편이 축축하고 따뜻해진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저 멀리 반짝이는 별들이 조금씩 다가온다.
이렇게 죽는구나. 마음을 정리하고 누워있는데 아까 사내의 명치를 칼로 난도질하던 검은 덩어리가 다가와 옆에 선다. 가만히 사내를 관찰하다 담배에 불을 붙여 사내에게 내민다. 사내는 연기를 깊게 들이 마시고, 멀리 내뱉는다. 그림자가 내게 묻는다.
“이제 좀 편안해?”
그러면 나는 씨익 웃는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눈을 뜨면 다시 불이 꺼진 용전동 내 집 안. 나는 축축한 소파에 가만히 누워 있다. 오늘도 나를 죽였다. 몹시 지칠 때면 상상 속으로 나를 몇 번이나 죽인다. 이제는 나를 죽이는데 꽤 익숙해졌다.
공황 발작을 겪으면 영혼이 탈진한다.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런 인생을 계속 살아야 하는지 따위의 상투적인 자기 연민에 빠진다. 탈진한 영혼은 존재의 소멸을 희구한다. 머리속에는 온통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찬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고 나를 죽인다. 상상 속으로 나마 내 육신을 창 밖으로 던져 버린다.
언젠가 실제로 아스팔트 바닥에 피를 흘리며 누워 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눈을 감고 그 날을 상상하면 그때의 통증과 감각으로 온 몸이 저릿하다. 그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뿐인데 하얀 불빛이 멀리서 다가와 점점 커지더니 내 몸을 환하게 집어 삼켰다. 그리고 저 멀리 던져 버렸다.
바닥에 머리부터 부딪쳤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터졌다. 온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길을 건너기 전까만 해도 죽고 싶었는데, 차에 부딪치고 정말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살고 싶었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두 눈에 힘을 줬다. 그때 깨달았다. 결국 나는 살고 싶다는 것을.
살고 싶지 않은 순간마다 상상 속으로 나를 죽이며 그 날의 감각을 상기한다. 웃기는 일이다. 죽을 뻔 했던 기억이 죽고 싶은 순간의 나를 살린다.
십 오 년 전 쯤 거뭇거뭇한 수염이 인중에 송송 날 때 죽음의 불가피성을 깨닫고 잠 못 드는 날이 많았다. 그때는 죽음이 언젠가 다가올 피할 수 없는 재앙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때때로 죽음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에 끝이 있다. 슬픔도, 불안도, 그리움도, 후회도 죽음과 함께 끝이 난다. 살아봐야 겨우 백 년이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의 불을 켰다. 식탁에 놓인 항불안제 한 알을 삼키고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로 길게 샤워를 했다. 오늘도 나는 나를 죽임으로써 하루를 살아갈 원동력을 얻었다. 살아야지. 살아내야지. 끝까지 살아봐야지.
커버 :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