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꿈이 없는 삶이 더 행복할지도
복권 1등에 당첨되면 퇴사할 거냐는 내 질문에 동료는 회사는 계속 다닐 거라고 답했다. 직장에 불만이 가득한 내게 그 대답은 의외였고, 괜스레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그는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꿈이 없기에 보수는 적지만 안정적인 지금 직장에 입직했고, 로또에 당첨되면 돈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직장에 다닐 거라고 했다.
반면 나는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 있기에 12억이 아니라 1억만 생겨도 당장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할 거라고 반박했다. 그는 내게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좋겠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이딴 직장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표정이 꽤나 행복해 보였다.
그는 밝고 성실한 사람이다. 그가 현 부서로 발령받은 이후 사무실 분위기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돈독해졌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는 심지어 성실하기까지 했다. 비효율적이고 납득 불가능한 업무 지시에도 그는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해왔다.
반면에 나는 어떠한가. 분명 꿈이 있다. 하지만 그 꿈을 향해 나아가기에는 감수해야할 리스크가 너무 컸다.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고, 결국 현실적인 타협이라는 합리화로 가고자 했던 길과 정 반대인 현재 직장을 선택했다. 그러나 도피였다는걸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도망쳤으면서도 서른이 넘은 나이까지 못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 않은 길을 힐끔 바라보며 서성이고 있다. 매일 인상을 쓰고 사무실에 앉아, 이건 진정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었다는 인생에 대한 푸념만 늘어놓고 있다. 꿈이 있어 부럽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는 대답했다. 나는 꿈이 없는 당신이 부러워요.
어른들은 말한다. 인생은 한번 뿐이니 쪼잔하게 굴지 말고 큰 꿈을 꾸며 살으라고.
하지만 실현되지 못한 이상은 결핍이 된다. 그 결핍은 마음 속 틈을 만들고, 일상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명언이 있지만 나는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행복은 만족에서 비롯된다. 만족도 재능의 영역이고 다소의 노력도 필요하다. 제 아무리 소크라테스여도 허기는 괴롭다.
하나의 욕망이 채워지면 불행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김없이 또 다른 욕망이 피어난다.
어렵사리 돈을 모아 집을 사도 더 커다란 집을 욕망하고, 너무나 외로워 애인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애인이 생겨도 연애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감정 소모들에 괴로워하며 혼자인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결핍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헛된 욕망은 마음의 눈을 가리고 현실을 왜곡시킨다. 결과에 집착하게 만들고 시행착오를 실패로 간주하게 만들어 실패를 피하기 위해 결국 도전조차 포기하게 만든다.
지금의 직장을 계속 다닐지 아니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조만간 퇴사할지 나조차 모르겠다. 그러나 그와의 대화에서 깨달은 바 내 불행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뻔한 말이겠지만 결국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여느날처럼 자기 전 일기장 어플에 지금 내 모습에 대한 한탄과 싫증을 한참동안 끄적이다가 문득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환하게 웃는 얼굴.
그저 불행한 하루로 덮어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내일도 비슷한 하루를 살아야하는데 불행의 굴레 속에서 쳇바퀴를 돌기는 싫었다. 감사하는 연습을 해야 겠다. 그건 마음의 안정 뿐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감사 일기를 적어봤다.
음···
미세먼지 수치가 좋았다?
흠······
쾌변을 했다?
흐음···············
눈이 제 위치에 달려 있다?
염병 담배나 피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