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
"근데 혼자 살면 외롭지 않아요?"
직장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냉면을 먹고 있었다. 냉면 삼키는 소리만 들리는 정적 속에서 동기 한 명이 대뜸 내 외로움을 화제로 꺼내며 정적을 깨트렸다.
"명건씨, 애인 없어? 자취하지 않아?"
머리가 벗겨진 직장 상사가 꺼억 하고 트림을 한 뒤 물었다. 순식간에 미혼이고, 애인도 없으며, 자취를 한다는 나의 정보가 확산됐다. 모든 관심이 나에게로 쏠렸다.
"불금인데 오늘 뭐하게요?"
동기가 냉면 속 무를 찹찹 씹으며 물었다.
"그때가 좋은 거야."
직장 상사가 한 번 더 속트림을 하며 받아쳤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 말이 혀끝에 맴돌았지만 간신히 면발과 함께 삼켰다. 정적 속에서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어떤 시선 속에는 연민이, 또 다른 시선 속에는 부러움이 담겨 있었다.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
"다 드셨으면 슬슬 일어날까요?"
자취 N년차 이제는 불금을 보내는 나만의 루틴이 생겼다. 금요일 저녁 여섯 시에 회사 건물을 나와 차 시동을 켜고, 출발하기 전에 배달 음식을 주문한다. 그러면 집에 도착할 즈음 치킨이 도착해 있다. 음식을 세팅하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낸다. 스마트 모니터 전원을 켜고 유튜브 앱을 실행한다. 그때쯤이면 ‘숏박스’, ‘워크맨’처럼 구독 채널에서 새 영상이 올라와 있다. 비닐 장갑을 껴고 뼈째 치킨을 뜯으며 영상에 집중한다.
그날도 그렇게 했다. 낄낄 웃으며 두어 개쯤 영상을 보니 절반 정도의 치킨이 남아 있었다. 조금 무리를 하면 다 먹을 수도 있겠지만 한 끼에 먹어치우기에는 아까웠다. 내일의 한끼를 위해 절반은 남겼다. 기분 좋은 포만감이 느껴지고 취기가 올라 대충 소파에 널브러졌다. 남은 음식을 치워야 했지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때 팔꿈치에 눌려 티브이의 전원이 꺼졌다. 공기가 툭 끊긴 듯 조용해졌다.
다급하게 전원 버튼을 여러번 눌렀다.전원이 켜지는 찰나의 순간이 길게 느껴졌다.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절규하는 비명 소리를 듣는 것처럼 섬뜩했다. 넷플릭스의 ‘두둥’ 하는 시그니처 사운드가 들리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방심하기에는 일렀다. 영화 선택이라는 아주 중요한 임무가 남아 있다. 후회 없는 금요일 저녁을 보낼 영화를 물색했다.
저장해둔 영화 목록을 살펴보았다. 전부 예술 영화 아니면 독립영화뿐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불금에 무겁고 진중한 영화는 사절이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가벼운 영화를 보고 싶었다.
결국 흥행에 실패하고 개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OTT에서 상영을 시작한 한국 영화 한 편을 재생했다. 작품성은 떨어지겠지만 잠깐 웃고 잊을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본격적으로 집중하려고 거실 불을 끄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댔다. 그런데 취기가 올라오며 자꾸 눈이 감겼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열 시도 되지 않았는데.
그때 옆집에서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마음 한켠이 시큰하고 괜히 심술이 났다. 홀로 덩그러니 남겨졌다는 생각에 헛헛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고맙게도 졸음이 불쑥 찾아와 번잡한 감정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어김없이 영화 오프닝을 겨우 넘기고 나른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일찍 눈이 떠졌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시간은 새벽 다섯 시 오십 분이었다. 평일에 기상하던 시간과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눈을 감아보았지만 잠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 있었다. 쫓아가기엔 정신이 너무 멀쩡했다. 무심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채광이 좋아 지금의 집을 선택했는데, 밝아도 너무 밝았다. 강한 빛에 집안 곳곳이 표백된 것처럼 새하얗게 보였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니 밤새 술로 미뤄둔 공허함이 불쑥 찾아왔다. 이럴 때면 빨리 몸을 움직여야 한다. 기운을 쥐어짜 벌떡 일어났다. 열린 상태로 방치됐던 치킨 박스에서 음식 냄새가 새어 나왔다. 차가워진 치킨을 플라스틱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으로 나갔다. 주말 아침 빌라촌은 고요하고 한적했다. 놀이터 벤치에 앉으니 고요함 속에서 참새 지저귀는 소리만 들렸다. 푸른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강렬한 햇빛에 잠시 눈을 찌푸렸다. 그 빛결의 끝자락에 흔들 놀이기구가 놓여 있었다. 거기 그려진 코끼리가 활짝 웃으며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따라 웃었다.
이 고요함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두어 시간 있으면 아이들로 가득 찰 테니까. 그러면 저 평화로운 코끼리도 앞뒤 양옆으로 마구 흔들리겠지. 제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끼리는 마냥 해맑게 웃는다. 마음이 느슨해졌다. 심호흡하듯 느릿느릿 숨이 쉬어진다. 이건 혼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혼자라서 좋은 순간도 분명 있다.
이런 날이면 꼭 과거의 어떤 일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아까 출발했다던 아빠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졸업식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고, 친구들은 모두 가버렸으며, 나는 덩그러니 그네에 앉아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하늘이 너무 맑았다. 떠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다 화가 나서 졸업장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차라리 울어버리고 싶었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날이 내 생의 쓸쓸함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낀 날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제 나는 열셋이 아니다. 외롭다고 성을 내며 울고 불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벤치에 앉아 있다 헬스장으로 향했다. 운동이라도 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쓸쓸함이라는 감정은 조용히 팽창할 것이다. 그리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과 감정들을 몰고 올 테다. 후회, 불안, 망상 이런 것들. 이럴 때면 움직여야 한다. 바쁘게 움직이며 쓸쓸함을 뭉근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서른이 넘어 터득한 나만의 쓸쓸함 대응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