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1의 은밀한 꿈

퇴사기원 730일차

by 명건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떠졌고, 시원하게 쾌변도 봤다. 게다가 상습 정체구간이던 출근길도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어색한 행운 속에서 문득 불안감이 피어 올랐다. 타고나기를 커다란 복주머니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아닌듯 한데, 대체 오늘 무슨 봉변이 있으려고 하늘 위 누군가 아침부터 행운을 퍼부어 주는걸까. 겁쟁이는 작은 행복 속에서도 불안을 느끼는 법이다.


여덟시 사십 일분. 아직 업무 개시 시간까지 이십 분이나 남았다. 일부러 회사를 지나쳐 한적한 골목길에 주차하고 차 안에서 늦장을 부렸다. 사무실에 일찍 들어가고 싶지 않다. 좋은 운수와 별개로 별 이유 없이 오늘 내 기분은 축 쳐져 있다.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노총각 히스테리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오늘은 회사 동료들과 수다 떨 기분이 아니다. 상사의 신소리에 비위 맞춰가며 웃어줄 기분은 더욱 아니다.


음악의 불륨을 높이고 등받이를 뒤로 젖혔다. 스피커에서 어느 커버 가수의 ‘바보처럼 살았군요' 노래가 흘러 나온다. 노래를 들으며 앞 차창 밖 떠가는 구름을 가만히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우주 속 하얀 구름이 부유하는 것처럼 잔상이 아른거리고, 매미 우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이대로 시간이 한 시간만 멈췄으면 좋겠다. 그러나 시간은 이별을 결심한 여인처럼 냉정하다. 내 바람과 무관하게 쉼없이 흐른다. 똑딱똑딱. 태연하게, 일정하게, 무심하게.


퇴사하고 싶다.


‘피곤해'를 제치고 ‘퇴사하고 싶다'가 요새 자주 쓰는 표현 1위로 등극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친구를 만나 음식이 나오기 전 정적 속에서, 잠에 들기 전에, 무엇보다 일요일 밤과 월요일 아침에 이 표현을 남발하고 있다. 평어인 경우도 있고 노랫말에 섞기도, 멜로디처럼 흥얼거리기도 한다. 혼잣말이 대부분이지만, 습관이 돼 누군가와 함께일 때도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면 지인들은 대게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퇴사하면 대체 무얼 하고 싶은데?




어린 시절 내 장래희망은 자주 바뀌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외교관이었다. 잊고 살다 방 청소 중 우연히 발견한 문집에 적혀 있었다. 여행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에 의아했다. 그 시절에도 또래들과 다르게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수련회도, 수학여행도, 가족여행도 전부 귀찮았다. 평생 객지를 떠돌아야하는 직업이 외교관인데 흥미와 적성이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아마도 반기문 전 총장님 신드롬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중학교 때 장래희망은 검사였다. 자발적인 꿈은 아니고, 아빠의 강요에 가까운 희망사항때문이었다. 아빠는 우리 아들이 커서 검사가 될 거라고 동네 어른들에게 공공연하게 선포하며 못이룬 자신의 꿈을 나에게 투영시켰다. 때문에 아빠 기분 좋으라고 일부러 꾸며내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지지부진한 성적 때문에 아빠의 마음 속에 어쩌면 내가 검사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싹트던 시절 사법고시가 폐지됐고, 로스쿨 제도가 생겼다.


아빠의 거듭된 사업 실패로 조금씩 기울어가는 가정 형편 덕에 ‘검사' 이야기를 꺼내면 일 년에 천 만원이 넘는 로스쿨 학비를 지원해 줄 수는 있냐는 반박거리가 생겨 자연스레 아빠의 검사타령도 끝이 났고, 장래희망란에 검사라고 적을 일도 없었다.


이처럼 어린시절 '장래희망' 하면 언제나 거창한 직업들을 말했지만, 사실 그것들은 눈속임용이었다. 또래 대부분이 꿈꾸기에 똑같이 적더라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그런 꿈. 마음 속에 은밀히 품은 꿈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배우였다.


내향적인 성격과 부족한 사회성 탓에 어린시절 또래들이 삼삼오오 모여 동네를 누빌때 집에서 혼자 티브이를 보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투니버스에서 나오는 애니매이션이 지겨워 질 때쯤 OCN에서 방영하는 영화와 SBS PLUS나 MBC EVERYDAY 같은 케이블 방송 채널의 드라마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화면 속 그들은 나와 정 반대의 모습이었다. 겁이 없고, 성실하고, 특별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들을 동경하게 됐다. 티브이 속 그들처럼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욕망을 누르며 살았다. 그렇게 억눌렀던건 타인의 반응 때문이었다. 용기를 내 친한 친구들에게 말하면 그들은 가볍게 비웃으며 대꾸했다. 가서 거울 봐라.


가족의 반응도 비슷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생겼다고 주장하던 엄마마저 스무 살에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녀의 표정에 담긴 당혹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현빈 닮았다며, 현빈은 톱스타잖아" 라고 억울해할때 그녀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부정적인 반응 때문에 의기소침해진 나는 배우라는 꿈을 잡지도, 놓지도 못한 채로 이십대 중반까지 방황했다. 차라리 체념하고 싶었지만 마음 속 깊이 뿌리박힌 꿈은 쉽게 뽑히지 않았다. 수업을 들으면서, 야자 시간에 교과서를 펴고, 군대에서 행군을 하면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언제나 머릿속에서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스물 일곱, 대학교 졸업반이었던 어느 여름날. 지금이 아니면 평생 기회가 없을 거라는 조급한 마음이 두려움을 이겼다. 무턱대고 ‘성인 연기’라고 써 있는 간판에 이끌려 학원에 들어갔다. 학원 등록증에 서명할 때만 해도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꿈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막상 입학하고 한 달 정도 다니고 그만둬 버렸다. 이번엔 다른 방향으로 조급증이 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기를 해보니 나는 재능이 없었다. 발음은 뭉개졌고, 자아가 비대해서 좀처럼 배역에 몰입하지 못해 매일 선생님에게 “니가 로봇이냐!”는 질책을 들었다. 실력은 없는데 잘해야 겠다는 욕심만 앞섰다. 십 수 년간 꿈꾸던 내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쯤 친구들이 하나 둘 취업하기 시작했다. 나만 뒤쳐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환상 속에 가려진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연기 학원에는 십 년 넘게 지망생 생활을 하는 불혹에 가까운, 혹은 불혹이 지난 수강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제작사의 콜이 오면 바로 만사 젖히고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정규직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리 운전, 택배 배송 등의 일용직을 십 년 넘게 전전했다.


그들은 연기를 사랑했다. 머릿속에도 온통 연기 생각 뿐이었다. 식사 자리에서도 혹은 술을 마시면서도 온통 연기 얘기 뿐이었다. 연기를 처음 시작한 계기 혹은 배역에 몰입할 때 느껴지는 황홀경에 대해 거창하게 이야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계산할 때가 되면 먼저 조용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계산하고 나오는 동생들을 보고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들이 잘못했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이 예술이라는 좁은 바늘 구멍을 통과하려면 '가난'이라는 옵션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자문했다. 내가 비참함을 견딜 정도로 연기를 사랑하는가? 전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밝고 활기찬 미래만 떠올렸다. 연기를 시작하면 톱스타가 돼서 세상에 내 이름 석자 널리 알릴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출가한 싯다르타가 목격한 성벽 밖 현실처럼 예술이라는 나무 아래 그림자진 현실은 처참했다. 불확실성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결국 이십 오 년간의 꿈을 한 달만에 접었다.


지금은 배우를 꿈꿨다는 기억조차 잊고 산다. 그러나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관성처럼 한적한 날이면 톱스타가 된 내 모습을 은밀하게 상상하고는 한다.


시상식 날이다. 나는 멋진 슈트를 입고 있다. 커다란 스크린에 내 얼굴과 라이벌인 동료 배우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사회자가 말한다. “연기대상 ‘명건’ 축하드립니다”. 동료 배우들의 박수를 받으며 일어난다. 수상 소감을 말하려는데 목이 막힌다. 부족한 저를 믿어준 엄마, 아빠 너무 감사하고. 애완견 루이 사랑하고. 성현이...동철이... 학창 시절 친구들까지 하나 하나 언급해야 되나. 그럼 좀 많은데.


그러나 꿈은 반대로 현실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꿈 속에서 헤엄치다 현실로 돌아오면 그 괴리만큼 박탈감이 느껴진다. 시간은 여덟시 오십 오분. 십 오분 간의 공상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차 밖으로 나와 회사로 향한다. 안에서 듣기에는 잔잔했던 매미 우는 소리가 밖에서 들으니 몹시 요란하다. 냉기는 금세 사라지고 콧잔등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아 회사 가기 싫다. 갑자기 듣고 싶은 노래가 생각났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걷다가 핸드폰을 본다. 여덟시 오십 구분. 아씨 지각이다. 이어폰을 대충 주머니에 욱여 넣고 회사를 향해 힘차게 뛰어간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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