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 되는 브라더스
이십대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쉰내가 나는 자취방에서 청춘 둘이 자신들의 외로운 처지를 한탄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곧 서른인데 무엇 하나 이룬 것이 없어. 돈, 여자 전부 없잖아. 친구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청춘은 무자비하고 잔인해.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아. 떠가는 구름처럼, 지영이처럼. 내가 일부러 문어체를 사용해 장난을 쳤다. 지영이(가명) 얘기를 왜 해 병신아. 친구가 발끈했다.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새삼 우리의 젊음이 끝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되며 조급함이 느껴졌다. 청춘이 곁에 있을 때 만끽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며 우리는 결심 했다. 오늘 당장 스러져가는 청춘에 새로운 변화를 주자. 지체할 시간이 없다. 내일도 늦다. 그렇다. 우리는 헌팅포차에 가기 위한 자질구레한 변명들을 열심히 만들어낸 것이다. 서른이 넘으면 헌팅포차에 출입하지도 못한다.
일단 떡진 머리를 감았다. 저장해둔 ‘포마드 머리 쉽게 하는 방법’ 유튜브 쇼츠를 보면서 따라했다. 영상 속 미용사는 참 쉽게 하는데 내가 하면 영화 ‘중경삼림’의 ‘양조위’ 머리가 된다. 물론 영화에서 양조위 배우는 굉장히 멋있다. 그러나 지금은 90년대가 아니고, 내 얼굴은 양조위가 아니다. 중경삼림의 명장면을 따라 옆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거울을 가만히 응시하는 나를 보고, 친구가 험한 것을 본 듯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비비크림 대신 선크림을 사이 좋게 바르다 창문 밖의 어둑한 빌라촌의 풍경을 바라보고 낄낄 웃었다. 경극 배우처럼 얼굴이 허예진 서로를 바라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양연화의 장국영을 따라 ‘끼이' 소리를 내며 나풀나풀 춤을 췄다. 입술 색 보정을 위해 니베아 체리 립밤도 발랐다. 마지막으로 지영이가 선물해준 블루 드 샤넬 향수를 손목에 칙칙 뿌렸다. 실실 웃으며 가수 테이의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를 흥얼거리다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최대한의 멋을 내고 전신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거울에 비친 우리를 보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헌팅하러 가는 남자들이네.
우리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청춘의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다짐과 함께 홍대로 사냥을 떠났다.
처음의 포부와 달리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취기만 올라왔다. 우리가 시킨 맥주에 이뇨제라도 탔는지 애써 앉힌 여자들은 오 분 정도 뾰루퉁하게 앉아 있다 화장실 간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늦어질 수록 술집 안은 점점 남초화됐다. 눈 맞은 남녀들은 이미 술집을 나가 더 어둡고, 더 폐쇄된 장소로 나갔을 테다. 이제는 정말 음악을 들으러 왔거나, 진지한 대화를 하러 왔거나, 눈이 높아 웬만한 남자들은 성에 안 차는 여자들만 남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냥의 난도가 높아진다. 그곳에 남은 사냥감들은 호랑이나 사자 뿐이다. 우리는 객기라는 돌도끼 하나 들고 설치는 원시인일 뿐이고. 아무리 구애해봐야 콧대 그녀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새벽 두 시 넘어서 헌팅에 성공하려면 연예인급으로 빼어난 외모 혹은 돔페르뇽(되게 비싼 와인) 정도는 살 수 있는 재력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
글렀다.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술에 잔뜩 취해 눈이 반쯤 풀려서 벽에 기대고 있었다. 불쌍한 친구는 아직 현실 자각이 안됐는지,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다니며 거의 동냥하듯 만남을 구걸하고 있었다. 처음 그곳에 들어갈 때만 해도 쭈뼜대던 친구는 연속된 거절에 오히려 자신감이 붙었는지, 이곳저곳을 누비며 거침없이 거절을 당하고 있었다.
그때 스피커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남자 아이돌의 리믹스 음악이 나왔다. 여기 리더가 나보다 두 살 어린데. 만약에 이 사람이 헌팅 술집에 왔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여자들이 우리 테이블 옆에 길게 줄을 서 있겠지. 이런 공상을 하다 보니 멀리서 패밀리 레스토랑 종업원 마냥 반쯤 무릎을 꿇고 자기 쪽은 쳐다도 보지도 않는 여자들에게 구애하고 있는 친구가 새삼 안쓰러웠다. 그래서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나중에 친구가 결혼하면 축하 영상으로 틀어야지 다짐하면서.
사냥에 실패한 사냥꾼이 마음에 생채기를 입은 채로 씩씩 거리며 다가와 대뜸 내게 화를 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놀러 왔어?"
"뭐라고?"
"여기 놀러 왔냐고."
"뭐래 미친놈이."
군대 전역하고 거의 오 년만에 들은 질문이었다. 뻥져 있는데, 친구가 대뜸 코트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코트에서 체리 니베아가 톡 떨어졌다. 먼저 나가 담배를 피우며 친구를 기다리다 밖으로 나온 친구에게 립밤을 건넸다.
“버려 병신아"
친구가 정색하고 화를 내길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립밤을 입술에 펴 바른 다음 쫩쫩 소리를 내고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친구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 보다 저 편으로 사라졌다.
"어디가?"
"따라오지 마."
성큼성큼 걷는 친구를 쫓아 새벽 클럽 거리를 배회했다. 두 시간 전만 해도 인산인해였던 거리도 제법 한산해졌다. 곳곳에 좀비들이 보였다. 술에 취해 골목길에서 서로의 몸을 주물러대며 아밀라아제를 교환하는 좀비. 클럽에서 꼬셔서 밖으로 나온 여자에게 같이 자자고 거의 무릎꿇고 애원하는 좀비. 술에 취해 바닥에서 잠에 들은 좀비.
"어디 갈건데. 피시방?"
"게임 안해."
"어디 갈거냐고."
"몰라 병신아."
병신과 머저리는 한참을 걷다가 찜질방에 도착했다. 친구는 담배 냄새가 싫다고 먼저 들어가고 나는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웠다. 차가운 새벽 공기 위로 연기가 흩어졌다. 시끄러운 소리에 오래 노출된 귀는 아직도 먹먹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귓가에 손가락을 튕겨봐도 둔탁하게 들렸다. 침을 삼켜봐도 소용 없었다. 새벽의 비릿한 냄새가 코 끝을 간질인다. 멍하니 가로등을 바라봤다. 하루살이들이 뜨거운 불빛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다가와 쭈뼜댔다.
"뭐."
"그거 피면 기분 좋냐?"
"뭐래."
"나도 줘봐."
"지랄을 한다 아주."
친구의 등을 후려 갈기고 함께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옆에 나란히 누운 커플이 꽁냥대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더욱 사무쳤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는 모로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친구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자?"
"쟤들 저 지랄하는데 너 같으면 잠이 오겠냐."
우리는 새벽 네 시에 찜질방에 나란히 누워 꽤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쾌락 혹은 절망감이 휘몰아친 후에 일시적으로 깊은 평온함이 찾아온다. 우리는 그곳에 있는 많은 여성들 중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했다는, 동시에 다른 수컷들에게 사냥감을 뺏겼다는 깊은 박탈감과 절망감 속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시쳇말로 ‘현자 타임'이라고 부르는 시간 동안 진지한 철학자가 된 우리는 꽤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아까 유명한 보이 그룹 노래를 들으며 느낀 박탈감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룹 리더가 나보다 두 살 어린데 얼마 전에 백 억짜리 집을 샀다더라. 만약 그 친구가 오늘 헌팅 술집에 갔으면 여자들이 줄을 서고 기다렸겠지. 아마 너처럼 무릎을 꿇고 돈은 우리가 쓸테니 술 한 잔만 하자고 애원하지 않않을 거야. 이 대목에서 친구가 갑자기 성질을 내는 걸 내가 공공 장소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예절을 알려주며 겨우 진정시켰다.
그리고 인생의 불공평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외모는 사실 철저히 재능의 영역이다. 물론 성형을 통해 능력치를 끌어 올릴 수는 있겠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태생적인 아름다움은 결이 다르다. 운동을 통해 덩치를 키울 수는 있겠지만 천부적으로 골격이 큰 사람들의 아우라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듯이. 결국 인간은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명품을 사고, 능력을 기르는데 어린 시절부터 존재만으로 사랑받는 미인들의 삶이 너무 부러웠다. 이렇게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어떤 광경이 떠오른다.
모의고사를 망치고 풀이 죽어 하염없이 동네를 배회하던 고3의 어느 날이었다. 많은 비가 내렸고, 나는 땅을 보며 걷다가 흙길을 기어가는 민달팽이를 발견했다. 그날 나는 아이처럼 가만히 쪼그려 앉아 연노랑 콧물같은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안쓰럽다. 그것을 보자마자 마음이 저미었다. 어떤 생존 본능도 갖지 못한 채로 태어난 존재. 속도가 빠른 것도, 어느 달팽이처럼 집이 있는 것도 아닌 어떠한 생존 본능도 갖추지 못하고 태어난 생태계 최하위 서열의 그것이 안쓰러웠다.
이렇게 자존감이 떨어질 때면 그 날이 떠오르는 건,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잘생기지도, 덩치가 크지도, 돈이 많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나를 인간보다 고등 생물이 내려다 보면 새삼 내가 민달팽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 감정처럼 연민감을 느끼지 않을까. 나만의 무기 하나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피지컬, 외모, 재력, 능력 그 무엇도.
작은 목소리로 킥킥 거리다 보니 지하철 운행할 시간이 다가왔다. 첫 차를 타고 집으로 가려다 출출해서 근처 순대 국밥 가게에서 아침을 먹었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붉은 해가 뜨고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었는데, 친구가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거절할 수 없었다. 어색하게 입에 담배를 문 친구에게 불을 붙여줬다. 친구가 한 번 피우고 이켁켁 대더니 이딴 걸 왜 피우냐고 승질을 내고 재떨이에 내버렸다.
그 후에 우리는 약속한듯 아무말 없이 시뻘건 태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장난을 치고 싶었지만 여명에 붉게 물든 그의 촉촉한 눈동자를 보니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고요한 새벽이었다. 정적 속에서 담배 연기 내뿜는 소리만 들렸다. 오랜 침묵을 깨고 친구가 입을 열었다.
"준비가 부족했어. 다음번에는 더 치밀하게 준비하고 오자. 병신아 너도 좀 적극적으로 하고. 머리가 그게 뭐냐."
한참 후에 대답했다.
"병신."
하지만 그 친구와 헌팅을 나간건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친구와 사냥을 떠날 일은 없을 것이다.
"시간 참 빠르다. 우리가 벌써 서른 하나라니."
"개소리 하지 말고, 빨리 청첩장이나 내놔. "
청첩장 모임이랍시고 여러 친구들을 모은 것도 웃기고, 부끄러워 볼이 발개지는 모습이 어색해서 괜히 실 없는 농담을 건넸다. 친구는 결혼을 했다. 웃을 때 보조개가 깊게 패이는, 얼굴에 곡선이 많은, 성격이 둥글둥글한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렇게 연상은 싫다고 객기를 부리더니 역시 인생은 한치 앞을 모른다.
그날 친구는 몰랐겠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머리의 물기도 마르지 않은 채로 처음 담배를 피운 그 날 계절이 바뀌면 몹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2년 후에 유부남이 되리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겠지. 그저 영원히 외롭게 살까 걱정했겠지. 앞 날은 모른다. 그래서 두렵지만, 또 그래서 기대가 된다.
나는 여전히 혼자다. 나에게도 인연이 있을까? 그날 붉은 해를 보며 내게도 곧 아리따운 연인이 생길거라고 기대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그러나 친구를 보면 희망을 얻는다. 저런 애도 결혼을 하는데... 라는 희망도 있지만...인연은 정해져 있다는 믿음. 그것을 나는 친구를 통해 얻었다. 가끔은 이름도, 생김새도, 존재하는 지도 모르는 연인을 생각하며 씨익 웃는다. 실루엣을 떠올렸을 뿐인데 마음이 따뜻해진다. 오늘 밤은 어쩐지 편히 잘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