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총각의 고백
데이트를 마치고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는 길이었다. 이어폰을 귀에 한쪽씩 나누어 끼고 음악을 들으며 키득거렸다. 가기 싫어. 보내기 싫어. 이런 낯간지러운 말들을 자연스레 주고 받던 시절이었다. 여자 아이돌 노래가 들리자 그녀가 재빨리 핸드폰을 뺐어 다음 트랙으로 넘겼다. 왜 그러냐고 묻자 “예쁜 여자 노래 들으면 질투나” 하고 그녀가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피식 웃었고, 그녀는 부끄러운듯 괜히 투정을 부렸다. 그러다 내가 무언가 생각나 어떤 노래를 찾아 재생했다.
‘장가갈 수 있을까. 장가갈 수 있을까. 올해도 가는데, 장가갈 수 있을까?’ - 커피소년 장가갈 수 있을까 중
“가사 개웃기지 않아?”
“개가 뭐야. 말 이쁘게 하랬지.“
“이거 정말 ‘매우, 굉장히' 웃기지 않아?”
“근데 너는 걱정 안 해도 돼.”
“왜?”
“지금 왜라고 했냐?”
“무슨 소리야.”
“너 나랑 결혼 안 할거야?”
첫사랑이라는 치명적인 열병을 앓던 시절이었다. 언젠가는 우리가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법적인 관계로 발전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감히 의심도 하지 못했다. 몇 년 후에 우리가 남이 되리라는 것을. 십 년 뒤에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도 ‘우리'라는 단어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게 되리라는 것을. 평생 우리는 우리로써 함께 늙어갈 줄 알았다. 그 시절에는 ‘장가갈 수 있을까'라는 노총각의 고민이 담긴 가사가 그저 웃겼다. 마냥 남의 일처럼 느껴졌으니까.
다른 여자와 같은 노래를 듣게 된건 오 년 뒤의 일이었다. 아직 정확한 관계가 정립되지 않은 어느 여인과 내가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장마철이었다. 밖에는 세차게 비가 내렸다. 나란히 누워 각자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여인이 흘깃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무언가 재미난게 생각난듯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오빠 이 노래 알아?”
여인이 커피소년의 장가갈 수 있을까를 재생했다.
“알지. 나 이 노래 싫어. “
“왜?”
“그냥. 재수 없어.”
“있잖아. 오빠는 결혼 못할 거 같아.”
“저주를 걸어라. “
“오빠 선 엄청 긋잖아. 음... 오빠는 대문은 잘 열어주는데, 현관문은 절대 안 열어줘.”
“너 우리집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왔어.”
“그럼... 오빠 우리 사귈래?”
대뜸 그녀가 말했다. 장난인 척 가볍게 말했지만 조그만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창 밖에는 비가 점점 더 세게 내렸다. 우르릉 쾅. 천둥이 쳤다. 나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체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창 밖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번개의 섬광빛이 어린 내 표정은 어땠을까. 그녀도 파르르 떨리는 내 입술을 봤을까.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에 쿵쿵 거세게 뛰는 내 심장 박동 소리가 묻혀 다행이었다. 내가 한참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건 쿵쾅대는 심장이, 가쁜 호흡이 가라앉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이러다 전부 잠겨 버리는거 아니야?”
짐짓 못들은척 딴청을 부렸다. 나도 그녀가 좋았다. 아프면 걱정 됐고, 맛있는 걸 보면 먼저 생각이 났고, 좋은 곳에 가면 함께 오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사랑할 자신도, 상처줄 자신도, 상처받을 자신도. 첫사랑의 잔해는 그토록 진한 것이었다. 그녀가 떠나고 나는 무언가를 잃었다. 그녀가 가지고 떠난건지, 사라진건지 모르지만 나는 분명 아주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다. 그것은 다른 여인이 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무섭게 내리는 비를 가만히 바라보며 전부 떠내려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 바람 따위로 무너질만큼 연약한 세상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니 어김없이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여름 뙤약볕에 비는 전부 말라 버렸다. 그녀도 사라졌다. 텅빈 방에서 홀로 침대에 대자로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며 담배를 피웠다. 장가갈 수 있을까. 장가갈 수 있을까.
음악을 들으며 낯선 동네를 걸었다. 산책지는 신축 아파트 단지 내부였다. 낯섦이 나를 기분좋게 긴장시킨다. 신축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잘 가꾸어진 조경 때문일까. 길쭉하게 뻗은 건물의 상승감 때문일까. 따뜻한 주황색 불빛이 퍼져 나오는 아파트 단지를 걷다 보면 마음이 한결 느슨해진다. 곁에서 걷는 주민들은 어딘가 여유로워 보였다. 잔잔한 에너지에 덩달아 내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그렇게 천천히 음악을 들으며 낯선 동네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걷다보면 부드럽게 차선을 변경할 때처럼 마냥 어색하게 느껴지던 동네가 조금 친숙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이어폰 너머 유튜브 알고리즘이 느닷없이 ‘장가갈 수 있을까’ 를 재생했다. 그 순간 내 또래로 보이는 부부가 맞은 편에서 나를 스쳐 지나갔다. 어린 아이가 아빠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아빠는 그런 아이를 사랑스럽게 쳐다봤다. 엄마는 아이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남편에게 애정의 눈빛을 보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순간 뭉클함이 느껴졌다.
인간은 살면서 원하든 , 원하지 않든 여러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어떤 역할은 의무로 주어지고, 또 어떤 역할은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주어진다.
자식, 조카, 친구,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군인, 남자친구, 회사원, 남편, 아빠 등.
생면부지 그의 모습을 보고 느닷없이 뭉클함을 느낀건 그가 기꺼이 도맡은 아빠, 남편, 가장의 무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새는 또래의 아빠들을 보면 심장이 요동친다. 아마도 나 역시 결혼적령기에 접어 들었기 때문일테다. 본능적으로 마음 한 켠으로 그들을 동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게 주어진 역할들 - 아들, 회사원, 친구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데 가장이라는 역할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 남편, 아빠, 회사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이름 모를 어느 남자의 모습이 깊게 뇌리에 박혔다. 사실 체구가 큰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그의 뒷모습이 누구보다 듬직하게 느껴졌다. 존경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씁쓸했다. 그렇게 그와 나는 반대로 스쳐 지나가 서로의 세상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골목길로 들어가 내가 사는 동네로 돌아왔다. 오늘도 여전히 경찰차가 순찰을 돌고 있고, 쓰레기 무단 투기시 백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음성 안내가 나오는 가로등 밑에는 무단 투기된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놓여 있다. 고등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어린이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고, 그 옆에 어떤 아저씨는 눈에 초점이 없는 채로 병나발을 불며 혼잣말을 한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는데 익숙한 정적이 오늘따라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 남자의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소파에 널브러져 노래를 불렀다. 장가갈 수 있을까. 장가갈 수 있을까. 이제는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이 노래는 나한테 코미디가 아니다. 호러다 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