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자꾸 졸음이 온다

내 차 보다는 아빠 차

by 명건

얼마 전 첫 차를 샀다. 당장 필요는 없었지만 덜컥 저질러 버렸다. 조급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른이 지나면서 줄곧 차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물론 차가 없다고 면전에서 조롱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들리는 말의 뉘앙스가 그랬다. 고민하던 중 친구의 돌직구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차 없으면 소개팅 안 들어올 걸. 너 잘생겼어? 키 커? 능력 좋아? 전부 아니면 차라도 있어야지.”


딱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차를 알아보던 중에 지인이 결혼 하면서 차를 바꾸게 됐는데, 십 년 넘게 탄 차를 중고차 딜러에게 판매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잽싸게 중간에서 내가 도매가로 낚아챘다. 그러나 막상 차를 받고 나서도 영 기쁘지가 않았다.


나는 운전 면허도 이십대 후반에 취득했다. 주변을 보면 성인이 되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면허를 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꽤 늦게 취득한 편에 속한다. 별로 운전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유는? 무서웠다. 나처럼 부주의한 애가 시속 수십킬로미터의 단단한 덩어리를 운전한다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한 도로 위를 달리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러나 자존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앞서 가지는 못해도 뒤쳐지는 것은 못참는 나였다. 차가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떳떳했다면 괜찮았을 테다. 무리지어 어딘가로 이동할 때 조수석에 타는 일이, 차가 없으면 소개팅이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친구의 말에 괘념치 않았다면 결코 차를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차가 없음으로 인해 자존심이 상할 때마다 내 마음 속 어딘가 조금씩 바스라지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운전해야 하니까. 홧김에 한 달 남은 적금을 해지해 버렸다.



운전 세 달 차. 뒷 범퍼에 노란색 글씨의 ‘초보운전' 딱지가 붙어 있고, 곳곳에 여기저기서 긁힌 흔적들이 남아있다. 운전을 시작한지 백 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시동을 켜면 가슴이 떨린다. 다음날 약속 있으면 전부터 내비게이션을 켜 동선을 미리 살핀다. 그러고도 당일 출발 직전까지 차를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할지 고민한다.


이따금씩 타인을 내 차에 태울 때면 손이 덜덜 떨린다. 사정을 설명하고 가급적 동승은 피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누군가 태우고 운전할 때는 평소보다 훨씬 조심한다. 내 작은 실수로 동승자가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태우고 운전한다는 것은 한시적으로 그의 안전을 내가 책임진다는 의미와 같으니까.


과한 의미부여가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아직 내게 도로는 전쟁터 같다. 이동의 편의를 위해 생명을 담보로 거는 전쟁터. 그래서 운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새삼 존경심이 느껴진다. 전부 내게는 선장이고, 감독이고, 캡틴들이다.


그래서 요새는 화물차를 운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나는 집에서 회사까지 이십 분 거리를 운전하는 일도 진땀 나는데 아버지는 화물차를 끌고 하루에도 수 십, 수 백키로 미터를 운전한다. 새벽 주말 가릴 것 없이 거의 매일 그 커다란 차에 시동을 건다.


아버지는 운전 경력이 사십 년 넘은 베테랑 운전 기사이다. 그러니 나도 적지 않은 시간을 아버지의 차에서 보냈겠지. 자식들에게 더 좋은 곳을 보여주고 싶은 어머니의 사랑과 여행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취향 덕에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곳곳을 여행하는 호사를 누렸다.


그가 운전하는 차는 내게 포근한 요람 같았다. 차에만 타면 새록새록 잠이 쏟아졌다. 불면증 때문에 힘들어하던 시절에도 그의 차에만 타면 잠이 쏟아졌다. 학원에서 집으로 향하는 그 이십분의 쪽잠이 얼마나 달콤했던지. 그에게는 주저 없이 나의 안전을 맡길 수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에게는 퍽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것이.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자주 "우리 아들 언제 커서 아빠 자동차 태워줄라나" 하고 장난을 쳤는데, 막상 진짜 내가 차를 사서 운전을 시작했다니까 아버지가 걱정을 많이 했다. 운전이라는게 쉬워 보여도 사실 아주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차를 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내 차에 태우고 삼계탕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내가 어른이 됐다는 것을 으스대고 싶은 마음도 한 켠에 있었다. 너도 이제 다 컸네,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기대했던 거 같다. 그러나 자랑스러워하리라 예상했던 내 마음과 달리 평소에 자상했던 분이 그날에는 엄하게 호통도 많이 쳤다. 그래도 서운하지 않았다. 애정이 느껴졌으니까. 내 안전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식사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아버지가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내가 운전한다는 걸 아버지가 한사코 거절했다.


“왜 내가 운전하는 차 안 타려고 해? 나 운전 못해?”


“그게 아니고...에이 뭔가 이상해.”


“뭐가?”


“조수석에 앉은 지가 까마득하잖아.”


차에서도, 우리 가정에서도 캡틴은 아빠였다. 평소에는 영 남편을 못 미더워하는 엄마도(사실 못 미더울 만 하다) 큰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잘한 결정은 엄마의 몫이었지만 중대한 결정은 언제나 아빠가 내렸다. 가장으로 사는게 쉽지는 않았겠다. 집에 가는 길에 석양이 졌는데, 석양빛에 붉게 물든 아빠의 얼굴이 어쩐지 근엄해 보였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 탔더니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꾸벅꾸벅 조는 나를 보더니 아빠가 차라리 자라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차가 터널에 진입하자 감은 눈 위로 주황색 불빛이 아른거렸다.


잠에 빠질듯 말듯한 그 순간 어린 시절 기억들이 겹쳐졌다. 이 터널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눈을 뜨면 이십 년 전이었으면 좋겠다. 그때처럼 차 안에서 깊게 잠든 나를 엄마가 부드럽게 깨우고, 이 자식 이거 완전히 잠들었네 하고 아빠가 피식 웃고 나를 집으로 업고 갔으면 좋겠다. 그때 참 포근했는데. 행복했는데. 그 느낌이 좋아서 사실 매번 자는 척 했는데.


아직 내게 운전이 조금 버겁다. 어른의 삶은 그보다 조금 더 버겁다. 그런데 아버지는 모든 능숙하게 해낸다. 운전도, 가장의 역할도. 아빠가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까지고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고 싶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는 부드럽게 도로를 달린다. 내 차가 이렇게 부드럽게 달릴 수 있는 차인줄 미처 몰랐다. 내가 운전할 때는 잘 안 나갔는데.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5화장가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