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놈들을 만났을 때 대처법
‘카르마’가 있다면 전생의 나는 분명 죄 많은 악인이었을 것이다. 특히 소음 문제로 이웃들을 괴롭힌게 틀립없다. 툭 하면 고성을 질러 마을 사람들을 잠 못들게 만든 상놈이었거나, 독립군들을 소리로 고문하는 친일파였거나. 그게 아니면 이사할 때마다 이상한 이웃을 만나 층간 소음에 시달리는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층간 소음을 당하면 길거리를 걷다가 별안간 뒤통수를 가격당한 기분이 든다. 당혹스럽고, 화가 난다. 그러다 또 손이 날아올까 불안감을 느끼고, 그 다음부터는 걸어가면서도 쭈뼛대며 뒤를 돌아보게 되고, 누군가의 손바닥만 봐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렇게 조심을 해도 어김없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손바닥은 날아올 것이다. 그러면 손바닥 모양의 플라타너스 잎만 봐도 마음을 졸이게 되겠지.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객지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스물 살 이후에 지금까지 총 여섯 번 이사를 갔으니까, 평균 일 년 육 개월 마다 주거지를 옮긴 셈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 여섯 번 모두 소위 빌런이라고 부를 만한 미친놈들이 이웃 주민이었다. 쓰다 보면 끝도 없지만 경찰까지 불렀고 내용 증명까지 보냈던 대표적인 빌런 한 마리를 소개하겠다. 록커.
위층에 살던 록커는 음악인 코스프레를 하고 싶은 모양인지 베이스가 풍부한 고급 스피커를 빌라에서 사용했다. 그것도 록커답게 항상 밤 늦게. 참다 못해 집 주인을 통해 불편함을 토로했더니 그는 너무나 당당하게 대답했다. “내 공간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뭔 상관이냐.” 심지어 나의 컴플레인에 빈정이 상했는지 그 날 이후로 득음이라도 했는지 목소리가 더 커졌다. 하드 록을 즐겨 듣고 부르는 그 때문에 매일 밤 천장 위에서 괴물이 울부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마다 지진 나는 것처럼 집 안의 물건들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내 심장은 미친듯이 흔들렸다. 정신이 나가기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층간 소음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회유. 이웃이 지성인이라면 이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다. 포스트잇에 소음으로 인한 나의 고충을 정중하게 적어 이웃의 현관 앞에 붙이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다. 작은 선물을 함께 준비하면 효과가 배로 올라간다. 만약 이웃이 교양있는 지성인이라면 문제는 평화롭게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먹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정도의 공감 능력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소음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테다.
나도 처음에는 록커 집 현관 앞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비타민 음료 한 박스를 문 앞에 두었다. 고작 밑층에 산다는 이유로 자존심을 굽혀야 했던 상황이 어이가 없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역시 그 날 밤에도 락커는 새벽까지 노래를 불렀다. 아주 우렁차게. 다음 날 현관문을 열어보니 빈 음료수 박스가 있었고 그 안에는 내가 적은 포스트잇이 꼬깃꼬깃 구겨져 있었다. 분노로 눈 앞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관용적 표현의 의미를 그때 완전히 이해했다.
층간 소음에 대처하는 방법 두번째 방법은 공격이다. 어김없이 소음이 들리자 경찰에 신고했다. 기가 막히게 록커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스피커를 껐다. 경찰들이 잠시, 아주 잠시 그의 문 앞에서 기다리고 내게 말했다. “조용해진 것 같으니 철수하겠습니다.” 그들이 가자마자 다시 노래를 불렀다. 소리가 들릴 때마다 빗자루로 천장을 후려쳤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천장 벽지가 뜯어져 벽지 도배 비용을 물어줘야 했을 뿐이다.
더이상 방법이 없었다. 이판사판. 어느 새벽에 눈에 독기를 가득 품은 채로 계단을 올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새벽 1시. 힘껏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음악이 흘러 나오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 동안 문을 두드렸다.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문 너머의 그는 나를 희롱하듯 음악의 불륨을 최대로 높였다. 씩씩 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물건 하나를 검색했다. 층간 소음 피해자 커뮤니티에서 본 글 하나가 생각난 것이다. 생각보다 가격이 꽤 나갔지만 상관 없었다. 내가 받은 고통의 일부분이라도 그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그때의 나는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있었다.
이미 승부는 시작됐다. 승패가 결정나기 전까지는 결코 끝나지 않을 싸움이다. 씨익씨익 거리며 우퍼를 사려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기사 하나를 발견하고 어이가 없어 실소했다. 그리고 전의를 잃은 채 쿵쿵 소음 속에서 날을 새고 날이 밝는 대로 시외 버스를 타고 본가로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 자취방 근처 부동산에 전화해서 집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집주인에게도 임대인 복비까지 내가 지불할테니 가급적 빨리 이사를 가고 싶다고 전했다.
법은 약자의 편이 아니었다. 고작 밑층에 산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약자라고 칭해야 하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법은 필요한 순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이 끊어진 내게 남은 방법은 단 두 가지 였다.
첫번째는 완전한 물리적인 폭력. 조금의 상식도 통하지 않는 사회부적응자는 사람이 아니다. 도덕심과 이타심이 없는 짐승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공동체 규범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설령 물리적인 폭력이 동원될 지라도. 억울하지 않은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히 나뉘는 상황에서 사회가, 법이 나를 전혀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렇다면 원초적인 방식으로라도 자구책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이 방법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층간 소음 피해자'는 폭력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오히려 ‘피해자'였던 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사실 그 날을 생각하면 조금 아찔하다. 내가 이성을 잃고 위층으로 올라간 그날. 만약 그가 현관문을 열었다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그런 인간 때문에 귀한 내 인생에 금이 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범죄자가 될 수는 없었다.
결국 내게 남은 방법은 단 하나였다. 체념. 계약 기간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이사를 갔다. 임대인 복비에 이사 비용 그리고 천장 도배 비용까지. 백 만원 넘는 돈을 날리며 피눈물을 흘렸다. 이사를 가고 나서도 반 년 쯤 악몽에 시달렸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도망쳤다는 패배감에 오랫동안 속앓이 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사람들은 참는 사람을 호구로 여긴다. 불합리한 일을 겪으면 응당 적극적으로 맞서 내 권리를 쟁취하고 안위를 되찾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웃들은 우리의 기대만큼 상식적이지 않고, 사회는 우리의 요구만큼 정의롭지 않다. 세상에는 미친놈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사회에는 그런 미친놈들을 격리하고 처벌할 만큼의 제도가 부재한다.
그러니 우리는 어느 정도 체념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길을 걷다가 눈이 마주쳤다고 욕설을 내뱉는 짐승에게, 난폭하게 운전하고 도리어 차에서 내려 위협하는 상놈에게, 층간 소음으로 이웃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악마의 미친 행동에 체념하고 잊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억울해도 어쩌겠는가. 똥물을 뒤집어 쓰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만나면 냄새가 배기 전에 가능한 빨리 멀어지는 것이 최선이다.
현생에서 겪은 억울한 일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할 때마다 나는 카르마를 떠올린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전생의 업들을 참회하고 저 미친놈들이 현생에서, 아니면 다음 생에서라도 곱절의 고통을 겪기를 바란다. 근데 좀 억울하기는 하다. 알지도 못하는 전생의 잘못으로 현생이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