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음의 늪에서 건져 올린 것

무기력증의 쓸모

by 명건

어떤 청년이 댐 위에 올랐다. 그리고 투신해 사망했다. 그 소식을 지역 신문지 인터넷 기사로 우연히 보게 됐다. 청년은 깊은 새벽 홀로 어둑한 댐을 올라 난간 너머로 뛰어 내렸다. 친한 지인에게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자살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꽤 흔한 일이니까. 그런데 그는 나와 동갑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괜히 동류애가 느껴져 더욱 마음이 짠했다.


그 청년의 마지막 흔적은 세 문단 짜리 기사와 두 개의 추모 댓글로 남겨졌다. 핸드폰 화면을 끄고 이어폰 불륨을 높였다. 백예린 가수의 ‘bye bye my blue’가 흘러나왔다. 음악을 들으며 기억의 서랍에서 빛바랜 장면 하나를 꺼냈다. 언젠가 나도 그 장소에서 저수를 가만히 내려본 적이 있다. 흑연처럼 시꺼먼 수면이 넘실거리는 장면을.


그날 옆 집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 때문에 깊은 새벽까지 잠 못들고 있었다. 빌런을 피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도망치듯 이사온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번에는 하루종일 발 뒤꿈치로 바닥을 찧고 무거운 물건을 바닥에 세게 내려놓는 이웃을 만났다. 양 쪽 귀에 보라색 이어 플러그를 끼웠지만 소용없었다. ‘쿵'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뛰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침대에서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귀마개를 빼자 옆 집 남자가 문을 닫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어둑한 방의 윤곽이 날카롭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독방에 갇힌 기분이었다. 한참을 가만히 허공을 바라봤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이 점점 작아져 나를 짓누를 것만 같았다. 담배와 차 키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한적한 도로 위를 달려 댐에 도착했다.


마음이 곤궁하면 갈증이 났다. 가끔은 물을 마셔도 도통 마음 속 천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러면 훌쩍 떠났다. 지평선 너머로 펼쳐진 넘실거림, 바다에 은은하게 반사되는 달빛 같은 것들이 그리워서. 늦은 밤이라도 바다에 가거나 저수지로 향했다. 웅장한 물의 향연을 보면 마음이 느슨해진다. 거대한 자연 앞 내 존재가 작게 느껴지는 순간이 좋다. 자아가 작아지면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도 사소하게 느껴진다.


난간 너머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내 마음도 저렇게 시꺼멓게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일도, 인간관계도, 연애도, 건강도, 가족도. 무엇하나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이 타들어 가는데, 이제는 층간 소음까지 괴롭혔다. 하늘 위 누군가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시험하는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하얀 손수건을 집어 던지고 항복을 외치고 싶은 날의 연속이었다.


막막한 마음에 차라리 눈물이라도 터져 나오면 시원하렸만 눈물샘 마저 말라 버렸다. 그렇게 연거푸 담배를 피워대니 시꺼멓던 저수가 새까맣게 보였다. 그러자 암흑같던 그 곳이 따뜻한 요람처럼 느껴졌다. 거대한 무언가 두 팔을 벌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가만히 블랙홀을 내려다 봤다. 쉼이 필요해. 이제는 더이상 방법이 없어. 내 마음이 그렇게 외쳤다.




동이 튼 후에야 집에 돌아왔다. 여느 날처럼 씻고 옷을 챙겨 입고 출근 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동료들에게 반갑게 출근 인사를 하고 보통 날과 다름 없는 하루를 보냈다. 나는 살았다. 검은 유혹을 뿌리치고 이렇게 살아 남았다. 남겨질 이들에 대한 걱정 때문도, 꿈과 희망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도 아니었다. 무기력 덕분이다.


그때의 나는 너무나 지쳐서 아주 사소한 의사 결정조차 미루고 있었다. 설거지 거리는 높이 쌓여 있었고, 방은 어질러져 있으며, 무얼 먹을지 결정하는 것조차 귀찮아 자주 끼니를 걸렀다. 점심 메뉴도 결정하지 못하던 내게 삶과 죽음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여력이 있을리 없었다.


그래서 그냥 살아버리기로 했다. 삶은 익숙하고 죽음은 낯설었으니까. 죽음은 언제든 선택할 수 있으니 지금은 삶이라는 선택지를 연장해 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사실 지금도 나를 둘러 싼 상황들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옆 집은 여전히 늦은 새벽까지 쿵쿵 거리고, 인간 관계는 여전히 버겁고, 출근 역시 여전히 스트레스다. 자주 끼니를 거르고, 설거지를 내일로 미룬다. 그럼에도 살아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작정이다.


이상한 일이다. 나를 깊은 구렁텅이에 빠트린 무기력증이 오히려 나를 살게한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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