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며 걸었다

주저하는 이들에게

by 명건

가을이 가까워지자 해가 점점 짧아졌다. 퇴근 후 밖으로 나오니 벌써 어둑했다. 자동차로 도시 외곽을 달리며 창문을 내리자, 귀뚜라미 소리가 잔잔하게 스며들었다. 여름이 멀어져간다. 지겹던 불볕더위도, 시끄럽던 매미 소리도 벌써 조금 그립다. 있을 때 잘할 걸, 연인과 헤어졌을 때처럼 마음이 먹먹하다. 하지만 가을이라는 새 인연도 퍽 마음에 든다. 민트색 와이셔츠가 바람에 펄럭이며 살짝 스치는 감촉이 좋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바람에서 박하 내음이 났다.


그날 따라 일찍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친구를 불러 떠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며, 멀어지는 여름을 천천히 갈무리하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 노트북과 책 한 권을 챙겨 도보로 오 분 거리에 있는, 평소 자주 가던 조용하고 어둑한 카페로 향했다. 빌라 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졌다. 일기예보에는 비 소식이 없었다. 우산을 가지러 들어가기는 성가셔서 잠시 고민했다. ‘한두 방울 떨어지다 말겠지.’ 기상청을 너무 믿었던 실수였다.


창가에 앉아 주황색 불빛 아래 페퍼민트 차를 마시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펼쳤다. 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이지만, 주인공의 마음이 흔들릴 때 내 마음도 함께 동요하고, 그가 시련을 이겨낼 때는 나도 조금 따라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다. 눈이 아파 책을 내려놓고 인공눈물을 넣었다. 다시 눈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니, 거울 속 주황색 실루엣에 내 얼굴이 아른거렸다. 눈물 자국이 흘러내렸다. 창밖에는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 비를 맞고 싶다.’ 예상치 못한 욕망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이런 욕망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학창시절 야자를 하며 창밖을 바라볼 때, 술을 마시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잠 못 이루는 밤에도 나는 종종 우산 없이 비 오는 거리를 걷고 싶었다. 쏟아지는 빗속에 부정적인 감정이 씻겨 내려가기를 바랐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일탈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한 번도 실행으로 옮기진 못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거나, 가까운 편의점에서 일회용 우산을 사곤 했다. 남들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사실은 일탈의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 비 오는 날에도 우산을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날은 달랐다. 비를 맞는 상상을 하며 심장이 쿵쾅 뛰고, 아드레날린이 돌았다. 이미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삼키고, 생각이 많아지기 전에 가방 속 물건들을 다시 집어 넣었다. 가게 문 사이로 쏴아아하는 빗소리가 들리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처마에 튕기는 빗방울이 손끝에 닿았다. 손이 금세 축축해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산을 쓰고 지나갔지만, 그들은 내게 관심이 없었다. 그제야 마음이 가벼워졌다.


처마 밖으로 나서자, 금세 쏟아지는 빗속에 온몸이 젖고 시야가 흐려졌다. 느릿느릿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곧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명치에 막혀 있던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유년 시절로 돌아간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집에 도착해 현관에서 입고 있던 옷과 양말을 벗었다. 물기를 짜내 빨랫대에 널고,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이 몸에 닿는 감촉이 섬세하게 느껴졌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머리를 말리니 다시 멀끔해졌다. 침대에 눕자 졸음이 쏟아졌다. 느슨한 마음으로 단잠에 빠져 들었다. 오랜만에 꿈 없는 밤을 보냈다.


가끔 두려움 때문에 시도를 미루기도 한다. 오랫동안 간직한 욕망을 애써 부정하는 이유는 변화가 두렵고,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먼저 몸을 움직이면, 억눌렸던 마음이 해방되고, 단순한 즐거움이 찾아온다. 때때로, 그 순간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그 무엇보다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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