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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l 09. 2022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의 숨겨진 의미


요즘 날씨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야말로 '찜통'이다. 며칠 전만 해도 기분 나쁜 습함이 가득한 날이었다면, 이젠 더위까지 추가되었다. '단짠'이 극강의 음식 조합이라면 '덥습'은 다른 의미로 극강의 날씨 조합이라 할 수 있다.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불쾌해지는 날들이 이어지는 요즘 같은 날엔, 집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유튜브를 보며 쉬는 것 자체가 힐링이다.






다양한 콘셉트들로 촬영한 유튜브 영상들 중에서도, 나는 여행 유튜브를 즐겨보는 편이다. 예전부터 여행 자체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여행 후기를 듣는 건 좋아했다.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각자가 경험한 특별한 일들을 듣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유튜버들이 찍은 영상들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직 네가 경험해보지 않은 멋진 것들이 이 세상에 아주, 아주 많이 존재한다'라고.



하지만 모든 것엔 양면이 있듯이, 여행에도 분명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엔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난관들이 있었다.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양심 없는 택시 기사, 기상 악화로 인한 지연, 현지 치안 문제,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교통수단의 부재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문제들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경험이 풍부한 여행 유튜버들도 앞서 말한 문제들에 부딪히곤 했다. 현지인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혼잣말로 욕을 하며 분을 삭이는 모습들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영상을 보며 '만약 내가 저 상황에 처했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아마 짜증 낼 겨를도 없이, 멍하게 있는 시간이 더 길었을 것 같다.


 




재밌는 사실 하나는, 대부분의 여행 유튜버들은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가 자신 앞에 닥쳤을 때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먼저 각자 자신의 성향에 맞는 방법으로 감정을 표출했다.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한 사람과 맞서 싸우거나, 자리를 피한 후 혼잣말로 욕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전 있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후에, 기분 전환을 위한 행동을 했다. 바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숙소에서 잠을 자거나 맛있는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렀다.



물론 그들이 모든 문제에 대해 똑같이 반응한 것은 아니다. 시급한 문제에 대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며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해결을 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어쩌겠냐', '여행하다 보면 항상 이런 일은 있더라'는 말을 하며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머리를 식혔다.


 




곧바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끈질기게 매달리기보다는, 잠시 머리를 식힐 여유를 가지는 것. 사소해 보이지만 멘탈을 유지하기 위해 정말 중요한 행동이다. 살다 보면 당장 해결할 수도 없고, 피하기도 불가능한 문제에 맞닥뜨리곤 한다. 누군가는 질질 끌기 싫어서 이것을 해결하는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또 다른 사람은 이것이 자신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나 커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해결을 미뤄두기도 한다.



두 사람의 행동엔 각자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예민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내버려 두는 걸 힘들어한다. 반대로 둔감한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웬만하면 신경 쓰지 않고 그것이 저절로 해결되는 걸 바란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계속 방법을 찾다 보면 며칠 안에는 괜찮은 해결책이 나오는 편이며, 내버려 두면 저절로 사라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어떤 문제들은 아무리 방법을 찾아봐도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방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눈덩이처럼 더 커지기도 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믿었던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문제에 닥쳤을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꽤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 말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힘든 문제들이 의외로 잘 풀렸던 적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종종 사람들은 이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피할 수 없을 만큼 힘든 문제가 닥쳤는데, 어떻게 기분 좋은 상태로 있을 수 있어?"라는 식으로 말이다. 아마 뒤에 붙은 '즐겨라'라는 말을 나와는 다르게 해석한 듯하다.



여기서 '즐기라'는 말은, 기분이 나쁜데 억지로 기분좋은 척 연기하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피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 처했는데 누가 웃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다만 상황을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더라도, 그 상황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이 말을 하나의 예시를 들어 확인해보자.




당신은 SNS를 구경하다가, 집에서 30분 거리에 디저트 가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침 내일은 주말이라, 당신은 내일 그곳에 들러 맛있는 디저트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더운 더위를 뚫고 힘겹게 가게 앞에 도착한 당신은 가게 문이 굳게 닫혀있는 걸 보게 되었다. 이미 주말에도 영업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당황한 당신은, 급하게 스마트폰으로 가게가 운영하는 SNS 계정에 접속했다. 그리고 개인 사정으로 오늘만 영업을 쉬겠다는 게시글을 발견하곤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아마 당신이 짜증이 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더운 날씨를 뚫고 왔음에도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허탈감, 이런 사실을 미리 확인하지 않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 하필 자신이 온 날에 쉬는 가게에 대한 분노 등 복합적인 감정들이 섞여 화가 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화를 내도 당신은 디저트를 먹을 수 없다. 그것은 피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을 이 상황에 적용해보자. 디저트를 살 수 없다는 건 사실이니, 억지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즐겁게 집으로 가야 할까? 불가능하다. 이해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면 '즐긴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일까?



만약 내가 이 상황에 처했다면, 문이 닫힌 걸 보자마자 짜증부터 낼 것이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으로 근처에 다른 디저트 가게가 있는지 검색을 해보고, 있다면 바로 그곳으로 이동한다. 마땅한 가게가 없다면 택시를 불러 최대한 빠르게 집에 돌아가 씻고 쉬다가, 집 근처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커피와 디저트를 먹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방법이다. 적어도 가게가 문을 닫은 걸 본 순간부터 집에 가는 시간 내내 짜증내진 않는다고 장담한다.






'당장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쓸데없이 분노하지 않는다'는 게 내 원칙 중 하나이다. 물론 화를 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을 오랫동안 가져가지 않기 위해, 기분 전환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상태에서 고민을 해봤자, 잡념만 많아질 뿐 좋은 방법을 찾는 건 매우 힘들다. 그럴 바엔 차라리 감정을 싹 비워내는 게 더 낫다. 자신을 위해서도, 더 좋은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서도 말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멀쩡한 몸과 정신으로 당당히 눈앞에 닥친 문제와 맞서 싸울 준비를.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엔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다. 수학을 잘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수학자의 질문에, 상대는 '머리'라고 답한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포기한다는 그의 말에, 상대는 '노오력 이런 건 아니죠?'라고 다시 묻는다. 그러자 수학자는 노력만 하는 사람들이 머리 좋은 사람 다음으로 포기한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답이 무엇이냐고 묻는 상대에게 수학자는 답한다. 바로 '용기'라고. 그의 말에 상대는 '할 수 있다'와 같은 그런 거냐고 비꼬듯 말하자, 수학자는 그건 '객기'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제가 안 풀릴 때는 화를 내거나 포기하는 대신에, '아 이거 문제가 참 어렵구나. 내일 다시 한번 풀어봐야겠구나'라는 여유로운 마음. 그게 수학적 용기다. 그렇게 담담하니, 꿋꿋하게 하는 놈들이 결국엔 수학을 잘할 수 있는 거야."



어쩌면 피할 수 없을 때 즐기는 마음과 수학적 용기는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조금만 여유를 갖고 자신을 돌본다는 것. 그런 후에 다시 그 문제에 도전해보는 것. 그렇게 담담히, 꿋꿋하게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을 해결할만한 실력을 갖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신에게 닥친 문제도 그럴 것이다. 어떤 것을 하든 자신의 모든 걸 쏟아내기보다, 어느 정도의 여분은 남겨둔 채 지속적으로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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