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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l 27. 2022

ISTP인 내가, '인싸'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사교성이 별로 없는 편이다. 누군가와 친해지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마음을 여는데는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사회화가 되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크게 문제가 있진 않다.



나와 같은 내향형인 사람들은, 아마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혼자 있는 걸 충분히 만족하고 즐기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좀 더 여유롭고 편하게 대화하고 싶다는 것.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향형이 짙은 사람일수록 이런 고민을 한번 이상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제목에 적어놓은 것처럼 사교성이 부족하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내가, 조금 과장을 보태서 '인싸'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일주일에 2~3번은 타인과 1시간 이상 통화를 하고, 주말에는 웬만하면 약속이 잡혀 있다. 내가 먼저 연락할 때도 있지만, 상대가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내가 현재의 삶을 살게 된 계기부터 과정을, 지금부터 말해보려고 한다.





 

몇 년 전, 나는 우연한 계기로 모임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대학생이었을 때도 1학년에 동아리를 잠깐 했을 뿐 그 외에 대외활동이라곤 해본 적 없는 내게, 직장인이 된 후 모임 활동은 여러 의미로 엄청난 자극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신선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강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거기다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조차 아주 짧았다. 일주일에 하루, 그것도 약 2시간. 내게 누군가와 친해지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어느새 친해져 있었고, 이미 말을 놓거나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몇 주가 지났음에도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매번 모임을 갈 때마다 혼자라는 기분을 느낀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비참했다.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시작했으니, 마지막까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큰 변화 없이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좀 더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술도 마시면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중,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던 중, 그나마 조금 친했던 멤버 한 명이 내게 각자의 성향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당시 상담사라는 흔치 않은 일을 한 덕분에 주변에서 바람을 넣은 것도 있었지만, 아마 술기운에 좀 더 용기를 냈으리라. 어쨌든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지금까지 함께 활동을 한 멤버들 모두를 보며 각자에게 느꼈던 점을 짤막하게 말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XX 씨가 모임 활동이 끝난 후에 혼자서 다른 사람들이 앉은자리까지 정리하는 걸 봤어요. 쉽다면 쉬운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 있는 분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짧게 말을 했지만,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흘러서야 말을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분에 대한 말을 끝으로 박수소리가 들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다. 세심하다는 둥, 감동이라는 둥, 여기저기서 각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어도,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속으론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 이왕 할 거면 진작 이런 식으로 행동할걸 등등 후련하면서도 후회되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좀 더 시간이 지나, 드디어 술자리까지 마무리되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때까지도 내 안엔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남아있었다. '정말 여기서 끝내야 하는 걸까?' '이게 최선인 걸까?' 마지막이라는 환경이, 전에 없던 용기를 짜내도록 스스로를 부추겼다. 고민 끝에 그나마 한 번이라도 말을 섞어본 사람들 중에서, '친해지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던 사람들에게 휴대폰 번호를 물었다. 그렇게 번호 교환을 끝으로, 파란만장했던 내 인생 첫 번째 모임 활동은 끝이 났다.






그 후엔 어떻게 됐을까? 너무 긴 시간이 흘러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모임이 끝난 후에 번호 교환을 했던 2명의 동생과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두 번 더 같은 모임 활동을 했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추억들을 쌓을 수 있었다. 세 번째 모임 활동을 마지막으로 지금은 더 이상 모임을 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그때 알게 된 사람들과 자주 연락하고 만남을 갖고 있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나에겐 차고 넘치는 인간관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들과는 어떤 깊은 얘기라도 터놓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0대가 되어서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 내 곁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누구에게 소개하든, 기꺼이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라고 말할 수 있다.






같은 무리에 속한 사람들과 자주 통화하고 주말엔 함께 카페를 가거나 밥을 먹는 게 일상이 되다 보니,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인싸'라는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제는 내가 하도 그들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싸'에 가까운 내가, '인싸'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덕분이다. 사교성도 좋지 않고 연락도 먼저 하지 않는 내게, 기꺼이 먼저 연락하고 만나자고 말해주는 그들이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그래서 나 또한, 내가 가진 것들을 그들에게 베푸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 결국 만나는 인맥 자체는 적을지라도 타인이 나를 '인싸'처럼 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싸의 삶'이 아니겠는가. 몇 백 개의 연락처를 갖고 있는 게, 돈 많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안다는 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결국 내 몸은 하나고, 만날 수 있는 사람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말이다.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선 스스로의 마음가짐과 행동도 중요하지만,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누구인지 또한 아주 중요하다. '근묵자흑'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자신이 아무리 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그것과 반대되는 사람들을 옆에 둔다면 자신 또한 언젠가 그들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이 불만족스럽다면, 주변 인간관계를 점검해보는 시간 또한 필요하다. '인싸'든 '아싸'든 타인의 시선으로 판가름되는 삶을 살기보다 자기 자신이 만족하는 삶을 살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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