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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l 25. 2022

동정할 거면 차라리 관심 갖지 마세요


감정은 늘 이성보다 앞선다.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어떤 상황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때를 떠올리면, 과거에 자신이 느낀 감정이 사실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차릴 때가 있다. 그저 마음이 잘 맞는 친구로서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사랑'이었다는 걸. 힘들었던 과거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날이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때를 '후회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어떤 감정을 느낀 순간, 곧바로 행동하는 건 때에 따라 위험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순간 그 감정이 '무엇'이라고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게 아닐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느끼는 감정의 폭이 클수록, 객관적인 판단은 더 힘들어진다. '오른쪽으로 가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신은 왼쪽으로 걷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비슷한 감정일수록 이런 착각을 하기가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혼동하는 감정 중 하나를 말하자면, '동정'과 '사랑'이 있다. 두 감정 모두 자신에게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동정과 사랑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 둘은 전혀 다른 감정이며, 전자와 후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동정은 안쓰러움과 같다. 흔히 말하는 '측은지심'이다. 안쓰럽다는 건, 상대를 가엽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 생각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는, 상대를 나보다 '아래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동정'이라는 감정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어렸을 적에 TV를 보던 중 광고 하나가 나왔다. 할머니 혼자 어린 손자를 돌보는 내용이었다. 손자는 태어날 때부터 희귀한 병을 앓고 있었고, 아이의 부모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다. 힘들지만 손자를 위해 매일 폐지를 줍는 할머니는, 언젠가 혼자 남겨질 손자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함께 광고를 보던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런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한 거야." 나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저들을 보며 왜 우리가 '행복하다'라고 느껴야만 하는 것일까.



그땐 그 말이 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어머니는 그들을 '동정'하고 계셨다. TV 속에 등장하는 그들을 보며, 분명 안타까워하셨던 건 틀림없다. 아마 그만큼 그들이 처한 상황이 힘들다는 걸 말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불행을 기준으로, 우리가 그 사람들보다 더 풍족한 삶을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만약 우리 가족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가진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보며 "우리는 저들에 비해선 참 행복한 거야"라고 말하는 걸 상상해보라. 기분이 더러울 뿐만 아니라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지 않겠는가.






내가 신파극을 싫어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보고 있으면 그들을 동정하는 감정이, 나도 모르게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 싫다. 특히 TV에서 가난한 사람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을 '동정할 수밖에 없는' 연출을 하는 걸 보면 짜증을 넘어 화가 난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일반 사람들보다 조금 부자유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왜 그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려내야만 하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방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의 성공을 보며 기쁜 마음이 들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외국 영화 중 '아이 엠 샘'이라는 영화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인 '샘'은 지적 장애로 7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딸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비록 자신의 지적 장애로 인해 딸의 양육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도움과 자신의 노력으로 마침내 그는 예전처럼 딸과 함께 살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결코 동정이라는 싸구려 감정 때문에 운 건 아니었다. 샘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보여준 진정한 사랑, 그 사랑을 뒷받침하는 절실한 노력이 감동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동정과 사랑, 그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그 차이가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동정하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상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



동정이라는 감정은 상대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데서 온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자신보다 상황이 더 나아진다면 어떨까? 더 이상 상대를 동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빌 게이츠를 동정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할수록, 자괴감만 더욱 느껴질 것이다. 처음엔 동정하는 마음 때문에 챙겨주더라도, 시간이 지나 상대가 자신보다 여러 측면에서 우월해진다면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동정과는 달리, 애초에 관계의 상하가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잘되면 잘될수록 자신 또한 기뻐질 것이다. 즉 나와 상대가 어떤 환경에 처해있든 간에, 처음과 비슷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고,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을 쓰는 게 아깝지 않게 느껴진다.






결국 상대방의 처지에 따라 관계가 자꾸만 변화한다면, 그것은 동정이다. 반대로 나의 처지에 따라 상대가 나를 다르게 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 주변의 누군가가 힘들어 보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힘들수록, 손을 내미는 것조차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잠시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다가 뺄 거라면, 처음부터 잡아주지 않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정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책임 없는 한순간의 애정이 상대에겐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동정할 거라면, 차라리 관심조차 갖지 마라. 주변 사람들과 싸구려 동정이 아닌, 진심이 담긴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를 맺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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