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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l 30. 2022

간절히 원했지만, 원하는 게 아닐지도 몰라


"당신은 무엇을 할 때 행복합니까?"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당신은 대답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가.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매 순간 살아가고 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해서 돈을 벌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데이트를 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선 이런 것들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 당신이 지금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정말로 당신이 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글에선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이 일치하는지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좋은 가족'이란 어떤 가족이라고 생각하는가? 누가 봐도 화목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가족. 서로 연락도 자주 하며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 보통 이런 모습을 가진 가족을 '좋은 가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현실에선 그런 가족들이 드물다. 자녀들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한 집에 살더라도 다 같이 밥 먹는 시간을 맞추는 것조차 힘들다. 가족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성향에 따라서도 분위기는 달라진다. 외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수록 서로 장난도 치고 모여있는 시간 또한 많을 것이다. 반대로 가족들 중 내향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많다면 어떨까. 억지로 모이는 것보다는 필요한 말만 하고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결국 '좋은 가족'은 가족 개개인의 생활 패턴, 성향 등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대부분이 내향적인 성향을 갖고 있고, 한 명만이 외향적인 성향을 가진 가족이 있다고 해보자. 외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가족을 사랑하기에, 항상 함께 있고 싶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주말이면 다 같이 밖으로 놀러 가거나 외식을 하는 등의 일상을 꿈꿀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구성원들은 어떨까. 가족이기에 어느 정도는 그런 것들을 하더라도 좋아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매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반대로 개인 시간이 줄어든다면, 타고난 성향상 그러한 상황 자체가 힘에 부칠 수도 있다. 성향 차이로 인해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르다 보니 때로는 다투는 일도 종종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함께 있고 싶은데, 나머지 사람들은 혼자 있고 싶어 한다. 이런 상황을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



이 가족을, 앞서 말한 일반적인 '좋은 가족'의 모습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닮고 싶은 가족의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가족은 '좋지 않은 가족'인 걸까?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이 아니면, 화목한 모습의 가족이 아니라면 '가족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물론 아니다. 그저 '저런 가족의 형태'도 있는 것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학교 전공을 살려 원하던 회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회사 생활을 해보니, 남들이 말하는 좋은 회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월급도 적고 복지 또한 다른 회사에 비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쓰레기이며, 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는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껴 그 사람과 연인이 되었다고 해보자. 처음엔 마냥 좋고 행복했던 둘 사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어긋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똑같은 주제로 대화를 해도 생각이 다르다 보니 다툼이 일어날 때가 처음보다 많아졌다. '내가 바랬던 연애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점차 이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커진다. 과연 이 두 사람은 헤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문제를, 때때로 지나치게 과대 해석하기도 한다.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툼, 회사를 다니며 느끼는 회의감,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등등. 이럴 때면 평소 자신이 상상하면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며, 자신에게 일어나는 문제들 때문에 자신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동정하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한다.



당신은 왜 불행한 걸까. 지금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때문에? 물론 그런 문제들도 있다. 희귀한 병에 걸려 갑작스레 시한부 판정을 받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신체 일부분 또는 대부분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면 아마 누구라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들 외에,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은 성격이 약간 다르다. 앞서 말한 가족, 회사, 연인 간의 문제들은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에 속한다. 그리고 만약 이런 문제들로 스트레스를 자주, 많이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문제 때문이 아니다. 그 문제를 겪는 사람이 바라는 이상이 너무나 높고 확고하며, 자신이 처한 현실과 높은 이상을 자꾸만 비교하기 때문에 힘들다는 게 내 생각이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일반 사람들보다 예민한 성격,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기도 한다.






누구나 바라는 이상은 있다. "연봉이 높고 복지가 좋으면서 워라벨이 확실하게 지켜지는 회사",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되,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가족", "준수한 외모와 체형을 가지고 있으며, 문제가 생겨도 대화로 맞춰갈 수 있는 다정한 연인"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이상'이다.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결코 쉽게 이루지지는 않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이상들을 현실이 되길 지나치게 바랄수록, 때로는 자신의 삶이 고달파진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건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들 안에서도 우선순위가 존재하며, 그것들 중에서 무엇을 우위에 둬야 자기가 행복한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



회사 생활로 예를 들어보자. 앞서 말했듯 우리 모두가 바라는 회사란, "연봉이 높고 복지가 좋으면서 워라벨이 확실하게 지켜지는 곳"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전부 이뤄지는 회사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우선순위를 나눠보는 것이다. '연봉', '복지', '워라벨'. 이 3가지 중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보고, 충족되는 회사에 들어가는 게 그나마 덜 스트레스를 받는 방법이 된다.



만약 자신은 '워라벨'이 중요한 사람인데, '연봉'이 높은 회사에서 일을 한다고 해보자. 친구들에 비해 훨씬 많은 돈을 벌더라도, 그 사람은 그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 커리어에 대한 열망, 더 높은 진급 등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연봉 높은 회사'를 원한다는 이유 때문에 회사를 다닌다면 그 사람의 일상은 어떨까. 확실한 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상을 살수록, 삶이 고달파지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주변 사람들과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하다 보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살면서 어떻게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요? 싫지만 해야 하는 것도 있는 거죠." 물론 맞는 말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에게 나는 묻는다. 다른 선택지가 있음에도 굳이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서 살 필요는 없지 않냐고.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하기 싫은 것을 참는 것과,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는 채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건 다르다.


 




본인이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것을 정말 자신의 의지로 원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나'에 대해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남들도 이렇게 사니까', '다들 이게 맞다고 하니까'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지도,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하겠지'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행복하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도,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도 본질은 모두 같다. 행복하고 싶으니까. 단지 그것뿐이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는 제각각이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것을 자신이 갖고 있더라도, 정작 자신은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고 행복한 것을 먼저 찾아야 한다.



이 말은 현실을 아예 배제한 채, 단지 행복만을 좇으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란다는 이유 때문에 거기서 억지로 행복을 찾지 말고, 남 눈치 보지 말고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해보면 알 것이다. 행복이라는 게 정말 별 거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 모두 진정한 자신의 행복을 찾기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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