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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Aug 05. 2022

상처받은 당신 곁에 남은 사람이 바라는 단 하나


절대로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을까? 흉터는 남겠지만, 아물지 않는 상처란 건 없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준다'라는 말처럼, 베이거나 다친 상처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새살이 돋게 된다. 오늘 이 글은 과거에 받은 상처로 인해, 지금도 아파하고 있을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작년이었던가, 심리를 다루는 책을 읽던 중 흥미로운 내용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다 다치게 되면, 뇌에선 '아픔'을 느끼는 특정한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재밌는 건 '마음이 아플 때'도 육체적인 아픔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분이 동일하게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즉, 몸이 다쳤을 때뿐만 아니라 심적으로 힘들 때도 우리의 뇌는 이것을 똑같은 '아픔'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살다 보면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아픔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는다. 대부분의 경우엔 그렇게 하면 통증이 훨씬 완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아픈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아무리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쳐도, 몸만 지칠 뿐 느껴지는 고통은 별반 다르지 않을 때도 있다.



종종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건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네가 마음이 약해서 그런 거라는 둥,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거라는 둥 '의지'만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의도는 짐작이 간다. 분명히 상대가 힘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분명 놓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대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눈앞에 힘들어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힘들고 싶어서 힘들겠는가. 상처받은 경험을 겪고 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그렇다 치자. 바로 어제 또는 오늘 힘든 일이 있었던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다는 건, 아주 무례한 언행이다. 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이 공감할 수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마라. 그냥 묵묵하게 들어주기만 해도 상대는 고마워할 것이다.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영역의 상처는 함부로 공감할 수도, 위로해 줄 수도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처럼 정신적인 아픔은 명확한 치료약도, 치료법도 없다. 가장 빠르면서도 유일한 방법은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아물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곁에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믿어주는 사람들의 존재는, 상처를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빨라지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종종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가 큰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 곁에 머무른다고 해보자. 이것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예상치 못한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큰 안정감을 주지만, 그 사람 곁에 머무르기로 한 사람에겐 커다란 리스크를 동반하기도 한다. 과거의 상처로부터 생긴 트라우마와 그로 인해 생겨난 각종 증상들은, 그의 곁에 있기로 결심한 사람조차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신의 상처 때문에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만든다는 죄책감은, 그들이 과거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참 안타깝고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앞서 말한 상황에 놓여있을지 모른다. 차마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못할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가는 당신. 분명 당신의 아픔은 아주 크고 괴롭고 낫기 힘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짐작하는 것조차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런 당신의 아픔을 어쩌다 알게 되고, 그것을 알고도 당신 곁에 남기로 결정한 사람이 있는가? 굳이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이미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말로도 그 고마움을 표현할 수 없어, "고마워"라는 짧은 말 한마디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적이 있을 것이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들로 인해 그 사람에게 주는 상처들에 대해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당신에게 나는 한 가지 묻고 싶다. 당신이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인해 생각하지 못했던 것.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 하는 것. '그 사람이 당신에게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아마도 당신의 아픔을 알고도 곁에 남아 있는 그 사람은, 당신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고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곁에 있는 게 절대로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 바라는 것은 오직 단 하나, "당신이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고,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의욕에 불타며, 해냈을 때 기뻐하는 모습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무언가에 기뻐 활짝 웃는 얼굴. 그거면 충분하다.



그들은 당신에게 바랄 것이다. 당신의 행동들로 그들이 받을 상처를 당신이 걱정하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 상처 주지 않을 만큼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미안한 마음에 당신의 곁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닌, 그들 때문 에라도 빨리 상처를 극복해야겠다는 말을.



당신이 받은 상처로 인해, 당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을 떠나보내지 않길 바란다. 당신의 모든 걸 알면서도 당신을 도우려고 할 때 당신이 해야 할 것은 그들을 밀어내는 것도, 그들에게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여전히 내 곁에 남아있음을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그들과 함께 보낼 행복한 일상을 상상하고 마음을 돌봐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단지 힘들다는 이유로 상처받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다. 상처받은 사람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할 마음이 없다고' 느낄 때, 그들은 심한 실망감을 느끼고 떠날 준비를 한다.



혹여나 자신이 드라마나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된 듯한 감정과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장 버리기를 권한다. 스스로 어떻게 나아갈지 생각하고, 두 발로 꼿꼿이 서라. 그리고 걸어라. 상처가 아물기 위해선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과거 회상, 자책, 후회는 당신의 상처를 더욱 덧나게만 할 뿐이다. 지금 당신의 곁에서 당신을 믿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위해 오늘 하루 내딛을 당신의 힘찬 한 발자국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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