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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Aug 07. 2022

'최선'과 '적당히', 그 사이 어디쯤


사람들은 해야 할 것이 생기면, 처음엔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앞서 그것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자신이 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거나 힘에 부치면 나름의 타협점을 찾으려 한다. 당신은 최선과 적당히, 그중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최선인가, 적당히인가. 아니면 그 이하 어딘가에 있는가.






나는 사람들이 내키지 않는 것을 할 때 '최선을 다한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떠올려보라. 우리는 집에서 쉴 때 '최선을 다해' 쉬지 않는다. 유튜브를 볼 때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러한 행동들은 최선을 다할 정도로 큰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힘을 내서 무언가를 해야만 할 때 최선을 다하며, 보통은 하기 싫은 것을 할 때 의식적으로 힘을 쓰고 노력을 하게 된다.



다만 사람마다 '최선의 기준'은 매우 상이하다. 누군가의 최선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적당히'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게으른 것처럼' 비칠 때도 있다. 똑같이 최선을 다하는데 왜 이런 격차가 발생하는 것일까?






이런 격차는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경험이라는 것은, '극한의 상황에 처했던 경험'이다. 사람은 타고난 성격이나 가정환경, 경제력 등에 따라 각종 고난과 시련을 겪는다. 때로는 피하고 싶어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하루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힘든 문제들 말이다.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마주치고 스스로 해결해본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의 한계를 깨며 앞으로 나아간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이 했던 과거의 '최선'이, 시간이 흘러 현재는 '적당한 힘만으로도' 비슷한 크기의 문제가 수월하게 해결되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아주 힘든 상황을 겪지 못했거나, 가족 또는 타인의 도움으로 보다 쉽게 문제를 해결해 온 사람들도 있다. 이들 또한 문제가 생기면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이들은 살면서 엄청나게 괴로웠던 적이 없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거나 특정 기간 동안 노력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문제를 회피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행동을 보인다. 문제가 발생한 상황 자체를 외면하거나 포기해버리며, 믿을만한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누구나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의 문제는 자신에게 일어난 대부분의 갈등 상황에서, 너무 빨리 '회피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힘든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만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매사에 최선을 다했기에, 문제를 회피하려는 사람도 존재한다. 흔히 '번아웃'이라 불리는 현상을 겪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번아웃(burn out)은 단어 그대로 '다 타서 없어지다'란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일을 하면서 극심한 육체적 및 정신적 피로를 느껴, 일에서 오는 성취감과 열정이 모두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앞서 언급한 부류의 사람과는 달리, '매사에 최선을 다했기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 모든 일을 대할 때 최선을 다하다 보니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상태다.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이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번아웃을 경험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여 자신의 한계를 체감한 이들이다.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한 번 포기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점을 체감한 자들의 포기는 '끝'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번아웃이라는 증상이 무서운 것이다.


 




누군가는 지금보다 더 '노력하라고'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적당히 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과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나는 두 사람의 말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 노력하라'라고 말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이뤘기에 노력의 가치를 믿을 것이다. 반면에 적당히 해도 괜찮다는 사람들은, 노력 대비 성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런 말을 할 것이다.   



'노력한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노력했다는 걸 기억하라'. 우리는 모두 자신이 가진 성향과 에너지를 활용해, 무언가를 이루고자 노력한다. 노력한 사람들 중 일부는 결과를 얻지만, 또 다른 일부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단지 결과만 놓고 보면 결과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결과를 얻은 사람보다 노력하지 않았다고 보인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여행 계획을 짜고, 여행지에서 묵을 숙소를 예약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시간을 들인 끝에, 이 사람은 마침내 다음 달이면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그런데 갑자기 세계적인 전염병이 유행했고, 예약한 티켓은 취소되었다. 공항이 폐쇄되었고 이 사람이 들인 노력은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 사람은 원했던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다. 이 사람은 노력하지 않은 것일까? 물론 아니다. 노력과는 별개로 운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다. 노력이란 건 성공할 확률을 높여줄 뿐, 예상치 못한 상황 전부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노력했다, 하지 않았다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 사람은 '삶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옳다고 믿으며 살아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자신에게 부족한 행동을 해보면, 반대편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를 돌이켜봤을 때 자신이 게으른 편이라면, 무언가를 할 때 평소보다 더 시간과 에너지를 써보는 연습을 해보면 좋다. 그 결과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때도 생길 것이며, '노력의 가치'를 믿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반대로 자신이 지나치게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의식적으로 약간 힘을 빼고 해 보는 것도 좋다. 좀 더 여유를 갖고 무언가를 대해보는 것이다. 결과지상주의, 지나친 예민함, 타인에 대한 엄격한 기준 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갉아먹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스스로 가지고 있는 확신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내가 옳다고 강하게 믿고 있는 기준이, 타인에겐 쓸데없는 신념으로 보일 수도 있다. 주관 없이 남들에게 휘둘리라는 말이 아니라, 가끔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너무 최선을 다하진 마라. 그렇다고 노력의 가치를 포기하지도 마라. 최선과 적당히, 그 사이 어디쯤에만 있어도 이미 당신은 잘하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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