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을 가면 '자존감'을 다루는 책들이 굉장히 많다.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도 자존감과 관련된 문구나 문장들이 많이 보인다. 감성적인 사진과 함께, '언제나 자신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글들이 꽤나 많다. 나는 이런 말들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겐 '정신승리'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글은 '쓸데없는 자존감 올리기가 가진 위험'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회사에서 일을 그르치거나, 연인과 메신저를 하던 중 사소한 말다툼이 일어날 때도 있다.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친구를 만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더 큰 짜증이 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이상한 건가'
이런 생각들은 처음엔 머릿속을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갈 뿐이다. 설거지를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라져 버린다. 문제는 하루에 스트레스를 받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이런 생각들 또한 잦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행동을 보인다. 상처를 치유하려고 하거나, 상처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먼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쉽게 쓰는 방법은 '소비'다. 돈을 사용해 자신이 원했던 무언가를 가짐으로써, 거기에서 오는 만족감을 느끼는 것 말이다. 우리가 퇴근 후 치킨과 맥주를 뜯거나, 평소 갖고 싶었던 옷이나 신발을 사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또 다른 방법은 '애정'이다.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나 동물을 곁에 둠으로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길 바라는 부류도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방법들은 꽤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런 효과들은 단기적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여전히 그대로기 때문이다. 주기적인 디스크로 고생하는 사람이, 평소 운동도 하지 않고 자세 또한 교정하지 않는다고 해보자. 통증으로 고생할 때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나아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이유로 또다시 병원에 방문할 것이다. 결국 스트레스받는 원인 자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계속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는 데는 그럴만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원인을 해결한다는 게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인을 몰라서 해결하지 못하는 것보다,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금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보다 더 나은 대안이 딱히 없는 경우 말이다.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비슷하게 행동한다. 바로 '나에겐 잘못이 없다'라고 믿는 것이다.
회사에서, 친구 사이에서, 연인 관계에서, 가족들 간에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안다. 그래서 때론 타인에게 모진 말을 하면서도 눈치를 보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가 있다. 타인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당신은,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줄 무언가가 필요해진다.
별생각 없이 인스타그램에 들어간 당신은, 무언가에 시선이 고정된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엔 마치 현재 내 상황을 보듬어주는 듯한 말이 적혀 있다.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 사람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와 같은 글들 말이다. 당신은 이런 말들을 보며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생각한다. 내 생각과 행동이 옳았음을.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만이라도 나 자신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이러한 말들은 힘들어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들엔 한 가지 중대한 오류가 있다. 자신이 겪은 상황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인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바람을 피운 사람도,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힌 범법자들 또한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과연 그런 세상이 좋은 세상일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객관화'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상대방은 내게 무슨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한 객관화 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해'와 같은 자기 합리화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이러한 자기 합리화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래로 쌓은 성과 마찬가지다. 겉보기만 그럴 뿐, 실상은 작은 자극에도 금이 가기 쉬운 '가짜 자존감'인 것이다.
쓸데없는 자존감을 채우려 하지 말자. 스스로가 좀 못난 사람이면 어떤가. 그것을 인정하면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면 평생을 제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까내리는 것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 그런 사람들처럼 말이다. 살면서 자기 합리화를 할 수도 있다. 다만 평소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자기 객관화를 충분히 잘하고 있는 사람이 어쩌다 합리화를 하는 것과, 매번 합리화를 하는 사람이 또 합리화를 하는 건 다르니까 말이다.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떳떳한, 진짜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