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부모님과 만나지 않기로 했다

by Quat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하지만 현재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가족이 몇이나 될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얽매인 채 남보다 못한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만나야 할까, 아니면 만나지 말아야 할까. 오늘 글에선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나는 어렸을 적 꽤 조용한 성격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보다, 집에서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타고난 개인주의적인 성향은 부모님 중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반대로 어머니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이셨다.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걸 좋아하고, 함께 무언가를 하는 걸 즐기는 성향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였다. 문제는 아버지가 개인주의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이 매우 강하셨다는 것이었다. 주도적으로 이끄는 건 싫어하지만, 결과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내다보니 어머니와의 마찰이 잦은 편이었다.



부모님과의 다툼이 일어나면 나는 누나에게 많이 의지하곤 했다. 하지만 누나도 그것이 힘들었던 걸까. 20살이 되던 해, 누나는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와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을 싸서 서울로 떠났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관심은 나에게 쏠리게 되었다. 아버지는 대부분 내게 무관심한 분이셨으며, 반대로 어머니는 내게 너무나 지나친 관심을 보이셨다. 전혀 다른 두 성향 사이에서 나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살아가는 선택을 했다.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무언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모든 결정에서 나는 배제되어 있었으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정을 하면 나는 그것에 따르는 게 당연시되어 있었다. 성인이 된 후엔 이런 문제로 인해 부모님과 몇 번의 다툼이 있긴 했으나,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의견을 말했음에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어느 새부터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하고 싶은 말들은 속에 자꾸 쌓여가고 있었지만 이것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다. 좋지 않은 두 분 사이에서 나까지 기름을 붓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러나 집에 있는 시간은 마냥 내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내 방에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집 안의 모든 공간을 통틀어, 내 방만큼 편한 공간은 없었으니까. 물론 방문은 언제나 굳게 닫힌 상태였다.






그렇게 20대를 흘려보낸 후, 30대가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하면서 조금씩 내 안에서 무언가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 전만 해도 나는 다투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따로 나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성인이 된 후부터 항상 해왔지만, '준비가 되면 나가야지'라는 생각만 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나와는 달리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하며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말하는 건 힘들지만, 입을 다물고 사는 게 더 힘들다'라고 답했다. 그들의 모습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부딪히는 게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말하는 그런 사람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작년 겨울이 되었다. 집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출근길에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집을 나갈까?' 전에도 몇 번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항상 생각에서 멈춰있던 내가, 인터넷으로 부동산 매물을 찾고 있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부모님께 먼저 알린다고 한들, 좋은 소리를 들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2주 동안 퇴근하고 나서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부모님께는 평소보다 늦게 들어온 것에 대해 '약속이 있었다'며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마침내 괜찮은 곳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계약까지 마치고 난 후에야, 부모님께 이러한 사실을 말씀드렸다. 사실 통보와 다름없었다.






의외로 부모님은 이러한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다. 아마 예상은 하셨으리라. 그래도 걱정되셨는지 이것저것 질문을 하셨고, 나는 최대한 많이 알아본 척을 하며(실제로 많이 찾아보기도 했다)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삿짐이라고 해봤자 옷과 이불, 책 몇 권 정도가 전부였다. 2주 후, 차에 짐을 싣고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했다. 제대로 된 첫 독립의 기쁨을 만끽하며, 그날 나는 아주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혼자 산 지 이제 약 반년 정도가 되었다. 아버지는 내게 먼저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으셨다. 어머니는 종종 전화나 카톡을 하시곤 한다. 대부분 언제 집에 오냐는 말씀이셨다. 반년이라는 기간 동안 내가 집에 간 횟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너무하다면 너무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거의 평생을 함께 부모님과 살다가, 이제야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는 중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본가가 그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는 부모와 자식, 서로를 위해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정'이라는 고유의 문화가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이것은 좋게 작용하기도 하지만, 특히 가족에게 있어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성인이 된 자식에게까지 불필요한 책임감을 느끼게 만든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정신적인 성숙을 방해한다.



'부모님'도 자신만의 삶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닌 자신만의 이름이 있으며, 생을 다할 때까지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비록 당신들의 시선에서 자식이란 존재는 항상 부족해 보일 수 있다. 넉넉해 보일지라도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픈 마음이 드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자식이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다. 인간은 실패하고 넘어지고 상처받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운다. '서로를 놓아주고 보내주는 것도 관심이다'라는 노래 가사처럼, 실패하는 자식들의 모습까지 믿어주는 것이 자식의 입장에서도 '우리 부모님은 정말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자식들 또한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막연하게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된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말이 아닌 행동이다. '믿어라'라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믿을만한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부모님은 자연스럽게 자식들을 믿게 된다. 기본적인 경제력을 갖고, 주말엔 친구나 연인을 만나는 시간만 보내더라도 충분하다. 만약 자신이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고 있음에도 부모님이 지나치게 걱정한다면, 참지 말고 당당하게 얘기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때로는 입장이 다르고 다투게 되더라도, 그러한 과정으로 서로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하나 더 알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당분간 부모님과 만나지 않기로 한 내 결정은, 결코 부모님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거리를 두고 각자의 삶에 충실해져야,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가 혹여나 다칠까 집 밖에도 못 나가게 하는 것이 과연 사랑일까. 그것을 받는 사람은 정말 그런 배려를 사랑이라고 생각할까. 만약 그러한 사랑에 익숙해진 사람이, 밖에 나가서 타인을 대할 때도 그렇게 사랑받으려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취급을 받을까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사랑과 구속은 전혀 다르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다치지 않을 거라 믿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이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진심으로 믿어주며 사랑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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