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하다 보면 생기는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 바로 솔직하지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과 마음에 없지만 듣기엔 좋은 말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타고난 성향에 따라 이 둘 중 좀 더 한쪽으로 치우친 말들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정반대의 말을 내뱉는 경우도 생긴다. 당신은 어떤 쪽에 속하는 편인가? 오늘은 '듣기 좋은 말과 솔직한 말'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과거의 나는 '솔직함'보단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걸 선호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어차피 말해봤자 듣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고, 두 번째는 '때로는 조언보다 더욱 효과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듣기 좋은 말'을 선호한 이유 : - 1. 말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첫 번째 이유에 대해 말해보자면, 숱한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거나, 문제가 생긴 사람들은 믿을만한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곤 한다. 하지만 조언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네 말이 맞다" "정말 그렇더라"라고 앞에선 말하지만, 정작 뒤돌아서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편한 방식으로 행동하곤 했다. 그리곤 또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너무 힘들다'며 호소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런 경우가 반복되자,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돕는 걸 포기했다. 이후부턴 그들이 듣고 싶은 말들을 해주기 시작했다. "넌 잘하고 있어"라던가 "지금처럼만 하면 돼"라는 뉘앙스의 말들을 해주었다. 이런 말들을 들은 상대방은 말로는 '아니야'라고 하지만, 꽤 만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자기 방식이 옳다는 걸 타인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거였구나'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너무나 쉽게 자신의 힘듦을 주변 이들에게 알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듣기 좋은 말'을 선호한 이유 - 2. 조언보다 뛰어난 효과
개중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과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 정말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보다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가족과 친구들을 많이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기에, 때로는 의도치 않게 실수를 할 때가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굳이 조언을 하고 싶진 않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언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실수를 했을 때 누구보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좀 더 신경 쓸걸', '왜 그걸 확인하지 못했지'라며 스스로 자책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나 또한 내가 한 실수에 대해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기에, 오히려 조언이나 잔소리를 들으면 주눅이 들곤 한다. 거기서 좀 더 선을 넘는 잔소리를 들으면, 자책이 '분노'로 변할 때도 있었다. '나도 내가 잘못한 거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같은 소리 좀 그만하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수에 대한 객관적인 지적과 앞으로의 개선책 정도라면 기쁘게 들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지적과 잔소리는 나를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실수를 했을 때야말로 그 사람의 평소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남들이 본 그 사람의 행동들이 실수를 덮어주기도 하는 반면, 오히려 작은 실수를 더욱 크게 부풀리게 만들기도 한다. 솔직하게 말해, 평소 잘해왔고 성실한 사람이 실수를 했을 때 "그러니까 제대로 확인했어야지!"라는 잔소리를 반복하는 건 썩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실수에 대한 따끔한 지적 한 번과 앞으로의 개선책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지금도 잘하고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신경 쓰자"라는 말까지 해준다면, 그 사람은 전보다 더욱 책임감을 갖고 행동할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나는 듣기 좋은 말을 솔직한 말보다 선호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하게 말하는 비중이 전보다 훨씬 늘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내가 전보다 '솔직하게 말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언급해보겠다.
'솔직하게 말하는' 이유 - 1. 마음이 편하다
마음이 편하다는 것. 이것이 솔직하게 말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듣기 좋은 말'을 하다 보면, 내가 느끼는 바와 다른 말들을 해야 할 때가 많다. 별로인데 "괜찮다"라고 말하기도 하며, 잘하고 있지 않은데 "잘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누군가를 대할 때 항상 100% 진심을 내보일 순 없지만, 과거엔 무언가에 대해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하는 게 꽤나 어려웠다.
듣기 좋은 말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눈치가 빨라야 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하기 위해선 지금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성향인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듣기 좋은 말을 할 때도 얻을 수 있는 좋은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다 보니, '굳이 안 봐도 되는 눈치를 볼 때'가 점점 더 생겨났다. 쓸데없는 눈치를 보다 보니 행동에 제약이 생길 때가 많았고, 점점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적어졌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굳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다. 원하는 것을 말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자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이 생기면서 무엇을 하든 '잘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고, 점차 모든 상황들이 좋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다. 지나친 솔직함은 무례함이 되기도 하니까. 다만 솔직하게 말할 때의 가장 좋은 점은,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수 없다. 결국 당신이 어떤 사람을 만나던,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간에 상처받지 않고 싶다면, 당신 또한 어느 정도의 솔직함을 갖춰야만 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는' 이유 - 2. 좋은 것도 당당하게
솔직하다고 해서 꼭 듣기 싫은 말만 하는 건 아니다. 솔직하다는 건 말 그대로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기분이 나쁠 때도 솔직하게 "기분이 나쁘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반대로 기분이 좋을 때도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전보다 솔직하게 타인을 대하면서 느끼는 점 중 하나는, 자신이 상대를 보며 느끼는 좋은 감정을 편하게 말할 때 상대방 또한 기뻐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그 사람이 생각하는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서 말해주는 걸 좋아한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그것을 제어하는 게 힘들다는 고민을 가진 사람에겐, 오히려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어렵고 나 또한 그것이 부럽다는 칭찬을 하는 편이다.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는 사람에겐, 그 사람의 책임감과 성실함에 대해 칭찬을 하곤 한다.
누군가에게 이런 칭찬을 들으면 오글거리고 부끄러운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낯간지럽다는 이유로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는 의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지며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는 나 또한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나는 거짓말을 잘 못해', '난 빈 말을 잘 못해'라는 사람들을 보면, 스스로 느끼는 불쾌한 기분이나 부정적인 감정들을 참지 못한다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정말 그들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거짓말과 빈 말을 못 한다면, 좋은 것도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왜 자신이 기분이 나쁜 건 솔직하게 말하면서, 타인에 대한 칭찬을 말할 땐 솔직하지 못하냐는 것이다.정말로 솔직하다면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 말할 줄 아는 게 진정으로 솔직한 것 아닐까.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듣기 좋은 말'과 '솔직한 말'에 대해 풀어보았다. 어떤 쪽을 선택하든, 장단점은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들엔 정답이 없다. 단지 우리가 '정답'이라는 생각을 하고 바라보기에, 옳은 것과 틀린 것처럼 보일 뿐이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과거엔 듣기 좋은 말을 했었지만, 현재는 솔직하게 말하려고 한다. 이것은 듣기 좋은 말이 나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나의 성향과 이제껏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봤을 때, 현재는 솔직하게 말하는 게 더 편하다고 느끼는 것뿐이다. 이 글을 통해 무엇이 더 좋다, 별로다라고 말할 의도는 없음을 다시 한번 밝힌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기억했으면 한다. 당신이 어떤 대화법이 익숙하든 간에,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면 분명 단점이 커질 가능성은 존재한다.내 경험상 듣기 좋은 말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가 많았고, 솔직하게 말하면 타인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았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두 가지 모두를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손보다, 양손잡이일 때 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더 여유롭고 편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