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 우리는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름대로 정의 내린다. 좋은 추억들이 많았던 사람은, 사랑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아픈 경험들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사랑에 대해 크게 중요하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글에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한 부분'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뜬 영상들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아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한 유튜브 썸네일에 귀여운 아기가 보여서 화면을 터치했다. 한국과 독일, 국제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외국인 아내의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를 처음으로 만나는 내용이었다.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귀여운 증손녀를 바라보는 노부부의 눈빛은 아주 다정했다. 바로 옆에 앉은 증조할아버지는 그녀가 간식을 먹고 신나 하자, 간식을 더 주고 싶어 했다. 간식 통을 가져온 그는, 아직 너무 어려 말이 통하지 않는 손녀지만 다정하게 말했다. "한 번에 하나씩, 너무 욕심내지 말거라." 신기하게도 증손녀는 마치 할아버지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앙증맞은 고사리 손으로 과자를 하나만 움켜쥐었다. "옳지. 잘했단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인자하게 말했다.
간식을 다 먹은 손녀가 이번엔 두 개를 집자, 그는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지만 조금 더 단호하게 말했다. "한 개씩은 얼마든지 괜찮아. 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이는 안 돼." 손녀가 자꾸만 과자를 더 집으려 하자, 그는 손녀 앞에 놓인 간식 통을 당겨 조금 멀리 두었다. 그래도 결국 손녀가 두 개를 집자 "곤란한데"라고 말하면서도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과자를 다 먹은 손녀가 이번엔 장난감을 갖고 놀기 시작했다. 조금 큰 컵과, 그보다 작은 컵이 그녀 앞에 있었고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작은 컵을 큰 컵 안에 넣어보자고 말했다.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이 '아직은 힘들 것 같다'라고 장난스레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할 수 있단다"라며 손녀에게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녀는 작은 컵을 큰 컵 안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것을 본 할아버지는 말했다. "할아버지는 네가 해낼 줄 알았단다. 살면서 '할 수 없다'는 말은 하지 말거라."
사랑은 어찌 보면 '믿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수록,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더욱 믿게 된다. 또한 그 사람이 나의 믿음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을 때 사랑은 무너지기 쉬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자신을 믿어주길 바란다.
믿음이란 자신의 행동과 비례하는 특징이 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 "앞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게"라고 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어줄까? 상대가 자신을 믿어주길 바란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그 사람이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상대에게 믿음을 준다는 보장도 없다.'무엇을 믿느냐'의 차이에 따라, 자신이 아무리 믿음직스럽게 행동한다고 해도 상대가 믿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식이 선생님이 되길 바라는 부모와, 가수가 꿈인 아이가 있는 가족이 있다고 해보자. 자식의 입장에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노래 연습을 한들, 그 모습이 부모에게는 믿음직스럽게 보일까?
서로 사랑하더라도, 이런 차이로 인해 우리는 그것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상대가 나를 사랑해서 한 행동이 내겐 구속과 잔소리로 느껴지기도 하며, 반대로도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앞서 내가 본 영상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는 과자를 한 번에 많이 집으려는 손녀를 말렸다. 욕심을 부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일 수도, 너무 많이 과자를 먹어 혹여나 아플까 걱정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손녀의 입장에서는 할아버지의 그런 행동이 자신을 막으려는 듯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손녀를 사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손녀가 아직 어려서, 컵을 다른 컵 안에 넣는 게 힘들다고 말했을 때도 그는 그녀를 믿었다. 마침내 그녀가 그것을 해냈을 때도,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거봐, 내가 말했지!"라며 자신이 한 말을 입증한 것에 기뻐한 것이 아니라, "네가 해낼 줄 알았다"라고 그녀를 추켜세웠다.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너는 왜 날 사랑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건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라. 100번 중 99번을 당신을 웃게 해 준 사람에게 1번의 실수를 트집 잡아 "왜 이렇게밖에 못해?"라고 한다면, 이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진정으로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평소에 그 사람이 나를 위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떠올려보라.서운한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실수인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인지를 생각해보라.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한다. 당신은 실수 따위 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방금 실수를 저질렀다.
모든 걸 이해해주는 모습만이 사랑은 아니다. 때로는 그 사람을 위해 쓴소리를 할 수도 있는 사람이 정말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당신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말이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타인의 말과 상관없이 그 사람을 위한 말을 하게 된다. 모두가 "괜찮다"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할 수 있고, 모두가 "할 수 없다"라고 말할 때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내가 본 영상 속에서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건넨 말들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