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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Sep 10. 2022

KTX든 무궁화호든, 결국 똑같은 '기차'일뿐이다


최근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누군갈 좋아하면 그 사람을 더 많이 보고 싶은데, 상대방은 그런 제가 부담스럽나 봐요." 그 말을 들은 나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상대방의 마음 또한 이해가 갔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마음을 여는 속도'가 달라, 결국 이어지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마음을 여는 속도의 차이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저 문장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인연'이 있음을 말해준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인연이 되기 위해선 앞서 말한 마음을 여는 속도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면 그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요. 사랑하는데 어떻게 그걸 참을 수 있나요? 보고 싶으면 봐야 해요."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정말 사랑하더라도 처음부터 제 모든 걸 보여주고 싶진 않아요. 천천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의 말 모두 일리가 있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감정은 같지만, 사랑에 대한 입장은 저마다 다른 것이 당연하니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누구나 사랑에 대해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 그런데 결국 사랑이란 건 무엇인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방, 둘 사이에서 싹트는 감정이 사랑이다. 즉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 또한 사랑에 대해 고유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사랑을 밀어붙이는 것만이 정답일까? 아니면 상대방의 사랑만을 존중해주어야 할까?






누군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려 한다. 그 사람은 아마 KTX를 탈 수도 있고, 무궁화호를 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기차를 선택할지는 그가 가진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목적지까지 빠르게 도달하는 것을 원한다면 KTX를 선호할 것이고, 창 밖 풍경을 보며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무궁화호 기차표를 끊을 것이다.



KTX를 선호한다고 해서, 무궁화호를 타는 사람을 보고 '굳이 그런 느린 기차를 왜 타냐며' 비난할 순 없다. 반대로 무궁화호를 타는 사람 또한 KTX를 타는 사람에게 '낭만이 없다느니', '여유가 없다느니'라며 핀잔을 줄 수 없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기차가 여전히 운행을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즉 각자 가진 가치가 다를 뿐, 분명히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 함께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고 해보자. 서로의 성향에 대해 비난하며 자신의 말이 옳음을 주장한다면, 그들은 함께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번갈아 가며 서로 다른 종류의 기차를 탑승하는 것이다. KTX를 선호하는 사람이 무궁화호를 탄다면, 조금은 답답할지 몰라도 전에 느끼지 못한 여유와 창 밖의 풍경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무궁화호를 선호하는 사람이 KTX를 탄다면,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해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마음을 여는 속도도 비슷하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자신이 빠르게 마음을 연다고 해서, 상대방 또한 그래주길 바라는 것은 어찌 보면 이기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천천히 마음을 여는 편이라 상대방이 마냥 그것을 기다려주길 바라는 것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번번이 진심을 거절당한다는 것이,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썩 유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로 서로를 좋아하는데 성향이 달라 고민이라면, 어느 정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마음을 여는 속도가 느리다면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며, 반대라면 자신 또한 조금 더 마음을 여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노력을 상대에게 말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지만, 널 사랑하기 때문에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이다.



나는 상대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상대 또한 그에 맞는 노력을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자신의 성향과는 달리 상대에게 맞춰주고 있고 그것을 말했음에도, 상대가 별반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방식만을 고수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랑에 빠져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는 정말 흔하디 흔한 일 중 하나기 때문이다.


 




KTX든 무궁화호든, 종류가 다를 뿐 결국 똑같은 기차다. 마음을 여는 속도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마음을 열든, 천천히 마음을 열든 결국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그런데 속도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넌 왜 날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할수록,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말이다. 그렇다고 진심을 보이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표현하되, 상대가 부담스러워하거나 싫어하는 부분을 어느 정도는 배려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면 상대 또한 자신을 어떤 식으로 배려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아야 한다. 일방적인 배려는 언제나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되니까 말이다.



인연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인연이 찾아오길 바래선 안된다. 인연이 될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사람을 붙잡는 노력을 해야 하고 상대 또한 그래야 비로소 인연이 되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해야 하고, 지식을 쌓고 싶다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처럼, 사랑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맞춰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당신의 인연을 쉽게 흘려보내는 일이 없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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