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아지는 것'을 기피하는 사람들을 위해

by Quat


어떤 영화를 보든, 어떤 책을 읽든, 어떤 음악을 듣든 공통점이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시대를 거쳐 '명작'이라 평가받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혹평을 하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상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고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첫 느낌 그대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오늘은 '무언가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것'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결말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이 갈리는 경우가 있다.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현실적인 결말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열린 결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보다 확실한 결말이 나며 끝이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나는 열린 결말로 끝나는 영화도 선호하는 편이다. 시작부터 끝이 날 때까지 보고 느낀 영화의 스토리를 통해, 나름의 결말을 상상해본다는 건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오히려 확실하게 결과가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열린 결말이 싫다고 말한 사람들 중 누군가는, 그것을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보고 난 뒤에 생각이 많아지는 게 싫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언가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 확실히 유쾌하다고 보기엔 힘든 게 사실이다. 생각이 많아진다는 건, 그것에 대해 깊게 파고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한 대상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는 건 그것이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뿐만이 아닌, 부정적인 영향도 동시에 끼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당신이 친구나 연인과의 관계, 또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에 대해 생각이 많아질 때를 떠올려보라. '내가 그 사람과 계속 연락을 해야 할까?'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부정적일 순 있지만, 그것이 꼭 당신에게 나쁜 영향만을 주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정말 당신이 그 대상에게 좋지 않은 영향만을 받았다면 생각이 많아질 필요조차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걸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나는 '평소보다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해보자. 당신은 그 사람과의 관계를 보다 가깝게 만들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신경을 쓸 것이다. 상대방의 연락 하나에 마음이 들떴다가, 가라앉았다가를 반복할 것이다. 용기를 내어 상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거절을 당했다면, 하루 종일 심란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감정과 이성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질수록, 우리는 평소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다. 반대로 생각이 많아지게 되면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마치 시소와 비슷해 보인다. 한쪽이 더욱 높이 점프할수록, 밟는 힘이 더욱 커져 반대편에 위치한 쪽 또한 그만큼의 높이로 솟구치게 되는 것과 같다. 즉, '감정'과 '이성' 중 한쪽만 불안정해져도, 다른 한쪽까지 높은 확률도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이 많아지는 것'을 경계해야만 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생각이 많아지게 되면 평소보다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런데 이것을 거꾸로 해석하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힘든 사람은 평소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운동도 이와 비슷하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운동을 하게 되면, 잘 쓰지 않는 근육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쉽게 지치고 피곤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오랜만에 운동을 한 후 다음날 아침, 당신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온몸 여기저기가 저리고 쑤시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잘만 움직이던 팔다리가, 마치 내 몸에 조립된 것처럼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운동은 우리 몸에 해롭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생각을 많이, 깊게 하는 것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우리는 평소 자신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나는 나에 대해 잘 알아"라는 생각이다. 사람은 본능적인 자기 방어로 인해 스스로를 좀 더 '좋게 보려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실제 자신의 모습보다 자신을 더 '괜찮고 멋진 사람'으로 인식하곤 한다. 그러다 그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이 오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데, '자기가 보는 자신의 모습'과 '타인이 인식하는 자신의 모습'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 시간은 고통스럽고 괴로워진다. 실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받아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생각이 많아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 모두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럴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할 때 어색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어떤 부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던 사람일수록, 생각을 깊게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것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한 방법은 있다. 하지만 누구를 만나든,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방법만을 고수한다면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때로는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평소 해보지 않던 말이나 행동을 해보는 건 좋은 경험이 된다. 자신이 고민하기보단 바로 행동에 옮기는 타입이라면, 행동하기 전 조금 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기 전 고민만 하고 실천하는 것이 어려운 타입이라면, 때로는 눈 딱 감고 도전해보는 것이다.



타고난 자신의 성향을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다. 자신이 무언가를 능숙하게 한다는 건, 그것으로 인한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니까. 대신 상황에 따라 자신의 성향과 어느 정도 반대되는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 된다. 생각이 많아지는 것 또한 그렇다. 당신이 무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면서 몰랐던 타인과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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