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2021년 최고의 밈이었던 말을 아는가? '오히려 좋아'와 '가보자고'. 어떤 상황이 닥치든, 속으로 이 두 문장을 되뇌면 긍정적인 기운이 샘솟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히려 좋아'는 평소에도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며, 카카오톡 프로필에도 등록해놓을 정도로 나 자신의 기본적인 태도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것과 정반대의 내용을 말해보려 한다. 때때로 우리는 다양한 사람, 상황에 처했을 때 '전혀 좋지 않아'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우리는 단호해져야 할까. 오늘 글에선 '당신에게 필요한 단호한 태도'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바야흐로 '자유로움'이 극대화된 사회가 되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인간이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며'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아야만' 하는 시대인 것처럼 보인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인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급부상하며 이를 다룬 책이나 미디어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타인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조현병', '분노조절장애', 'PTSD'와 같은 사람의 심리와 관련된 증상들이 전보다 훨씬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데 오히려 힘들어하고 상처받는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피해자는 늘어나는데 가해자는 없는, 묘한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늘어남에도 할 수 있는 것은 줄어들고 있으며, 무수히 많은 분야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음에도 정작 기본적인 것조차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이 세상의 모든 것엔 '적당히'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지나치게 많아지게 되면 예상치 못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호흡을 하기 위해 필수적인 산소도 많아지면 '산소 중독' 현상이 일어나며, 부족해지면 호흡이 곤란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지나치게 부족하면 '무정하다', '정이 없다'라고 말하고, 사랑이 너무나 지나치면 '스토킹'과 같은 범죄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적당함이라는 것은 삶의 모든 부분과 연관되어 있다. 물론 한쪽으로 치우칠수록, 당신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단점 또한 커지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얻는 것이 더욱 많다고 생각한다면 버틸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회사를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업무 또는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력과 그로부터 오는 마음의 안정감 및 여유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적당히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글쎄'다. '적당히'라는 기준이 굉장히 모호하기도 하고, 사람마다 기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적당히 살 수 없게 만드는 사람과 상황이 매 순간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오히려 좋아'를 외친다고 한들, 오히려 좋다고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당신 곁에 가득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긍정적인 마음가짐도 한두 번이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람과 상황이 매일같이 일어나는데도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긍정적인 마음가짐.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 물론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상황을 부드럽게 풀어가는 대처법들이라는 것에 한계가 있다. 이러한 방법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효과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당신은 학생이다. 당신과 같은 반엔, 학교에서도 아주 유명한 '꼴통'인 녀석이 있다. 만약 당신과 그 녀석이 시비가 붙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아무리 좋게 상황을 풀기 위해 설명을 잘해줘도, 그 녀석은 당신에게 심한 욕설을 할 뿐이다. 기분이 나쁜 당신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려 해도, 그 녀석은 실실 비웃으며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은 듯한 태도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폭력은 좋지 않다. 욕은 하면 안 된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지인을 통해, 자신의 눈으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심한 욕설을 내뱉는 것을 보고 듣는다. 이상과 현실은 이렇듯 엄청난 괴리감을 보이곤 한다.
누군가를 먼저 때릴 필요까진 없다. 다만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 당신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면, 그것에 맞서 싸울 줄 알아야 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맞서 싸워야만 하는 상황에서조차 싸우지 않는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중요하다. 하지만 매사, 모든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지나친 긍정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즉, 당신이 마땅히 분노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도 분노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아마 그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은 편안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로 인해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마땅히 분노해야 할 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으면, 상대는 당신을 우습게 볼 것이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당신에게 했던 무례한 행동들의 강도가 서서히 높아져 갈 것이다. 시간이 지나 당신의 긍정적인 마음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당신은 그때서야 '아차'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후이다. 그 정도쯤 되면 당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양자택일이다. 화를 참으며 상대와 관계를 이어나가거나, 상대와 아예 관계를 끝거나.
처음 당신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을 때,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화가 났다는 것을 어필했다면 상대는 다음부터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신이 스스로의 감정을 상대가 알아차릴 수 있게 표출했고, 상대가 그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상대가 당신이 기분 나쁠만한 행동을 한 건, 상대방의 잘못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다.
때론 단호해져라. 마치 칼처럼. 그 사람이 당신과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마나 되었든 간에,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만약 그 사람이 알고 지낸 시간만큼 당신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애초에 당신이 그토록 서운함을 느낄 말과 행동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겐 저마다의 '적당히'가 있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의 실수들은 용납한다. 하지만 '적당히'를 넘어선 실수들에 대해서는 당신도 단호해져야만 한다. 상처를 받았음에도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넘어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당신이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그 사람도 당신을 좋아했다면 그렇게 행동했을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