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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Oct 02. 2022

개미들의 '죽음의 나선', 당신의 선택은?


언제부턴가 우리의 삶은 마치 '게임'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각 게임마다 정해진 스토리가 있고, 그것에 맞춰 플레이를 하다 보면 엔딩을 맞이하는 것처럼, 인생 또한 무언가 정해진 흐름이 생겨버린 듯하다. 성인이 되기 전까진 열심히 공부를 해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고, 괜찮은 기업에 들어가 돈을 모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다. 저마다 다른 외향, 다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비슷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부분이 이런 삶을 사는 건 왜일까? 이런 삶이 꼭 정답이기 때문인 걸까? 오늘은 '굳이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한가로운 오후, 침대에 누워 여느 날처럼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알고리즘에 뜬 영상 하나가 있었다. 영상 속 썸네일엔 '개미들이 떼죽음 당하는 공포의 소용돌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영상을 터치했다.



영상 속 내용은 이러했다. 개미는 특유의 페로몬을 통해 동료와 소통을 하거나 집으로 가는 길을 찾는데, 어떤 이유로 집으로 향하는 페로몬이 지워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길을 찾던 개미들이 서로의 페로몬을 '집으로 돌아가는 페로몬'으로 착각해 원형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앤트 밀" 또는 "죽음의 나선"이라고 부른다. "죽음의 나선"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 현상이 시작되면 힘이 빠져 죽을 때까지 끊임없는 행진을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상은 '부에 관련된 허황된 정보에 빠져 움직이는 사람들도 개미와 비슷해 보이는 건 자신만의 착각인가'라는 멘트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꽤나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요즘 대화를 하다보면, 사람들이 '재테크'와 관련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너도나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더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수집하곤 한다.



나 또한 돈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깊게 공감한다. 하지만 '돈이 많으면 좋다'라는 생각엔 의문이 든다. 내 기준에서 돈이 필요한 이유는 '없을 때의 불행'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돈이 많으면 지금보다 갖고 싶은 것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기에,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삶을 돌이켜보면, 나는 물욕이 많은 편은 아니다. 즉, 내가 행복을 느끼기 위한 돈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 정도 있으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가"라고 물어보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대부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라고 말하곤 했다. 이어서 "평소 무엇을 할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면, 사람마다 대답은 달랐다. 누군가는 '집에서 쉴 때'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갖고 싶은 물건을 살 때'라고 말했다.



"그럼 그 정도의 돈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한데, 왜 굳이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싶어 해?"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대답을 하려다 멈칫하고 생각에 빠지곤 했다. 그러고 나서 각자 자신이 생각한 이유를 들려주곤 했다. 더 많은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등등 사람마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니까.






다만 우리는 무언가를 할 때, '왜 그것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깊은 고찰을 갖는 시간을 종종 가질 필요가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저 '남들도 하니까'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그것을 하기 위해 투자하곤 한다. 돈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학교를 다녀야만 하는 이유,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일을 하는 이유, 만나고 있는 사람과 연애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 준비하고 있는 자격증을 따야만 하는 이유 등 말이다.



자신만의 삶의 기준이 없으면 매 순간 행동의 이유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어떨 때는 '내가 하고 싶어서'이지만, 또 어떤 때는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가 돼버린다. 물론 누구나 자신이 정한 삶의 기준대로만 살진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기준이 있되 종종 거기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과, 아예 기준 없이 행동하는 건 다르다는 것이다.



가치관이나 기준이 없이 살아갈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신과 불안정'이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순간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면,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행동을 할 때가 잦아진다. 예를 들어 회사 생활을 할 때, 직장 상사가 자신에게 어렵고 복잡한 요구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자신의 기분이 좋을 때는 군말 없이 그 지시에 따르고, 몸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왜 제가 그걸 해야 하죠?"라는 식으로 반응한다면 상대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점차 자신의 삶을 살기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남들은 어떻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게 되고, 점점 타인이 살아가는 삶의 흐름에 자신을 맞추기 시작한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막연히 좋아 보이고, 남들이 싫어한다고 하면 괜히 별로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고 싶은 게 있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찮으면, '남들도 다 별로라고 하는데 해봤자 재미없겠지'라며 해보지도 않은 채 포기하는 일이 잦아지게 된다.



앞서 말한 '앤트 밀' 현상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페로몬만을 쫓아가며 "이것만 따라가면 집이 나타날 거야"라고 생각하는 개미들과,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이렇게 하면 좋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엇이 다른가. 과거부터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믿어왔던 사회적 통념들 중,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떠올려보라.






남들에게 좋은 것이 꼭 당신에게도 좋을 거란 보장은 없다. 반대로 남들이 재미없다고 말하거나 맛이 없다고 말한 것들이, 의외로 당신에게 잘 맞을 수도 있다. 결국 무엇이 되었든 직접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이 겪은 경험담이나 후기는 어디까지나 참고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고스란히 당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될 수는 없다.



당신이 해보지 않은 경험에 대해 지나치게 조언하는 사람들은, 조금은 무시하며 살아도 괜찮다. 결국 그들 또한 자신에게 과한 조언을 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남들의 말을 듣고 해보지 않은 채 후회하나, 일단 해본 뒤에 후회를 하나 결과는 마찬가지다. 적어도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해본 뒤에 느낀 경험과 감정은, 추후 또 다른 시도를 할 때 좋은 밑거름이 될 테니까 말이다. '남들처럼'이라는 말에 빠져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선택을 하며 살아갈지, 나선에서 빠져나와 당신만의 삶을 살아갈지는 오로지 당신의 선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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