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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Oct 23. 2022

"당신만의 불꽃"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디즈니 영화 중 '소울'을 아는가? 피아니스트로 성공을 꿈꾸던 한 남자가 길을 걷던 중 맨홀에 빠져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보고 나면 삶의 꿈이나 목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오늘은 "어떤 삶을 가치 있는 삶이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유튜브, SNS 등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보면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열정을 갖고 무언가에 임하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라', '끝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여라'와 같은 뉘앙스의 말들 말이다. 그런 영상을 보고 나면 동기 부여가 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현재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 나 자신이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 또한 한때 그런 영상을 보고 나면 막연한 고양감을 느끼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감정 말이다. 단 1분, 1초라도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함께, 게으르게 살았단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를 알차게 보낸 뒤, 다음날 밀려오는 피곤함을 느끼며 '어제 열심히 살았으니 오늘 하루 정돈 조금 쉬어가도 되겠지'라고 자기 위안을 하며 원래 삶으로 되돌아가는 날 또한 많았다. 나뿐만 아니라 이 글을 본 사람들 또한 한 번씩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변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건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위한 행동이 일회성이나 짧게 끝난다면, 과연 이것을 의미 있게 볼 수 있는 것일까? 변하기 위해 행동했다는 것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면 의미는 조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 '소울'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 중 하나는,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불꽃"이 있다고 말한 점이었다. 누군가에겐 음악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운동이, 다른 이에겐 글쓰기가 자신만의 불꽃이 되기도 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영혼에 새겨진 이 불꽃을, 각자의 삶을 살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찾고 그것을 알아간다는 것. 누구나 타고나면서 주어진 재능이 다른 것 또한 이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자신만의 불꽃"이 삶의 목적이자 이유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에게, 영화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꽃'이란 결코 삶의 목적이 아니라고.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점을 가질 것이다. "그럼 도대체 불꽃이란 게 뭔데?" 영화에선 끝날 때까지 불꽃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그대로를 말하자면, '불꽃'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기보단 "내릴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그 의미가 상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생, 사랑, 꿈 등 추상적인 것을 한 명의 사람, 하나의 매체가 명확하게 정의를 내린다고 해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만약 '불꽃'을 누군가의 삶의 목적이자 이유라고 정의 내린다면, 한 가지 큰 오류가 발생한다. 바로 현재 세상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 중 자신이 원하는 꿈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설명하기가 곤란해진다는 점이다. 본인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을 뭐라고 해야 할까? 또한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것을 이룬 후에도 불의의 사건이나 사고에 휘말려,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 또한 존재한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운동선수를 꿈꾸던 사람이, 한순간의 실수로 다리를 다쳐 선수 생활이 불가능해졌다고 해보자. 이 사람의 삶의 목적은 이제 없는 것일까? 매일 끔찍했던 그날을 잊기 위해 노력하고, 하루하루를 그저 살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불꽃을 단순히 삶의 목적으로 정의하게 되면, 앞서 예시를 든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비참해지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쯤엔 주인공이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무대에서 연주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평소 꿈꿔왔고 그렇게 원하던 것임에도, 공연이 끝난 뒤 주인공은 왠지 모를 허무함을 느낀다. 주인공이 그러한 고민을 함께 공연했던 사람에게 털어놓자 그녀는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아기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다가가 말했어. "전 바다라고 불리는 걸 찾고 있어요." "바다라고?"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어. "그건 네가 지금 있는 장소란다." "여기라고요?" 어린 물고기가 말했지. "이건 물이에요. 제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요!"



힘들게 고생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수중에 넣었음에도, 그다지 기쁘지 않을 때가 있다. 이것만 할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고, 시험에 합격하고, 목표로 했던 회사에 입사하고, 마음에 둔 사람과 연애를 하더라도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이뤘을 때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이 정말 자신이 원하던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가며 그것에 몰두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답은 뭘까? 그것은 나도, 당신도 알 수 없다. 생각만큼 원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고, 원하던 것이지만 그것을 이루기까지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고되다 보니 심신이 지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상황, 성향, 꿈을 이루기까지 있었던 일들 등 모든 것들을 고려해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어떤 삶을 가치 있다고 할 수 있는지는 본인에게 달려 있다. 자신이 어디에 가치를 두는지, 그것을 하며 얼마나 행복을 느끼는지, 그것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는 많은 돈을 벌어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모는 것이 목표겠지만, 또 다른 사람에겐 햇살이 좋은 날에 커피를 마시며 산책을 하는 여유가 있는 삶이 목표일 수도 있다.



지금 당신이 목표로 하는 것이 없더라도,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게 있는 상태라고 해서, 곁에 있는 것들을 모두 배제한 채 그것만 보고 달려가는 것 또한 조금은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삶이란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목표가 뚜렷할수록 그것을 향해 가는 길 또한 명확하지만, 그 길이 무너지면 가장 당황하고 좌절하기 쉬운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삶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지 마라. 그렇다고 너무나 낙관적인 생각을 하지 않길 바란다. 지금 당신이 매일 하루에 하고 있는 것, 현재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다 보면 그것을 이룰 수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이룬다고 해서 삶이 끝나진 않는다.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삶이 끝나진 않는다. 결국 당신이 원하던 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 그 말은 즉, 우리에겐 자신의 불꽃이 무엇인지 평생 고민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남은 주말, 현재 자신의 삶이 무의미다고 느끼고 있다면 영화 '소울'을 보며 자신의 불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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