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uat Oct 24. 2022

화낼만한 일에 화를 내라


사람마다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감정이든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장 느끼는 감정을 드러내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전자든 후자든 각자만의 장단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오늘은 "순간적으로 느끼는 화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주말을 맞아 밀린 집안일을 하고 푹 쉬던 중, 저녁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섰다. 요즘 회사일도 바쁜 편인 데다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 탓에 웬만하면 든든한 한 끼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때마침 집 근처에 김밥과 여러 식사류를 파는 곳을 본 기억이 나서, 그곳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결정했다.



금방 도착한 가게 안은 한적했다. 거의 식사를 끝마친 손님 한 명과 이제 막 들어온 나, 안쪽에서 설거지를 하고 계신 가게 주인 분이 전부였다. 5~60대 정도 돼 보이시는 아주머니께서는 조금은 요란스레 설거지를 하고 계시면서 방금 들어온 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계셨다. "제육덮밥 하나랑 갈비 만두 하나 주세요." 내 말에 아주머니께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시며 말씀하셨다. "뭐라고예?"



재차 같은 말을 했음에도, 아주머니께서는 여전히 잘 들리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계셨다. 한 번 더 말을 전달한 후에야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시고는, 다시 설거지에 집중하셨다. 나는 살짝 언짢은 기분을 느끼며 적당히 빈자리에 앉았다. '설거지를 잠깐만 멈추셨어도 굳이 여러 번 얘기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설거지를 마치고 나온 아주머니는 나를 보시더니 툭 한 마디를 던지셨다. "계산 먼저 합시다." 나는 되물었다. "계산이요?" "응, 계산." 그러더니 입구 앞에 있는 포스기로 걸어간 뒤, 내가 주문한 메뉴를 누르고 계셨다. 뭐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불쾌함이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가게들의 특성상 음식이 금방 나온다는 걸 알기에, 빨리 밥을 먹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계산을 마쳤다.






계산이 끝난 후 아주머니는 곧바로 주방을 가셔서 식사 준비를 하셨고, 나는 음식이 조리되는 소리를 들으며 곧 먹게 될 저녁밥 생각에 다시 즐거워졌다. 몇 분도 되지 않아 밑반찬과 함께,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제육덮밥 한 접시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곧이어 나올 갈비만두 또한 기대하며 그렇게 저녁 식사를 시작하는데, 또 다른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셨다.



"김밥 6줄이요." 손님의 주문에,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셨다. 밥을 먹으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그 모습을 보는데, 아주머니의 걸음걸이가 일반 사람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 보였다. 마치 한쪽 다리를 삔 사람이 걷는 것처럼, 왼쪽 발이 땅에 닿는 시간이 오른쪽 발보다 훨씬 더 짧았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시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여전히 식사에 열중했다.



김밥을 주문한 손님과 아주머니는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듯했다.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아주머니는 김밥 재료를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꺼내셨고, 손님 또한 팔짱을 낀 채로 그것을 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그 사이 제육덮밥은 절반 이상 사라져 있었고 주문한 갈비 만두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손님과 대화를 하며 김밥 6줄을 만들고 계셨다.

 





'지금 바로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비슷한 가게에서 똑같은 주문을 여러 번 해본 적이 있기에, 만두가 지금까지 조리가 안 될 경우는 없었다. 아주머니께서 조리를 하고 나서 깜빡하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앞선 일들 때문에 지금 얘기를 하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섞인 채로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래, 어차피 2~3분이면 김밥은 완성될 거고 이미 시간이 늦어진 건 분명하지. 지금 말해봤자 아주머니 마음만 급해지실 거고. 그냥 김밥 포장이 다 끝나면 말해야겠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채 나는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잠시 후 포장이 끝나고 계산이 끝난 뒤, 나는 아주머니께 말을 꺼냈다. "아주머니, 저 아까 주문한 갈비 만두는 언제 나오나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시며 아까보다 눈이 2배는 커진 표정을 지으셨다. "아이고, 내가 깜박했네." 그리고는 급하게 주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안에서 혼잣말로 말씀하시는 목소리가 들렸다. 혼잣말을 들어보니, 찜기에서 만두를 꺼내 접시에 옮겨 담으시고는 새로 오신 손님을 맞이하느라 깜박하신 것 같았다. "만두가 다 식어서 우짜노." 작은 종지에 간장을 붓고, 만두 위에 깨를 뿌리시며 연신 나를 쳐다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아주머니를 보니 괜히 나 또한 죄송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 만두 좋아해서 식어도 잘 먹습니다."



남은 제육덮밥과 식은 갈비만두를 먹고 나서 아주머니께 잘 먹었다고 인사를 드리자, 아주머니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시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셨다. 나 또한 다시 한번 괜찮다고 말씀을 드린 후 가게 밖으로 나왔다. 처음 가게에 들어왔을 때 느낀 불쾌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만약 아까 내가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아주머니께 신경질적으로 말을 꺼냈다면 어땠을까. 물론 훨씬 더 빨리 음식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준에선 고작 몇 분 더 음식을 빨리 받기 위해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훨씬 더 컸다. 음식 가격이 그리 비싼 것도 아니고, 굳이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마저 밥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살면서 화를 내야 할 때 내지 않아 손해를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화를 내야 할 때'가 별 것 아닌 경우들 또한 많았다. 천 원, 몇 백 원 정도를 아끼기 위해 누군가와 얼굴을 붉히며 싸우고 싶진 않았다. 만 원도 되지 않는 금액과 평화로운 감정 상태를 맞바꾸기엔 도저히 등가교환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을 보면 조금이라도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피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작은 것들임에도, 그것을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어필해 사과를 받아내려는 사람들. 과연 그들은 손해를 보기 싫은 것일까,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나 또한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얘기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말을 해야 하는 기준을 어느 정도로 정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일상이 크게 달라진다고도 생각한다. 아주 작은 것에도 자신이 '피해를 받는다'라고 생각해버리면 무엇을 하든 간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화낼만한 일이더라도 그저 넘어가 주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다. 이것은 상대를 위한 것도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라는 게 더욱 크다. 만약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에게만 좋지 않은 일이 훨씬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신에게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별생각 없이 넘길 수 있을만한 일들을 당신이 크게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얼마나 익숙하게 다루는지에 따라 당신의 하루가 결정된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결코 당신이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오롯이 당신에게 달려있다. 이 말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 당신이 감정을 드러냈을 때 벌어질 결과에 대한 예측, 부정적인 상황이 펼쳐졌을 때 스스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화를 낼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잊지 마라. 화가 난다고 해서 바로 화를 내는 건 어린 아이지, 결코 어른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만의 불꽃"은 무엇입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