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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Oct 29. 2022

우리는 스스로에게 솔직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자기 자신에 대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며 자신하는 모습들이 정말 본인이라고 확신하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진정한 나'일까, 아니면 '내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나'일까. 오늘은 "스스로에 대한 솔직한 인정"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요즘 들어 더욱 느끼는 점 중 하나는,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가 생각보다 훨씬 쓸데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쉽게 들통난다는 점" 때문이다.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을 예의 주시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관찰하며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 과정에서 상대가 자신이 했던 말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한다던가,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언행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상대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행동에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는데 자부심을 갖지만, 비슷한 성향을 가진 타인 또한 자신을 보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진짜가 아닌 '나'를 연기한다는 건, 언젠가는 들통날 수밖에 없다. 시기의 차이만이 있을 뿐 진정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쿨한 척, 멋진 척, 어른스러운 척 등 '척'이란 것 자체의 의미란 결국 자신이 되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동경을 뜻한다. 누군가가 연기하는 '척'을 당신이 눈치챌 수 있는 것처럼, 당신의 '척' 또한 눈치챌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를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소모되는 에너지의 크기"이다. 예를 들어 내향적인 사람이 억지로 외향적인 사람인 척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더욱 많이 가지려 할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서도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서로의 SNS 계정을 공유할 것이다. 과연 이 사람은 이러한 행동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자신의 발이 작은 게 콤플렉스여서, 일부러 사이즈가 큰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하루에 얼마만큼의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평소 걷는 거리의 절반조차 걷지 못한 채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닌,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 또한 이와 비슷하다.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채 하루 종일 걷는 것처럼,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으로 행동한다는 것도 커다란 에너지 소모와 피로감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내향적인 사람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외향적인 성향이 되었다고 해보자.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외향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에도 분명 좋지 않을 때는 존재한다. 즉,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더라도 스스로 느끼는 단점은 항상 존재한다. 결국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이미지 관리를 한다고 해도 원래 자신의 성향이 아니기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클뿐더러, 원하는 모습이 된다고 해도 어떤 순간이 오면 여전히 단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자신의 장점에 집중하며, 상황에 따라 나오는 단점을 어느 정도까지만 극복하는 것이 더욱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이미지 관리를 할 생각도, 하지도 않는 편이다. 해봤자 어차피 들통날 일을 시작하고 싶지도 않고, 차라리 관리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하기 위해 쏟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스스로의 단점까지 사랑하라는 말은 아니다. '남에게 좋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닌,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이 느꼈을 때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괜찮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 자신이 별로라고 느껴질까 봐 스스로를 바꾸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러 번 말하지만 결과가 같다고 해서 과정까지 같지는 않다. "스스로를 바꾼다"라는 행위는 같지만, 행위의 목적이 '자기만족'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 되면 삶이 흔들리게 된다.



당신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어떤 삶을 살고 있든 간에 그것은 오로지 당신의 선택이다. 또한 당신의 선택으로 인해 스스로 짊어져야 할 고통 또한 당신이 감내해야만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그것을 인정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당신이 누구를 만나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조금 별로면 어떤가. 결국 그것 또한 당신의 모습 중 하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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