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가장 비겁하고 부끄러웠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태어나면서부터 성인군자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로 인한 결과에 책임을 지는 연습을 하며 전보다 성숙해진다. 각자의 기준에서 싫어하는 행동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오늘은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치사한 짓"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나는 드라마를 즐겨 보진 않는다. 하지만 유튜브를 통해 요즘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드라마가 어떤 것인지, 그 드라마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는 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쉬던 중에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 나온 한 에피소드를 보게 되었다.
내가 본 에피소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 영화감독이 있었다. 그는 과거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천재'라고 추앙받았을 정도로 재능 있는 감독이었다. 그러다 그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영화 한 편을 찍게 되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시나리오를 읽을 때만 해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를 찍으면 찍을수록 자신의 시나리오가 별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한 여배우에게 화살을 돌리기로 말이다. 자신의 시나리오가 별로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그는 영화를 찍는 내내 여배우에게 연기를 왜 그렇게밖에 못하냐며 핀잔을 주고 화를 낸다. 결국 영화는 중간에 엎어지게 되고, 여배우는 자신의 연기력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되며, 영화감독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다가 영화계를 떠나게 된다.
시간이 흘러 그는 자신처럼 천재로 칭송받는 한 후배가, 그 여배우와 함께 촬영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후배의 촬영본을 보던 중, 그는 후배가 예전에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그녀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과거와 비슷한 경험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을 찾아온 여배우에게 '그렇게 힘들면 때려치우라며' 모질게 말하지만, 그는 분노에 휩싸인 채로 후배를 찾아가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며' 호통을 친다.
드라마에서는 영화감독이 여배우에게 자신이 그녀에게 과거 어떤 짓을 했는지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에선 어떨까.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거나, '네가 먼저 그렇게 행동했으니까 나도 그런 거 아니냐'라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내가 사람에게 가장 실망하는 순간은,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행동을 보일 때'이다. 바람을 피운 사실을 들켰을 때 "네가 날 사랑해주지 않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뒤에서 사람들에게 타인의 험담을 하는 사람. 전부 예를 들 순 없지만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다.먼저 주변 사람들을 '가르치려 든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상대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듯처럼, 대화를 할 때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던가, "그건 당연히 그렇게 돼야 하는 거 아냐?"라는 뉘앙스로 빈정대듯 말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실제로 하지도 못할 이상적인 말들을 남발하며, 지나치게 '쿨한 척'을 하곤 한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을 마주하면 자신이 내뱉은 말처럼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다, 자신과 상대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반복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지나치게 이미지 관리를 하는 사람, 솔직하지 못한 사람과는 거리를 두곤 한다. 흔히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솔직하다고 여긴다. 물론 그것 또한 솔직한 것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솔직함이란 "좋은 모습이든, 그렇지 않은 모습이든 필요한 순간이 닥치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보통은 타인의 시선에서 좋게 보일 수 있는 것들만 드러내지,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 있는 부분에선 자신을 포장하기 급급한 경우가 많다.
물론 이 말은 지나치게 자신을 드러내라는 말과는 다르다. 상대방이 궁금해하지도 않는 자신의 정보들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다만 살다 보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야만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자신은 그것에 대해 반대 입장인 경우 말이다. 이 세상 대부분의 문제들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것들이다. 그렇기에 그런 순간이 닥쳤을 때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지 두려워 그런 것들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면, 그것은 솔직한 사람이라고 보기엔 조금 힘들다는 게 내 입장이다.
솔직한 척 연기하는 사람과 솔직한 사람의 차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두각을 드러낸다. 이 '결정적인 순간'은 콕 집어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경험상 이 순간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면, 후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내 침묵을 무언의 동의라고 상대방이 판단하거나,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상황에서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맞춰줘야만 하는 상황들. 시간이 흘러서 내가 솔직하게 말을 하면, 상대방 또한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만약 내가 본 드라마 에피소드에서, 영화감독이 조금 더 빨리 여배우에게 자신의 시나리오가 별로였다는 말을 전했다면 어땠을까. 여배우는 자신의 연기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며, 감독 또한 시간은 걸리더라도 또 다른 작품을 통해 '역시 천재 감독'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재기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침묵했다. 자신의 잘못을 그녀에게 돌렸다. 그리고 그도, 그녀도 무너졌다.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마라.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 또한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평소엔 쿨한 척,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척은 다하면서 막상 쿨해져야 할 때 쿨하지 못한 사람, 논리적이어야 할 때 감정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는 것을 당신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 또한 주변에 있는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정작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이 겪었던 힘든 일들 중에서, 당신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일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떠올려보라. 그 수많은 상황들 중에서 당신이 처음부터 깊게 생각하고 판단했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고 넘어가거나 그만큼 힘들지 않아도 될 일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장담한다. 결국 삶이란 매 순간의 선택들이 모여 이뤄진다. 당신이 남들에 비해 힘든 삶을 살았다면 그것은 운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의 선택이 그만큼 좋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힘듦을 견디기 힘든 것 때문에, 생각을 멈추지 마라. 결정적인 순간에 감정에 휩싸인 선택을 반복할수록, 당신이 다음에 할 선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은 넘어가더라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 공감하거나 웃으며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솔직해야 할 때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이다.쓸데없는 부분에서 솔직한 것이 아닌, 누군가의 삶 또는 당신의 삶에서 솔직해야만 하는 순간에 용기 있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스스로에게 떳떳한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