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려보내라, 아무렇지도 않을 때까지

by Quat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타인으로부터 잊기 힘든 상처를 받곤 한다. 받은 상처를 잊기 위해 무언가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등 갖은 노력을 한다고 한들, 그런 부류의 상처들은 담담해지는데 어느 정도의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자신처럼 힘들고 괴로워하길 바라는 마음을 먹을 때도 있다. 오늘은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복수는 "내 안에 그 사람을 위한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건 자신 안에 그 사람을 위한 공간이 어느 정도는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거 한 연예인이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이 무명시절 가장 두려웠던 건 악플이 아닌, '무관심'이었다고. 사람들의 관심으로 먹고사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자신에게 있어, 그 누구의 관심조차 받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서글프고 힘든 현실이었으리라. 그런데 과연 이 말이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관심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타인의 긍정적인 관심을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속담처럼,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때로 상대의 인생 전체를 바꿔놓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아닌 척하면서도, 타인의 관심을 본능적으로 갈구하고 원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상처를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다. 자신의 기대만큼 상대가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한 것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고 있는 것도, 자신이 상대를 위해 애정을 쏟은 만큼 상대가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 것도,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자신보다 다른 친구와 더욱 친하게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가 자신의 맘처럼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이 상대에게 쏟은 관심에 비례해, 상대 또한 자신을 챙겨주길 원하게 된다. '아는 것'과 '원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이해를 하더라도 서운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자신이 상대를 생각해 배려를 했다고 해서 그만큼의 배려를 받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냐? 내가 뭐 준만큼 해달래?'라고 생각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가슴 한편에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기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봤을 때 남들과 차별화된 '특별한 순간'이 있었던 사람들뿐이다. 가족, 첫사랑, 가장 오래 만났던 연인, 평생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 등 인생에서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사람들만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자, 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사실 같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루빨리 내 안에서 그 사람의 공간을 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아주 많이 힘들어한다. 머리로는 그것이 옳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을 자신의 안에서 지워내는 것을 힘겨워한다. 나도 격하게 공감하는 사실이다.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힘들더라도 이것은 하루빨리해야만 하는 일이다. 왜일까? 시간이 지나 당신의 앞에 정말 괜찮은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만약 그 순간에도 당신 안엔 여전히 상처를 줬던 사람들이 남아있다면, 아마 당신은 그 사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확률이 높다. 생각해보라. 새롭게 집 안을 꾸미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쓸모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버리는 일'이다. 기존에 있던 물건들은 여전히 남겨둔 채 새로운 물건만 자꾸 산다고 해서 좋은 집이 되는 건 아니다.



결국 우리가 상처를 준 사람들을 내 안에서 정리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들보다 당신을 더욱 아끼고 사랑해줄 사람들을 다시금 내 안에 들여놓기 위해서이다. 과거에 아팠던 기억들을 추억으로 포장한 채 자기 연민에 빠져 남들에게 위로받기만을 바란다면, 당신은 영영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조금 다른 내용이긴 하지만, 나는 그래서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만약 당신이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잊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사랑'은 당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는 것은 아닐까? 당신은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해서 만나는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곁에 없다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만나는 것인가.



결국 감정이란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에, 어떻게 해석할지는 오로지 본인에게 달려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당신이 받은 상처를 진정으로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의 청소'를 종종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상처를 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미워하는 시간조차 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힘들더라도 그들과 있었던 여러 일들을 통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깊게 고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과연 잘못한 것이 없는가' '왜 나는 그들의 본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했는가' '알아차리고도 관계를 끊고 싶지 않아 모른척한 것은 아닌가' '그들이 상처를 주기 전,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는가'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이러한 생각들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어느샌가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떠올리더라도 예전처럼 힘들지 않을 것이다. 마치 길을 걷다 길가에 서 있는 가로수를 보는 것처럼 무덤덤한 상태로 '그래, 그런 사람도 있었지'라는 생각을 잠시 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최고의 복수란 그저 흘려보내는 것이다. 언젠가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나더라도 아무런 감흥 없이 인사를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상태. 상대는 당신을 보고 감정적으로 흔들린 모습을 보일지라도, 당신은 마치 카페에 들어가 직원에게 커피 주문을 하는 것처럼 별다를 것 없이 대하는 것. 나는 그것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한다. 복수를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복수. 어쩌면 우리네 삶의 다른 부분들도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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